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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Jun 23. 2024

여지가 있는 날들

단어를 살피다

말의 무게가 크게 다가오는 날이 있다. 글을 쓰면서부터는 국어사전을 검색하는 일이 많다. 알고 있는 것들도 실상 내가 알고 있는 것과 조금씩 차이가 있다. 그럴 때마다 더 정확한 말뜻을 알기 위해 꼼꼼히 읽는다.    

 

물론 그 창을 닫고 나면 다시 잊힐 수도 있지만 이런 일을 꾸준히 하는 편이다. 그러다 여지(餘地)라는 단어를 찾아보게 되었다. 생활에서 이 단어를 사용한 기억은 별로 없다. 매일 수많은 말을 주고받지만 대부분 사라지니 이것 또한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     


여지는 말 그대로 남은 땅, 혹은 어떤 일을 하거나 어떤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나 희망을 말한다. 그렇다면 여지가 없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그 순간 가슴으로 캄캄한 암흑이 지나는 느낌이다. 동시에 가슴이 철렁하고 일렁이다 멈췄다.     


그렇게 이 단어를 살피다 다시금 여지, 남은 땅에 주목하게 되었다. 땅은 곧 먹고사는 일과 연결되었다. 처음부터 없었을 수도 있고, 어떤 사정 때문에 갖고 있던 것들이 조금씩 줄어들 수도 있다.   

  

여지가 없다는 건 곧 삶의 희망이 사라지는 이치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싶다. 타인에게 무엇을 요청했을 때 돌아오는 답이 “다시 돌아볼 여지가 없어요.”라고 말한다면 그때는 좌절하고 힘이 빠질 것이다.   

  

아주 오래전 회사에서 인터뷰 섭외를 위해서 서너 번 이상은 전화나 메일을 보내는 게 보통이었다. 그렇게 오래 공을 들이다 될 것 같은 기분 좋은 느낌이었다가 다음 기회에 만나자는 연락을 받을 때, 여지가 사라진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얼마간 쌓아놓은 공든 탑이 무너진 것 같다. 문제가 해결되고, 이제 현장에서 얼마나 열심히 인터뷰할까를 고민하며, 나만의 스케치를 하는 중이었다. 여지는 어찌 보면 있음과 없음의 경계를 의미하는 것 같다.    

 

여지를 둔다는 건 지금은 아니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는 가능할 수 있다는 여백 같은 여유다. 그래서 바로 다음 달을 준비하는 잡지에서는 만나기 어렵지만 한두 달을 두고 기다리기로 마음먹는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뵙겠습니다.”

정중한 거절이라는 걸 알지만 여지가 있다.    

 

이런 경우에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능성을 두고 다시 노크한다. 지난번에 만나지 못한 경험이 있기에 더욱 절절히 왜 만나야 하는지에 대해서 설명하고 연락한다. 이렇게 정성을 기울이다 보면 간혹 정말 만나기 어려운 이와 대면할 행운을 얻기도 했다.   

  

가끔 길을 가다 보면 흙을 찾아볼 수 없고 시멘트로 포장된 골목길 한편에 플라스틱 화분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걸 본다. 지금 같은 여름이면 봉숭아가 자라거나 어느 할머니의 부지런한 손길이 지났을 법한 상추가 밥상에 오를 만큼 무성한 풍경을 만난다.     


이런 공간에 들어서면 그늘을 기대하기 힘들어 찡그린 얼굴로 걸어갈 때 잠깐 숨 쉬는 기분이다. 화분은 그곳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여지인 동시에 스쳐 지나는 이방인들의 정서적인 쉼터다.     


어떤 단어에 마음이 집중되는 날이면 내가 매일 내뱉는 말을 돌아본다. 누군가 무심하게 던진 그 말이 타인에게 상처가 되고, 내가 그 대상이 될 때도 있다. 무더운 날에는 분명하기보다는 조금 기대할 수 있는 여지의 날들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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