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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석 Jul 22. 2022

또 다른 기적  

믿고 받아들이기 

이 세상을 살면서 초자연적인 기적을 일으키는 권능 이외에 가장 큰 힘을 꼽으라면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어지간한 일은 요즘 돈으로 다 할 수 있다. 하지만, 돈의 힘으로도 할 수 없는 일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특히, 이해할 수 없는 죽음, 사랑하는 사람들이 갑자기 이유가 밝혀지지 않은 채로 이 땅을 떠날 때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은 시간과 돈과 약물을 모두 들여도 그 이유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영원한 미제사건처럼 우리 맘속에 큰 구멍을 남긴다. 그런데, 열흘 전쯤에 만난 한 히스패닉 이민자 부부는 이런 나의 생각을 흔들어 놓았다. 바로 신을 온전히 신뢰하는 믿음으로 이 어려운 일을 해내고 있었다.  


지난 7월 11일 월요일 여성 병원 근무 날 일어 난 일이다. 오전 10시쯤 원내 방송으로 갓 태어난 아기가 심정지로 위독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곧장 분만실로 달려갔다. 25주 된 사내아기를 안고 울고 있는 아빠의 모습이 보였다. 잠시 진정한 틈에 위로의 말을 전하고 필요한 것이 있는지 물었다. 아기 아빠는 가톨릭 사제가 와서 아기에게 세례를 베풀어 주면 좋겠다고 했다. 분만실을 나와서 병원 자원봉사를 하시는 신부님에게 연락을 했다. 그런데, 이 신부님이 죽은 아기에게는 세례를 주지 않는다고 말하며 기도해 주러는 가겠다고 했다. 얼마 지나 분만실에서 정신을 조금 차린 아기의 엄마와 아빠가 서로를 위로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다가가 아기에게 세례를 주기를 원하는지 물었다. 아기 엄마가 그렇게 해 주면 좋겠다고 한다. 그래서, 엄마 품에서 숨을 거둔 아기의 이마에 물을 부어 세례를 주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가브리엘에게 세례를 줍니다 아멘!" 


그리고, 이틀이 지나 다시 병실을 찾았다. 아기 엄마와 아빠가 방에 있었다. 보통이면 유산한 경우도 이튿날이면 퇴원을 한다. 그런데, 이 산모는 다른 박테리아 감염이 발견돼 치료가 더 필요하다고 했다. 수술 직후보다는 훨씬 나아 보였지만, 여전히 초췌한 얼굴에 핏기가 없고 목소리도 힘이 없었다. 아기 엄마가 입을 열었다. 


"목사님, 우리 아기에게 세례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마치 하느님이 목사님을 보내 주신 것 같아요."
 

병원 채플린으로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했지만, 너무 과분한 칭찬에 몸 둘 바를 몰랐다. 아기 엄마는 말을 이었다. "이 번이 세 번째 유산입니다. 하느님의 뜻이 뭔지 잘 모르겠어요." 잠시 눈시울을 적시며 남편을 바라보면서, "남편에게도 너무 미안하고..." 남편이 아내를 따뜻하게 안아준다.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알 수 없었지만, 곁에서 그 아픈 속마음을 털어놓으시면 들을 준비는 돼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가브리엘 어머님, 뭐라고 위로해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전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어떻게 그 고통을 통과해 오셨고 지금 이 고통을 받아들이실지 저도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그녀는 두 손으로 눈물을 훔치며 이렇게 말했다. "목사님, 저는 하느님이 사랑이시라는 것을 믿어요. 지금은 이해할 수 없지만 언젠가 왜 내게 이런 고난이 있는지 알게 해 주시겠죠. 몸이 좀 회복되면 그렇게 믿고 일어나려고 해요." 곁에 있던 남편도 같은 말을 했다. "저는 하느님을 목사님만큼 알지 못하지만, 제가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보다 더 크게 저와 아내를 사랑하신다고 믿어요. 그 믿음으로 지금까지 왔어요. 제가 16살, 아내가 17살 때 처음 만나서 사랑을 했고, 14년 동안 변함없이 서로를 사랑하고 있어요. 언젠가는 하느님이 꼭 우리에게 아기를 허락해 주실 거라고 믿어요." 


그들은 그렇게 병실에서 두 손을 마주 잡고 울고 웃으며 세 번째 잃은 아기를 추억하며 기념하며 나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믿음의 본을 보여 주었다. 




받아들임은 또 다른 기적이다. 받아들이는 사람은 기적의 사람이다. 아무리 어려운 순간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가는 사람에게는 이미 초자연적인 신비를 일상에서 누릴 수 있는 힘이 느껴진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신이 나에게 초자연적인 기적을 행하고 체험하는 일 외에 다른 한 가지 기적을 선물해 준다면 난 기필코 이 기적을 구하겠다. 어떤 어려움도 받아들일 수 있는 믿음을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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