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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정의 서 Mar 20. 2023

선택한 문맹

상상적 이야기를 위하여 *그림 권혜성

가끔은 모국어가 낯설게만 느껴진다. 아고타 크리스토프처럼 어쩔 수 없는 언어적 유랑이 아니어도 모국어를 "적어"처럼 느끼는 때가 화가에게도 종종 있었다. 익숙한 단어들을 나열해 보지만 자신의 기호를 알아주는 이는 적었다. 그렇게 긴 시간 해독되지 않는 기호들을 붙들고 씨름하던 화가는 오래전 보고차에서 보내온 우편의 기이한 문자를 떠올렸다. 옛 그리스 문자들을 좌우로 뒤집어 놓은 듯한 그 기호는 건축가의 춥고 긴 겨울 근무지에 관한 소식을 비밀스럽게 압축해 놓은 암호문 같았다. 당시 거대한 돈강이 흐르는 벽촌엔 개혁과 개방의 바람을 타고 신도시 건설에 쓰일 자재들이 대량으로 실려왔고, 독일어를 사용하는 푸른 눈의 노동자들과 함께 건축가는 무너진 바벨을 쌓는 수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가족을 위해 지독히도 먼 그곳으로 떠나 기꺼이 이방인의 이방인으로 지내던 시절이었다.


오랜 기억의 타래에서 건져낸 낡은 우표로 화가는 어릴 적 즐겨하던 낱말놀이를 해본다. 여전히 읽을 수 없는 작고 빛바랜 기호들을 제멋대로 도시의 이름과 짝지어 보지만 당연히 그것은 엉터리 읽기다. 대신 키릴로스의 문자들을 가지고서 새로운 언어가 조합된다. 이 기호에 관한 한 완벽한 문맹이기에 가능한 화가의 상상이고 자유다. 보고차는 화가에게도, 그리고 건축가에게도 그런 유의 극단으로 기억되는 장소라 특별하다. 눈 덮인 시베리아 벌판을 철컥철컥 디디고 달리는 횡단열차 대신 눈인 듯 구름인 듯 비현실적인 공간을 가로지르는 Aeroplot에 몸을 실었지만 가족을 떠나 낯선 땅으로 향하는 건축가의 현실은 옛 유형자와 별다를 바 없었다.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이방인 유형자는 바로 그 도시의 설계자이기도 했다. 하지만 환영을 일으키듯 늦은 밤 불빛으로 아른거리는 신도시는 그 시절 바벨의 돌을 나르던 돈강의 검은 물길을 잊은 지 오래다. 오로지 화가의 기억 속에서만-듬성듬성 세워둔 노동자들의 컨테이너 박스와 거기서 새어 나오던 잿빛 크리스마스의 인상만이- 보고차의 설계자를 알아본다.


집이 아닌 근무지에서, 그것도 내 나라가 아닌 이국 도시에서 가족과 함께 보내는 최초의 연말이었다. 건축가는 세 아이를 위해 큰 결심을 했다. 일을 얼마간 미루고 모스크바행 밤기차에 몸을 실은 것이다. 황량한 공사 현장을 떠나 러시아의 심장으로 향하는 그에겐 독일제 기차의 느리고 지루한 리듬마저도 위대한 작곡가의 녹턴처럼 들렸다. 화가에게도 낯선 언어와 풍경으로 가득했던 그 여정이 아주 오래 그리고 특별하게 기억되었다. 개방의 시대라 하지만 크렘린의 망루에서는 비밀스러운 시선이 하루종일 자신을 쫓아다니는 것만 같았다. 알 수 없는 공간의 지배자에게 스스로 길들여진 듯 화가의 걸음은 극도로 조용하고 조심스러웠다. 그렇게 한참을 숨죽이며 요새를 빠져나온 시선은 아름다운 광장의 동남쪽으로 향했고 그 끝엔 하늘을 향해 뻗은 적녹의 돔이 자리 잡고 있었다. 책에서만 보던 이콘화의 성지였다. 순간 화가는 보고차의 시골집에도 그 방향엔 성스러운 그림 한 점이 걸려 있었던 것을 기억해 냈다. 가난한 농부의 투박한 시골풍 성상들이 화려한 색감과 정교한 장식을 덧입고 동화 같은 성당의 벽과 천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무수한 이콘화 앞에서 건축가와 화가는 생각했다.


'문맹의 신도들을 위한 아름다운 상형문자로구나!'


문자와 마찬가지로 그림 읽기에도 상상력이 필요하다. 읽지 못하는 문자를 들여다보며 온갖 소리를 붙여보는 놀이만큼 그림 문자의 행간도 꽤나 넓기 때문이다. 화가의 망막에 빼곡하게 자리한 바실리성당의 이콘화와 그 앞에서 풀려나오는 지구 각처의 언어들이 만나 수만 가지 이야기가 빚어진다. 그러다 건축가와 시선이 마주치면 보고차의 농부가 숨죽여 내뱉는 일상의 이야기와 혁명의 정신에 비추어 읽는 모스크바 청년의 거친 호흡이 거대한 돔 안에서 공명하기도 한다. 안내자의 깃발을 따라 줄 지워 걷던 요새의 걸음이 익숙한 활자의 선적 배열 같은 것이었다면, 광장을 지나 막 들어선 이 방대한 그림 문자들 속에서 화가는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한 상상적 이야기를 만난다. 차라리 문맹인 것이 나았다. 그림에 덧붙은 설명적 문자들을 해석하려 드는 순간 기호 사이의 공간을 잃어버릴 것이 분명했다. 지금도 화가는 키릴루스의 이콘만을 기억할 뿐이다. 그래야만 진짜 이야기꾼일 수 있어서다.


우표가 색인이 되어 펼친 크리스토프의 <문맹>도 이야기의 끝을 향해 가고 있고 그제야 화가는 묻는다. '어떤 작가가 되지?' 크리스토프가 답한다. "무엇보다, 당연하게도, 가장 먼저 할 일은 '그리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는 '그리는' 것을 계속해나가야 한다. 그것이 누구의 흥미를 끌지 못할 때조차. 그것이 영원토록 그 누구의 흥미도 끌지 못할 것이라는 기분이 들 때조차."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로만 글을 써야 했던 이방 작가의 치열한 창작 정신에 화가는 용기를 얻는다. 누군가에게 읽기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앞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지어낼 수 있는 그런 그림을 그리고 싶다. 그러려면 문맹의 작가처럼 "머리카락, 팔, 손, 입, 코 같은 것들"을 다시 배워야만 한다. 이번엔 놀이가 아니라 직접 만져보며 하나하나의 이름을 진실되게 그려본다.


장화에 묻은 흙을 떨고 맞은편 벽난로에서 비춰오는 불빛을 등에 지고 기도하는 농부의 손은 검붉고,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추위와 싸우며 벽돌을 쌓던 건축가의 손은 깊은 주름으로 얼룩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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