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말할 수 없는 비밀이 하나 있다.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이다.
그 비밀은 ㅅ언니에 관한 거다.
ㅅ언니는 우리 동네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던 언니였다.
왜 ㅅ언니가 좋았냐면 친구처럼 편하고 재밌고 다정해서.
ㅅ언니와 처음 만났던 날이 기억난다.
난 아빠와 함께 버스에 타고 있었다.
버스에는 아빠 친구인 ㅈ아저씨와 ㅅ언니도 있었다.
아빠는 ㅅ언니에게 인사하라고 했다.
나는 그 상황이 왠지 불안해서 ㅅ언니에게 욕을 하고 울었던 거 같다.
난처함과 참기 힘든 웃음이 동시에 들어있던 아빠의 얼굴이 기억난다.
어린 시절의 나는 참...
ㅅ언니는 그날부터 우리 동네에 살게 됐다.
할머니네서 당분간 살게 된 거였다.
나는 ㅅ언니에게 욕을 한 것이 미안하고 민망해서 한동안 겉돌았던 거 같다.
한 집만 건너면 언니네 집인데 그 앞에서 기웃대고 놀면서.
그러다 자연스레 시답지 않은 얘기를 나누며 친해졌을 거다.
아마 내가 풀피리 부는 법 같은 것도 알려줬을 거다.
언니는 신기한 물건이나 재밌는 책을 보여줬을 거다.
그렇게 내가 아홉 살이 되었을 때, 언니는 열한 살이었던가?
여전히 나는 ㅅ언니를 좋아했다.
엄마 아빠가 제주도 여행을 가면서,
’ 넌 세 밤 ㅅ언니랑 같이 자면 돼 ‘라고 했을 때 나는 즐거웠었다.
어느 포근했던 날에 언니는 나에게 비밀을 말해주었다.
언니네집 담장 아래서였다.
왜 갑자기 언니가 나에게 비밀을 말해주었을까?
언니가 나에게 소곤소곤 귓속말을 했고
내 목소리도 같이 작아졌고
언니의 쌍꺼풀이 짙은 큰 두 눈은 진지했고
일자로 자른 앞머리가 바람에 살랑 날렸다.
단지 비밀이 하나 나에게 왔을 뿐인데
나는 조금 전과 다른 내가 되어있었다.
ㅅ언니의 비밀을 죽을 때까지 지키고 싶었다.
너무너무 말하고 싶은 순간에도
내 친구가 이미 아는 것처럼 어떤 얘기를 하는 순간에도
나는 비밀을 꾹꾹 눌러 마음 깊은 곳에 담아두었다.
잠들기 전에 오늘 하루도 그 비밀을 지켜냈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ㅅ언니를 그렇게나 좋아했다.
ㅅ언니는 갑자기 왔다 갑자기 떠났다.
행간을 모르는 어린애였던 나에겐 그렇게 느껴졌다.
ㅅ언니가 떠나는 건 언니에겐 축하받을 기쁜 일,
우리 엄마도 ㅅ언니에게 좋겠다며 잘됐다며 웃었다.
나만 뚱하게 멋없게 서있다가 내방으로 도망쳐 몰래 울었다.
ㅅ언니가 없는 동네에서도 난 비밀을 지켰다.
하루가 지나고 일 년이 지나고
십 년이, 이십 년이, 삼십 년이 지났다.
말할 수 없는 비밀이 나에게 있다.
이제는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이다.
내가 그 비밀이 뭔지 다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고등학생 때까진 기억했던 것도 같은데
이제는 정말 생각이 나지 않는다.
평생 나는 ㅅ언니의 비밀을 지킬 수 있겠다.
ㅅ언니를 그렇게나 좋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