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사가 Mar 15. 2022

그녀와의 대화

- 대화는 함께 하는 것 -


따님과 이야기를 많이 한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휴직이 이어지며 1년 넘게 집에서 함께 있다 보니 그게 얼마나 내 위주의 생각이었나 알게 된다.

아이의 대화는 어른과 다르다. 할 말을 생각해서 하는 게 아니라, 생각이 나면 말을 한다. 길을 걷다, 음악을 듣다, 그림을 그리다, 수시로 떠오르는 이야기를 한다. 아이의 이야기는 그렇게 사소한 것들이 주를 이루는데, 여태껏 나와의 대화는 서로의 필요-요구사항에 치우쳐 있었다. 바쁘게 할 말을 쏟아내고, 빠르게 애정을 확인하는 겉핥기 대화뿐이었다.


"엄마, 오늘 후식으로 뭐 먹었는지 알아? 내가 힌트를 줄게. 오~ 로 시작해."

"오늘 음악시간에 애국가를 배웠는데 한번 불러줄 테니까 잘 들어봐. 내가 얼마나 잘하는지 잘 봐야 해."

"나 선생님한테 마이쭈를 받았는데 너무 먹고 싶어서 급식실 가기 전에 몰래 먹었어. 선생님이 밥 먹고 집에 가서 먹으라 하셨는데 진짜 진짜 먹고 싶었단 말이야. 그래도 다음부턴 잘 참아볼게!"


틈틈이 하루를 풀어낸다. 꽤나 긴 시간 동안 흩어져 있는 이야기를 모아 아이의 일상을 짐작한다. 채근하듯 물으면 몰라, 이따가 이야기해줄게, 하고 도망가지만 찰싹 붙어 있다 보면 자연스레 알 수 있다. 대신 늘 열려있는 귀는 필수다.

이렇게 이야기가 쌓여 아이를 알아간다. 그동안 어렴풋이 알았던 아이의 모습을 잘 알게 된다. 동화 속 주인공처럼 쉬지 않고 재잘거리며 상상과 현실을 오가는 아이를 보며 참 사랑스럽다 느낀다.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시간을 이렇게 이겨낸다. 목표지향적 인간이 소소한 행복을 찾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무언가를 성취하지 않고 내 옆의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는 기쁨을 알아간다. 그것이 실패가 아닌 또 다른 삶의 지향점이자 축복일 수 있다는 것도 깨닫는다.

실은 그렇게 사는 것도 의미 있다 계속 되뇐다. 괜찮다고, 잘하고 있다고. 이 순간들이 쌓여 앞으로 살아갈 인생의 원동력이 되어줄 거라고. 가만히 버리는 시간이 아닌 한 겹 두 겹 계속 퇴적되어 단단한 인생의 지층을 만들고 있자고 말이다.

이전 08화 부모 되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