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 씨앗이 나를 울리다
어김없이 여름은 다가왔다. 지난 2년간 코로나 19로 지친 몸과 마음도 좀 쉬게 할 겸 주말을 끼워 휴가를 냈다. 물론 나만을 위한 시간일 수 없다. 가족에 매인 몸이니까. 아들 녀석 음악 캠프에 실어다 주고 돌아와 여독을 풀기 위해 레몬차를 한잔하며 창밖을 바라본다. 따가운 7월 여름 햇살에 푸른 고추가 영글어 간다. 아파트 베란다 고추농사 2년째, 녹색의 고추 잎사귀에 부서진 햇살이 마치 보석에 비친 영롱한 빛처럼 느껴질 무렵 지난해 코로나 19로 힘들 때 처음 고추를 심을 때 일이 생각났다.
2021년 초봄까지 코로나 환자들의 연속적인 죽음과 병원 채플린 3년 차 증후군까지 겹쳐 일상이 무너지고 있었다. 거기다 지지부진한 영주권 신청절차에 매달 겪는 보릿고개 아닌 보릿고개로 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런데, 아내가 그런 나를 보며 제안 하나를 했다. 집에 한국에서 보내 준 고추 씨앗이 한 봉지 있는데 밑져봐야 본전이니 고추농사 한 번 지어 보면 어떻겠냐는 거다. 말이 고추농사지 그저 아파트 베란다에 라면박스 두 개정도의 플라스틱 화분으로 시작하는 소꿉장난 같은 것이었다.
근데 농사법이라고는 중학교 실과 시간에 파종하기, 가지치기 정도 배운 게 전부인 데다가 오십이 다된 나이에 그걸 기억할 이 만무하니 막막함 그 자체였다. 하지만, 아내의 채근으로 고추 봉지의 안내문과 너 튜부의 도움을 받아서 씨앗을 심었다. 처음에 내 코딱지 보다 작고 바싹 마른 고추 씨앗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아니 이런 작은 씨앗이 그것도 말라 비틀어져 다 죽은 것 같은 것이 어떻게 살아날 수 있을까'
가까운 월마트에서 좋은 흙을 사고 플라스틱 재질로 된 직사각형 모양의 화분도 세 개나 샀다. 그리고 그 안에 흙을 채우고 고추 씨앗을 시키는 대로 두세 개씩 열을 맞춰 심고 흙을 조심스럽게 덮어 줬다. 그리고, 꽃그림이 새겨진 예쁜 물조리개로 물을 받아 정성 그렇게 물을 주었다. 그러나, 여전히 마음 한 편으로는 의심이 들었다. 나중에 물을 주고 났는데 이게 고추 씨앗이 밖으로 나온 건지 아니면 거름이 많은 흙이라 다른 이물질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고추 씨앗이 싹을 내고 잘 자랄 수 있도록 흙 높이도 신경을 쓰고, 물도 자주 주었다.
그리고, 열흘이 다 되어가던 어느 날, 나는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검은흙을 뚫고 올라온 새 싹을 본 것이다. 탄성이 절로 나왔다. "야, 정말 고생 많았다 이 무거운 흙을 비집고 올라오느라... 다 죽은 것 같아 보이던 네가 이렇게 새 싹으로 살아났구나. 정말 고맙다."
어느덧 내 가슴속에 차 있던 물들이 눈을 통해 흘러내렸다. 코로나 19 난리 통해 외로운 주검들을 지켜보며 그 가족들을 위로하며 삼켜왔던 아픔과 슬픔이 조금씩 터져 나왔다. 예전에는 그냥 흘려 지나쳐 버린 생명의 신비가 다시 내 마음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주님 안에서 죽은 그들도 언젠가는 새로운 생명으로 살아 일어날 것이라는 한 줄기 희망이 내 마음에 따뜻하게 스며들었다.
죽음 없이 생명의 신비도 없다. 코로나 19로 인해 수많은 외로운 죽음을 지켜봤다. 가족들이 있어도 함께 할 수 없는 죽음. 창문 너머로, 비디오 전화를 통해 함께 하는 임종은 너무나 제한적이다. 이런 고통을 통해 비로소 일상의 소중함과 씨앗이 싹이 나는 작은 일에도 생명의 신비를 느끼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다. 그러니, 죽음을 고난을 너무 두려워하지는 말자. 피할 수 없는 고통이라면 그 속에서 삶의 의미라도 챙기려는 자세를 가져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