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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석 Sep 28. 2022

아낌없이 주는 사람들

장기기증 이야기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 중에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동화 속에는 사과나무와 소년이 등장합니다. 소년은 끊임없이 자신의 필요를 나무에게 이야기하고, 나무는 조건 없이 소년을 위해 자신을 내어 줍니다. 그늘이 필요하면 그늘을, 열매가 필요하면 열매를, 소년이 성장해 먼 곳으로 떠나기 위해 배가 필요하면 자신의 가지를 내어 줍니다. 그리고, 끝으로 소년이 노인이 되어 돌아왔을 때는 그루터기가 되어 노인이 쉴 수 있는 의자가 되어 줍니다. 동화 속 나무는 조건 없이 사랑을 베푸는 어머니처럼 그가 가진 모든 것을 기쁘게 내놓습니다. 심지어 아무것도 줄 수 없는 그루터기가 됐지만, 인생살이로 지치고 늙은이가 된 그 소년에게 앉을자리를 줄 수 있는 것에 만족하며 기뻐합니다. 저는 그 나무 때문에 너무 슬퍼서 마음이 아팠고, 그 소년이 너무 이기적으로까지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50대에 접어들어 이 동화 속의 나무 같은 수많은 장기 기증자들을 접하면서 한 편으로 그 나무의 마음이 이해가 됩니다. 특히, 몇 달 전 중환자실에서 만난 한 응급구조사의 마지막을 생각하면 더욱더 그렇습니다.


그는 30년을 응급구조사 일을 하며 수많은 사람을 위급한 상황에서 구했습니다. 물론, 안타깝게 병원에서 세상을 떠나는 일도 있었지만, 그는 그가 하는 일에 만족하며 자부심을 느끼고 살았습니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그 아내와 두 딸들을 만났을 때 그의 아내는 갑자기 일어난 비극으로 슬픔을 가누지 못했습니다. 진단 결과, 환자는 쓰러진 뒤 뇌에 산소 공급이 되지 않아 뇌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뇌사 판정을 받았습니다. 코로나-19가 창궐하던 시절에도 환자들을 이송하며 건강을 지켰던 그가 이렇게 허망하게 뇌사 판정을 받게 되자 아내와 두 딸들은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했지만 감당할 수 없는 현실 앞에 믿음조차 힘이 되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한 일주일이 지난 뒤 가족들은 그가 생전에 약속했던 대로 장기를 기증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윽고, 장기기증을 위해 호흡기를 떼고 수술실로 향하는 날이 왔습니다. 병원 직원들이 수술실로 향하는 길목에 도열해 마지막까지 모든 것을 주고 떠나는 환우와 그 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병실에서 막내딸이 갑자기 이렇게 아빠를 떠나보낼 수 없다며 장기기증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울부짖기 시작했습니다. 충분히 이해가 되는 상황이었습니다만 의료진과 저도 적지 않게 당황했습니다. 종종 마지막 순간에 가족들이 심경의 변화를 일으킬 때가 있다고 합니다. 환자가 의식이 없는 상황에서 아무리 생전에 장기 기증을 등록했다고 해도 법적으로 환우의 결정을 대신할 가족의 결정을 강제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장기기증협회에서 나온 간호사가 막내딸을 충분히 위로하면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만약에 아빠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결정하셨을까요?" 잠시 울음을 멈추고 생각하던 그 딸이 "아빠는 분명히 도왔을 거예요"라고 오열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아빠를 붙들고 있던 손을 놓았습니다.  


얼마 뒤 이 지역 장기기증 협회의 간호사로부터 그 환자 콩팥으로 한 젊은 환자가 새 생명을 얻었고 다른 신체 조직들도 기증되어 수십 명이 혜택을 입었다고 전해주었습니다. 평생을 가족을 위해 성실히 일했던 아빠, 아내를 누구보다 아꼈던 남편, 두 딸을 사랑한 딸바보 아빠, 응급 구조팀원에서 감독관이 되기까지 너무나 성실했던 동료, 그는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장기로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리고 떠났습니다. 정말 예수님을 닮은 이 시대의 미라클 메이커입니다. 




그가 일반 중환자실에 있는 동안 그의 아내의 부탁으로 기적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병원 채플린으로서 정말 하기 힘든 기도입니다. 먼저는 그런 치유의 은사를 받지 못해서 이고, 또 다른 이유는 초자연적인 치유를 위한 기도가 자칫 환자가족들을 잘못된 희망의 미로 속으로 빠뜨려 중요한 시간을 허비하게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이 분에게 '치료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 인으로서 정말 모든 것을 주고 떠나신 우리 주님처럼, 자신의 장기까지 주고 떠나신 이 분이야 말로 주님 안에서 '온전한 치유'의 기적을 맛본 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의 삶이 이 땅에서 끝이라도 이 분의 행동은 정말 의미가 있는데, 사실 주님 안에서 영원한 삶을 믿는 우리들에게는 이 분이야 말로 진정한 기적의 치유, 온전한 치유- 모든 것을 나눠 주신 주님처럼 살다 가신 분-를 경험하신 사람인 것 같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과 같이 함께 영원히 살아 계실 것 같습니다. 더 이상 고통과 눈물과 아픔이 없는 그 나라에서 말이죠. 이런 사실이 남겨진 가족들에게도 위로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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