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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Jan 20. 2021

분식집이 됐던 점심시간

음식의 향기로 기억되고 싶은 엄마


맛있는 음식은 아이를 행복으로 이끈다. 아이들 겨울 방학이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매일 붕어빵을 찍어내듯 똑같은 하루는 재미가 없다. 신선하고 즐거운 하루를 위해 뭔가 해야 될 것 같은 엄마의 책임감이 고개를 든다. 가장 확실히 보여줄 수 있는 건 음식, 맛있는 밥 먹기다. 7시 정도 아침을 먹고 나면 그때부터 하루의 하이라이트인 점심을 향한 고민이 시작된다. 습관처럼 하는 일은 아이들에게 질문 던지기다.

“오늘 점심때 뭐 먹을까? 먹고 싶은 거 있어?”

방학을 그래도 잘 보냈다는 생각이 들게 하고 싶은 엄마의 작은 노력이면서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에 대한 적극적인 자신감의 표현이다. 그때마다 아이들은 별생각이 없다거나 조금 시간을 달라고 한다. 그러다 10시를 전후해서 확실한 대답이 나온다. 날씨와 기분, 그동안의 먹었던 것들을 대충 정리하고 난 후에 이루어지는 나름 객관적이고 주관적인 데이터인 셈이다.  

  

“엄마 오늘은 떡볶이 어때?”

막내가 의견을 말한다. 

“엄마 튀김도 곁들이면 좋을 것 같아. 신전떡볶이 튀김 사 올까?”

이번엔 큰아이가 아른거리는 음식이 떠오른 모양이다.

그렇게 정해진 점심이었다. 그리 손 갈 일도 없고 집에 떡이 없으니 마트에서 사 오기만 하면 됐다. 아이들은 마치 맛있는 점심 한 상이 눈앞에 차려진 듯 설레는 모습이다. 순간 기분 곡선이 상승하여 얼굴도 밝아진다. 불과 1시간을 넘기면 펼쳐질 또 다른 세상에 흥분한 상태다.   

 

집에만 있는 막내가 바깥바람이 그리웠는지 마트 가는 길에 따라나섰다. 은행과 다이소를 들려 로컬푸드에서 간단한 장을 봤다. 마지막으로 튀김을 해결해 줄 동네 포장마차에 갔다. 이른 시간부터 부지런히 나와서 일했는지 바구니마다 튀김이 가득하다. 눈에 들어온 건 김말이와 야채튀김이다. 이천 원으로 튀김 다섯 개를 샀다. 봉투에 따끈한 것을 담아준다. 참 착한 가격이다. 집에서 기름 냄새 진동하며 재료를 준비해야 하는 부담과 수고로움을 덜어주니 오늘따라 아줌마가 참 고맙다.     


집에 와서 멸치 육수를 준비했다. 떡볶이를 위한 시간이다. 가래떡 대신 떡국떡으로 해서 떡에 간이 쉽게 배어든다. 고추장을 풀어 넣었다. 떡이 익어가는 순간 국물도 진해진다. 적당한 단맛은 떡볶이에 빼놓을 수 없는 필수요소. 설탕과 매실을 조금 넣으면 끝이다.


갑자기 아이가 거든다. 

“엄마 우리 치킨도 살짝 구워서 먹을까요?”

냉동실에 있는 냉동 치킨을 에어프라이어에 구웠다. 닭고기에선 시간이 흐를수록 숨어있던 기름이 나오고 담백하게 구워진다. 아이들이 왔다 갔다 하며 축제의 시간을 기다린다.     

“와 엄마 우리 집 완전 분식집 됐네.”

큰아이가 감탄한다. 

11시 40분, 아이들이 학수고대하던 시간이다. 언제나 그러하듯 맛 평가단이 출격한다. 적당한 국물에 튀김과 떡볶이가 잘 어울린다며 폭풍 칭찬이다. 손이 바빠지고 아이들 얼굴에 미소가 흐른다. 내게 주어지는 가장 여유 있는 시간이다. 30분 남짓한 식사시간은 복잡한 근심 걱정은 일찌감치 사라졌다. 특별히 말하지 않아도 마냥 행복하다.


요리를 만드는 일은 집안에 온기를 불어넣는 출발점이다. 엄마 역시 과수원과 밭일에 정신없는 일상에서도 밥상을 차리는 일에는 부지런했고 정성을 들였다. 오일장에 가서 생선을 사 와도 내장 하나도 함부로 버리는 일 없이 음식에 담았고 생각하지 못했던 특별한 한 끼를 만들었다.    

 

지금도 엄마가  자취방 좁은 부엌에서 만들어 주었던 스카치 에그와 동그랑땡이 생각난다. 스카치 에그는 삶은 달걀에 돼지고기 간 것을 마늘과 갖은양념을 통해 감싸준 다음 빵가루를 입혀 튀겨내는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동그랑땡 역시 고기와 야채를 준비하고 모양을 만들고 부쳐내어 완성하기까지 몇 단계가 필요하다. 시험 기간이면 언제나 도시락을 싸주기 위해 막차를 타고 왔던 엄마는 내가 좋아하는 그것들을 가끔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초여름 무렵 밭에서 자라난 열무를 뽑아와서 대충 버무린 김치도 생각난다.

“맛이 어떤지 봐라. 뭐 넣은 게 없어서 그런가 맛이 없네.”

“아니 엄마 엄청 맛있어.”

엄마는 항상 내가 맛있다는 한마디에 미소를 잊지 않았다. 특별한 재료가 아니어도 엄마의 손을 거치면 익숙하지만 숟가락이 바빠지는 밥상으로 변신했다.


“매일 같은 된장국을 끓이지만 어떻게 하면 맛있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했지. 라디오나 텔레비전 요리 프로그램을 보면 기억했다가 해보기도 하고, 사람들 얘기도 듣고. 그렇게 하면서 밥을 했다.”

대학생 무렵 엄마 음식 맛의 비결을 묻는 질문에 답이었다. 저절로 당연히 얻어지는 것은 없었다. 지극한 마음이 쌓인 엄마의 식탁이었다. 농부는 언제나 부지런함이 살아가는 밑천이었기에 엄마는 집에 머무는 시간이 없었다. 엄마와 시간을 보내기를 갈망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그래서 엄마가 부엌에 머무는 그때가 내겐 꿈같은 시간이었다.  

   

엄마는 맛난 걸 잘해주는 최고의 요리사로 내 추억 속에 남았다. 아이들이 여러 가지 음식과 그때 함께 했던 풍경들을 기억했으면 한다. 내 삶에서 힘이 덜 들어가고 자연스러운 모습은 부엌에서 음식을 준비하고 맛을 내어가는 과정이지 않을까 싶다.  엄마가 된 지금 내가 만든 요리를 맛있게 먹고 좋아하는 모습은 소소하지만 최고의 힐링이다. 겨울 햇살이 거실까지 들어와 작은 점심상을 비춘다. 내 몸이 괜찮을 만큼의 엄마표 손맛과 타인의 노력이 버무려진 점심은 오후를 보내게 하는 작은 힘으로 변했다. 난 밥 잘해주는 엄마다. 부엌의 향기로 기억되는 엄마가 되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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