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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버들 Feb 20. 2023

엄마라는 이름

 


“엄마”

“엄마”

하루에 수십 번을 부른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나를 부른다.


“침대에 누워서 왜 자꾸 불러” 물으면

“엄마가 보고 싶어서 불렀어.”

나는 딸을 멀뚱 쳐다본다.



어느 날 갑자기 딸아이는 수술을 했다. 생리통이 심한 줄만 알았다. 치과보다 싫은 곳은 산부인과다. 여성들이라면 알 것이다. 산부인과에 들어가 진찰할 때  어색한 자세의 풍경을. 그럼에도 건강을 위해서는 미리미리 챙기고 진찰받아야 한다. 그렇게 여성 건강검진을 위해 작은 산부인과를 갔다. 좀 있다 여의사가 부른다. 큰 병원으로 가야 할 것 같다고. 배 속에 물혹 비슷한 게 있다고. 바로 일 년 전, 내가 들었던 말을 다시 듣게 되었다. 이번에는 내가 아닌 딸아이에게.


아직 나이가 어린 딸, 난소 옆에 제법 큰 15cm의 물혹이 생겼다. 그로 인해 나와 같은 악성일까 봐 그 충격은 나를 괴롭게 만들었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고. 나로 인해 똑같은 유전자를 물려준 것은 아닌지 나 자신을 자책하게 되었고 그 충격은 오래갔다. 내가 치료를 받고 있는 큰 병원으로 가 다시 검사를 했다. 다행히 악성은 아니었다. 물혹만 떼면 아무 이상이 없다고 의사는 말한다. 나를 수술했던 의사가 이번에는 딸아이를 수술했다. 씁쓸한 풍경이다. 아이는 복강경 수술 후 6개월간 예방 차원으로 치료를 받았다. 우리는 병원을 같이 다녔다. 난 일 년 동안 호르몬 억제 주사를 받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이렇게 6개월간 그 주사를 아이도  맞게 되었다. 예방을 위해. 우리는 모든 것을 같이하며 같이 다녔다. 그 이후 아이는 나에게 붙어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했다. 성인인데도 불구하고 딱 붙어 있었고 떨어져 있을 때는 나를 찾았다. 딸아이는 겁이 참 많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자식은 다 아이이다. 주사도 무서워하고 겁 많던 딸아이는 그 과정을 잘 이겨냈다. 이제 주사는 덜 무서워한다.


우리는 시간이 되면 여행을 떠났다. 주변 서울과 춘천으로 부산으로 또는 미술관과 가까운 명소를 찾아 여행을 했다. 그중에서도 제주도 여행은 우리 가족에게 많은 추억을 남겼다. 제주도 반달살이는 우리가 처음 떠난 여행이었다. 제주도에서 반달살이는 우리를 더욱 가깝게 만들었다. 딸은 취직공부 중이어서 오전에는 공부를 하고 나는 토스트와 같은 간단한 음식을 해서 책상에 놔주었다. 아이는 오물오물 먹으며 공부를 하고 나는 숙소 앞바다를 보며 책을 읽거나 글을 썼다. 오후는 제주도 한 곳을 정해 구경하고 다시 숙소로 와 저녁을 해 먹었다.  오후에만 돌아다니다 보니 시간 조절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로 인해 대부분 두 끼만 먹는 날이 많았지만 늦은 저녁밥은 그 어느 때보다 즐겁고 맛있는 저녁이었다.  뒤늦게 합류한 남편과 아들. 그렇게 우리는 제주의 시간을 즐겼다.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뒤에서 말한다.

“엄마, 우리 오래 살자.”

“그래 오래 살자.”

우리는 서로 쳐다보며 웃는다.

“엄마, 몇 살까지 살았으면 좋겠어.”

“음, 나는 70살까지만 살았으면 좋겠어.”


딸아이는

“요즘은 70살 넘어도 할머니 같지 않고 건강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 그래서 좀 더 살아야 할 것 같은데” 하며 웃는다.

“그래, 그럼 75세?”

소파에 앉아있다 보면 어느새 내 곁에 누워 다리를 올려놓는다. 작은 아이가 없을 때 큰아이가 내 옆에 와 누우며 말을 한다.


“엄마, 나 엄마가 필요해. 엄마 없으면 안 돼.”

“그런 소리 하지 말고. 빨리 독립해라."

하며 난 큰 아이를 밀어낸다.


‘엄마’는 누구에게나 가슴을 울리는 두 글자다. 과거의 나 또한 ‘엄마’란 단어를 쉽게 입에 올리지 못했다. '엄마'라는 이름을 입 밖으로 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유아 때 엄마와 떨어진 시간이 길었다. 같이 했던 시간보다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았던 엄마와 나의 시간. 결혼 후 5년이 안되어 돌아가신 엄마. 가슴에 담았던 말을 하지 못했다. 너무 어리숙해서, 너무 바보 같아서 엄마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못했다.  이제 나도 엄마가 되어 아이를 본다. 하지 못했던 말이 없게 아쉽지 않게 우리는 많은 얘기를 한다. 그래서 우리 집은 조금 시끄럽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고 혼자 사색하는 것을 좋아하고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하는 나. 하지만 몇 년의 우여곡절 사건들을 겪으면서 가족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기에 좀 더 함께 같이 하려고 한다. 이제 딸아이는 취직을 했다. 그래서  같이 여행을 떠나기는 쉽지 않다. 조금은 아쉽지만 이제 꿋꿋하게 자신의 일을 해 나가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나를 내려놓는다. 다행이다. 이렇게 함께 같이 갈 수 있어서.


“엄마, 우리 산책 갈까?”

“응, 어느 쪽으로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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