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의 기적

by 박재석

2020년 성탄절 전날,


예년 같으면 들뜬 마음에 선물도 사고, 연휴를 즐길 생각에 행복할 때이지만 올해는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성탄절 전날에도 미주리 대학병원 코로나 중환자실에는 내일을 보장할 수 없는 환자들로 가득 찼습니다. 한 이틀 사망 환자가 없어서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성탄절 전날 93살 환자를 시작으로 임종을 기다리는 환자가 모두 4명. 주말이 지나면 이 분들의 병실이 또 다른 중환자로 채워질 것입니다.

어머니의 마지막을 뵙기 위해 N-95 마스크와 가운과 장갑을 끼고 병실에서 흐느끼는 흑인 환자 가족,

환자의 아들 딸들이 아닌 분들은 태블릿 화상 면회를 통해 임종을 지킵니다. 또, 코로나 19로 병원에 올 엄두도 내지 못하는 가족들에게 화상 면회면 족하다며 62년 결혼 생활을 마무리하려는 백인 할머니,

가족들이 보고 싶지만 장애로 휠체어 없이는 움직이지 못하는 남편이 혹시라도 병을 얻을까 봐 노심초사입니다.

지난주만 해도 함께 기도하며 살고 싶다고 말씀하시던 프랭키 할머니도 이제 더 이상 인공호흡기로 연명하지 않으시고 평안한 길을 떠나시기로 결심했습니다. 다행히 이 할머니는 코로나 전염력이 현저히 떨어져 딸과 남편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임종기도를 받으셨습니다. 잠시 숨을 돌리기 위해 간호사 책상에 앉았습니다. 분주하게 보호장구를 입고 맡겨진 환자들을 돌보는 간호사, 의사, 호흡기 치료사들의 모습이 참 든든해 보입니다. 하지만, 슬픈 마음은 감춰지지 않는 법, 곁에 있던 간호사가 저의 안부를 물으며 자신의 환자를 좀 봐 달라고 합니다.

60대 환자로 제가 처음 들어왔을 때 함께 기도했던 환자 앤드루 씨였습니다. 그도 입원 한 뒤 이틀 만에 폐기능이 현저하게 떨어져 기도삽관을 통해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있었습니다.


'또, 돌아가시나... 아... 오늘은 그만 하고 싶은데...'


이런 생각으로 몸을 일으키는데 그 간호사가 제 귀에 대고 "채플린 제이, 크리스마스 기적이에요" 그러는 겁니다. 보호장구를 하고 병실로 들어갔는데, 앤드루 씨가 의자에 앉아서 반갑게 인사를 하는 겁니다.


"채플린 제이, 반갑습니다. 저 살아났어요. 하나님이 제 기도를 들어주셨어요."라고 말하는 앤드류 씨의 눈시울이 이내 불어 졌습니다. 감격과 감사의 눈물이 이었습니다.


저도 병실 침대에 걸터앉았습니다. 그리고, 안부를 물었습니다. 앤드류 씨는 최근 인공호흡기를 떼고 코로나 19 병실이 아닌 일방 병실로 옮기게 됐다며 기뻐했습니다. 그러면서, "기적인지 아닌 지는 몰라도, 주님이 제 기도에 응답하신 것 같습니다."라고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참 선물과도 같은 만남입니다. 임종기도만 하다 지쳐 쉬고 있었는데, 새 생명을 얻은 환자에게 축복기도를 하려니 저도 절로 힘이 나는 것 같았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앤드류 씨, 지금 이 중환자실에서는 지난달부터 그의 매일 한 명 이상 씩 죽어 나갑니다. 미국 전체로는 지난 7일간 매일 2000명 넘는 사람들이 죽고 있습니다. 살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적어도 이 순간 저에게 앤드류 씨는 크리스마스의 기적입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무심하게 빛나는 병원 트리 불빛과 성탄절을 기념하는 장식을 바라보며 내일은 좀 더 나아지길 기도합니다. 성탄절 이브, 미국 전체 사망자가 또다시 2,880명으로 일주일 평균 사망자 2,616명을 훨씬 웃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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