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항상 기적을 바랍니다. 제가 돌보는 환자가 기적적으로 살아나거나, 로또 1등에 당첨되거나, 절대로 변할 것 같지 않은 사람이 예수를 믿고 돌아오는 일 등등 오늘도 기적을 바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기적에 의지하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글자 그대로 기적이란 하늘의 길을 알려주는 '기인한 족적'에 다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즘 많은 분들이 이 기적을 오해하고 있습니다. 특히, 믿는다는 분들이 더 심각한 오용에 빠져 있는 것을 봅니다. 미국에서 연명치료 중단을 미루는 환자 가족들 대부분이 개신교 신자들이라는 통계를 본 적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제가 일하는 병원에서도 그런 사례를 많이 보게 됩니다. 개인적으로는 환자가 세상을 떠나는 죽음의 길에서 돌아와 가족들과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은 이해가 되지만, 의식을 잃고 더 이상의 치료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환자 가족들이 기적을 바라며 기계에 의지해 환자의 생명을 연명시키는 것은 환자에게 또 다른 고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정말 하늘의 계시를 듣고 기다린다면 모를까요.
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70대 남성 환자와 가족들을 만났습니다. 갑자기 호흡곤란이 와서 중환자실로 오셨어요. 담당 레지던트가 저에게 가족들이 많이 놀라서 힘들어한다고 방문을 요청했습니다. 병실에 들어가니 환자의 아내와 아들들이 침통한 표정으로 앉아 있습니다. 암투병을 하며 순조롭게 치료를 받아 왔는데 갑자기 상태가 악화돼 이삼일 안에 공격적인 치료를 중단할지 말지 결정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상황입니다. 아내는 이민 와서 고생하며 아이들을 키운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쏟아 냅니다. 침대 곁에 있던 아들도 아버지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북받치는 슬픔에 흐느껴 웁니다. 몇 시간이 지난 뒤에 다시 들른 병실, 캘리포니아에서 온 환자 가족들이 도착하자 흐느낌과 애통한 부르짖음이 더 커졌습니다. 정말이지 기적이 필요해 보였습니다. 아내의 기도와 간구처럼 하나님께서 정말 한 번만 기회를 주시면 어떨까? 저도 간절히 주님께 간구했습니다. 한 번이라도 눈을 뜨고 저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잘 있거라"라는 인사라도 하고 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이죠. 하지만, 가족들이 바라는 기적은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의사의 말대로 호흡기를 떼고 40분 정도 숨을 혼자 쉬시다가 자정을 훌쩍 넘길 무렵 소천하셨습니다. 비통한 가족들의 마음과 의료진들을 위로하고 조용히 병원을 나섰습니다.
때때로 기적이란 초자연적인 현상이라기보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해석의 산물일 때도 많습니다. 일반 중환자실에서 70대 흑인 목사님 가정을 만났습니다. 침대 곁에 큰 딸이 있었습니다. 무엇에 대해 기도하기를 원하는지 물었더니 기적을 원한다고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하기 어려운 기도입니다. 누구보다 저 안에 믿음이 연약하다는 사실을 제가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항상 기적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두렵습니다. 제 믿음 없음이 다른 믿는 분들에게 폐가 될까 봐서요... 하지만 똑같이 기도하며 간구했습니다. 귀신 들린 아들을 가진 아비가 예수님께 "제가 믿습니다. 그러나 제 믿음 없음을 도와주십시오"라고 기도한 것처럼 말입니다.
이튿날 오후에 중환자실에서 병실을 담당하는 간호사를 만났습니다. 어제 만난 목사님이 1시간 전에 돌아가셨는데 들어가 보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병실에 들어갔더니 소천하신 환자의 아내와 딸 셋이 있었습니다. 신분을 밝히고 조용히 위로를 전했습니다. 그중에 한 여성이 자신도 목사인데 애틀랜타에서 비행기가 연착이 되어 아버지가 숨을 거두기 전에 병원에 도착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는데 응답을 받았다고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기름을 바르고 아버지를 위해 마지막으로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큰 딸은 통화 중이어서 가장 나중에 위로의 말을 전했습니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아 마음이 어떠냐고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은 기적을 체험했다는 겁니다. 깜짝 놀라 뭐가 기적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물론 아빠가 다시 깨어나 우리와 함께 더 시간을 보내는 것도 기적이지만, 동생들이 멀리서 비행기 연착을 뚫고(미국 국내선 비행기는 날씨 등에 따라 수시로 연착을 함) 아버지의 임종을 지킨 것도 기적이고, 특히 아빠가 고통 없이 편안하게 돌아가신 것이 제겐 기적입니다"
제 눈에 눈물이 고인 것인지 그 딸의 눈에 고인 눈물이 제 눈에 비친 것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서로를 꼭 껴안으며 주님께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돌아서 인사를 하고 나오는 길에 돌아가신 목사님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숨이 없는 인간의 모습! 평안히 잠자는 모습, 그 모습 그대로 다시 숨을 되찾아 긴 잠에서 깨어날 날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