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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석 Oct 29. 2022

가끔은 기적 같은 기적도 일어난다

2022년 9월 중순 어느 날 밤, 

응급 메시지를  알리는 휴대전화 소리가 새벽을 깨웁니다. 침대에서 나와 옷을 입고 달려간 심장 중환자실에는 19살의 앳된 환자가 심정지 뒤 사경을 헤매고 있습니다. 그 곁을 지키고 있는 여자 친구. 환자의 어머니는 병원에서 차로 9시간 정도 떨어진 텍사스 어느 도시에서 오고 있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어쩌다 19살 청년이 이 지경이 됐을까’ 

환자보다는 조금 나이가 더 있어 보이는 여자 친구는 깊은 이야기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이유가 있는지 모르지만 환자는 왼쪽 팔에 총상을 입고 입원했고, 이후 여러 차례 수술을 거듭하다 심정지까지 이른 것입니다. 하지만, 의료진들의 노력으로 간신히 숨을 되돌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이 환자와의 첫 대면을 했습니다. 

이튿날 환자는 제가 있는 중환자실로 옮겨왔습니다. 그리고, 그날 오후에 방문에서 환자의 어머니를 만났습니다. 아들의 상황을 의사로부터 듣고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총상을 입고 쓰러진 환자의 머리에 이상이 있었고, 이후 심정지를 겪으면서 뇌에도 제대로 산소 공급이 되지 않아 앞으로 어떤 상황이 닦칠지 아무도 알 수 없다는 겁니다. 

환자의 어머니 코니는 저에게 울면서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가슴이 떨려서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저도 정말 딱한 상황에 어떻게 기도할지 몰랐습니다. 

‘어린 아들이 총상을 입고 사경을 헤매는 상황입니다. 의료진조차도 그의 소생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오직 주님의 자비로 이 아이가 소생하게 해 주십시오. 울며 탄식하는 어미의 마음은 성령님의 마음과 다르지 않습니다. 주님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아멘! ‘ 

그 뒤로도 환자에게 큰 차도는 없었습니다. 조금 낫았지만 싶으면 이내 폐와 신장에 이상이 생기고 급기하 신장기능이 멈추어 인공신장 투석이 이뤄졌습니다. 2주쯤 됐을 때는 입에서 튜브를 빼고 바로 목에서 폐로 연결하는 시술을 받았습니다. 앞으로 장기적인 치료를 위해서는 필수적인 과정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시술 직후 환자의 상태가 좋지 않아 새벽에 다시 한번 콜을 받고 환자의 어머니를 만났습니다. 코니는 좀처럼 안정을 취하지 못했습니다. 자책에 자책이 밀려든다고 했습니다. 

이혼 이후 아이들과 텍사스로 떠난 뒤 자리를 잡고 좋은 환경 속에서 아이들과 비교적 안정적인 생활을 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성인이 된 아들이 아버지를 만나러 가겠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그러라고 했는데… 이런 사달이 난 것입니다. 코니는 그때 말렸어야 했다고 스스로는 한없이 자책하고 있었습니다. 충분히 상황을 인정해 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외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어떻게 든 잠을 청할 것을 부탁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런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은 일들이 2주 더 계속됐습니다. 그리고, 찾아간 병실… 

환자의 뇌압이 조금씩 낮아지며 뭔가 변화가 있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이때만 해도 한 주 뒤에 어떤 상황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습니다. 그저 이같이 변화가 계속되어 환자의 몸이 회복되기를 바라고 기도하고 원할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10월 17일 월요일 오후, 

저는 코니의 환하게 상기된 얼굴을 보며 손을 모으고 그녀에게로 다가갔습니다. 그녀는 그의 아들이 의식을 되찾고 있고, 거의 망가졌던 신장도 회복되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정말 기적이라고 밖에는 말을 할 수 없없습니다. 물론 환자의 나이가 19살이라 죽기에는 너무 이르고, 그 어미의 아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너무나 절절하여 함께 울면서 기도했지만, 저도 이렇게 살아날 줄을 몰랐습니다. 코니가 들려준 환자에 대한 예후(Prognosis)나 간호사들의 안타까워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많은 경우들처럼 그렇게 이별할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코니와 19살 아들은 일주일 뒤 퇴원해 텍사스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퇴원 전날 환자는 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아무 일도 기억이 나지 않아요. 하지만, 한 가지는 꼭 기억하고 싶어요. 엄마가 내 곁을 지켜주었다는 것을요.”  


가끔은 이렇게 진짜 기적 같은 일도 일어납니다. 그러나, 정말 드문 일입니다. 그러니, 기적이라 부르겠지요. 저는 아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그 어머니의 곁을 몇 번 함께 지킬 수 있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먼 훗날 주님을 다시 뵐 때, '나도 그때 함께 있었다, 박 목사!' 이렇게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깊어 가는 가을밤, 달이 참 시리게도 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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