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만실 침대에 누워 있다. 이제 분만이 아닌 2년 반 동안 몸속에 간직했던 케모포트를 꺼내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아기의 출산은 탄생의 시작이라면 케모포트 꺼내는 수술은 기구의 사멸이다. 아침 8시에 간단한 수술을 위해 서둘러 왔지만 수술할 의사는 오지 않는다. 갑자기 응급환자로 인해 늦어진다고 한다. 그렇게 별생각 없이 기다렸다.
기다린 지 2시간이 다 되어 갈 때쯤, 의사가 들어온다. 자주 듣던 그 목소리, 담당 의사다. 간단한 수술이라 레지던트 의사가 들어올 줄 알았던 나의 생각에 일침을 놓는다. 아! 이게 뭐지 간단한 수술이 아니었나? 너무 쉽게 생각했다. 갑자기 인생을 너무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스쳤다.
수술 시간 40분. 수술이라기보다 간단한 시술에 가깝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생각들이 스쳐갔다. 부분 마취로 정신은 너무나 말똥말똥하여 아픔과 수술 상황이 그대로 흡수됐다. 오른쪽 가슴 밑에 심어둔 케모포트를 꺼내기 위해 그 주변으로 마취 주사를 몇 번을 거쳐 놓는다. 아프다. 그리고 기구 소리들이 들린다. 아직 마취가 다 되지 않았나 보다. 윽! 아프다. 몸속에 고정해 둔 케모포트를 꺼내는 작업이 시작된 것 같다. 고정된 그것이 몸속에 어떻게 자리하고 있는지 모른다. 다만 그것을 꺼내기 위해 떼고 자르고 잡아당기고 또 떼고 잡아당기는 느낌이 온다. 오래 걸린다. 몸속에 2년 반이란 시간을 보냈으니 케모포트는 착각하고 일부의 장기처럼 붙어 있었던 아닐까 싶다. 잘 떨어지지 않는 것 같았다. 정육점의 고깃덩어리가 된 느낌이다. 도구로 갈비뼈 살을 발라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형 하나가 들썩들썩 봉제되고 있다.
나의 모습이 웃기다. 위에는 환자복에 아래는 치마 환자복 그 아래로 한쪽만 벗겨져 있는 청바지가 내려가 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느낌이다. 처음부터 환자복으로 시작해 전신 마취로 잠자는 사이에 진행되었다면 하는 생각. 멀쩡한 상태에서 나는 수술 침대에 누워 있다. 눈을 떴다 감았다 한다. 가슴 밑에 살이 당겨질 때마다 온 힘을 준다. 너무 힘을 주었나 수술하는 부위에 경련이 일어난다. 의사에게 ‘언제 끝나나요’하며 물어보고 싶어 질 때쯤 아래 배속에서 무언가 쑥 나오는 느낌이 든다. 저 두툼한 배속까지 연결되었던 긴 관이 나왔나 보다. 이제 안녕이다. 시원하다고 해야 하나.
오른쪽 가슴 밑에 조금은 보기 싫은 흉터 자국이 좀 더 진하게 생기겠다. 몸에 자꾸 늘어만 간다. 이제는 없기를 바란다. 수술이 끝나고 30분 지혈을 위해 회복실에서 누워있었다. 한 산모가 들어온다. 그 사이 간호사는 산모에게 태아의 태동이 있을 때마다 손에 쥐고 있는 기구를 누르라고 하며 나간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태동 소리다. 물소리와 심장소리가 출렁인다. 이 산모는 출산이 다가오나 보다.
곧 태어날 태아의 태동 소리를 들으며 태어나고 살아가고 죽음이 교차되는 삶을 생각한다. 이렇게 예상치 않게 당황스러운 수술을 받으며 인생의 긴장감을 느껴본다. 살아있어 살아가서 행복한 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