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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사가 Mar 23. 2022

I'm tired.

- 이게 맞나 매일 의심한다 -


매일의 관심이 아이에게 집중되어있다. 자식한테 집착하는 부모가 되지 않아야지 했는데 막상 닥치니 나도 그냥 그저 그런 부모다. 어느 날은 웃고, 다른 날은 울고, 정말 일희일비한다. 이번 주부턴 본격적으로 숙제가 매일 나오고, 챙겨야 할 것과 해야 할 일들이 쏟아지고 있다.

사립초등학교를 보낸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학교가 도보 20분 거리라 혼자 등하교가 어렵고, 둘째는 하교 후 학원 뺑뺑이 대신 학교에서 다양한 것들을 배우며 늦게까지 안전하게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딱히 학업에 욕심을 부리거나 남보다 뛰어나길 바라는 것도 아니다.

아이가 영어 숙제를 힘들어한다. 이제 갓 알파벳을 떼고 파닉스를 맛본 아이가 하기엔 난이도가 꽤 높다. 원어민 선생님과의 수업에선 알아듣지도 못하고 말은 당연히 못 해 답답하다. 급기야 집에 와 옆 친구는 잘하는데 왜 나는 못하냐며 펑펑 울었다. 엄마는 따님이 어릴 때 많이 뛰어놀기를 바라서 영어유치원을 안 보냈다고, 못해서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해서 못하는 거라고 한참을 달랬다.

오늘은 기분이 어떻냐 묻는 질문에 "피곤하다"라고 썼다. tired라는 단어를 모르는데도 굳이 꼭 그 단어를 써야겠다며 나에게 물었다. 지친 얼굴에 tired를 써넣고, 그 옆에 피곤하다고 적은 아이의 답안을 보고 눈물이 핑 돌았다. 조막만 한 머리에 얼마나 많은 것들이 쉴 새 없이 오가고 있을지, 상상하는 내 마음이 요동쳐 다잡기가 힘들다.

교육과정이란 건 주먹구구로 만들어진 게 아니다. 아동의 발달과정을 면밀히 연구해 그에 맞게 잘 구조화된 체계다. 지리 분야만 해도 초등학교에선 우리 동네부터 시작해 세계로 점점 환경을 확대하고, 중학교에선 우리나라와 세계를 일정한 계통에 따라 나누어 배우며, 고등학교에 올라가면 세분화해 더 자세히 공부하게 된다. 공간이라는 개념을 이해할 수 있는 정도가 발달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이 순서는 상당한 의미를 가진다.

그런 이유로 방과 후 수업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모두가 의무적으로 참여하는 영어수업에 대해 계속 고민을 하게 된다.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는 나이에 여러 가지를 배우게 하면 효과가 극대화될 것도 같고, 괜히 학습의욕과 흥미만 잃게 만들어 공부를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포기하게 될 것도 같다. 정해진 교육과정보다 많이 앞선 교육이 가져올 결과에 대한 의심이 꼬리를 문다. 당장 한 번도 졸린다, 피곤하다 말한 적 없는 아이의 입에서 매일 저녁 그런 이야기가 나오니 너무 슬프다. 대체 이 상황에서 좋은 사람은 누가 있나, 모두가 잘해보자고 한 선택인데 말이다.

그래도 학교가 재미있다는 아이를 보고 다시 용기를 낸다. 이렇게 잘해줘서 정말 고맙고 대견하다고, 궁디팡팡도 해주고 뽀뽀도 하고 얼굴도 쓰다듬었다. 내일은 속상한 일보다 좋은 일이 하나라도 더 많은 날이 될 수 있게 또 열심히 하자고 하이파이브를 하며 꼭 안아줬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그렇게 그냥 가만히 주문처럼 외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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