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연산을 싫어한다.
갑자기 계산을 해야 할 때, 머릿속이 하얘진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 어어? 몰라, 나 계산 잘 못하는데…
당황한 표정이 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난다.
어어어?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나는 보지 못하지만, 무슨 비밀이라도 들킨 것처럼, 왠지 별로일 것만 같다.
혼자 차분히 있을 땐 계산을 잘만 하니 좀 억울하기도 하다.
내가 이렇게 갑작스러운 계산 앞에서 얼어붙는 건, 바로 라면 때문이다.
아, 라면, 짜증 나는 라면값!
어릴 때 우리 집은 작은 가게를 했다.
그때는 ‘가게빵’이라고 불렀다.
나는 말을 잘하기로 소문난 아이였고, 산수도 엄마가 가르쳐 준 대로 그럭저럭 했다.
엄마가 가게를 볼 때 나는 옆에서 종종 도왔다.
처음에는 놀이처럼 도왔는데, 엄마는 어느새 나를 믿고 가게일을 맡기기 시작했다.
나와 동생은 네 살 차이였다. 동생은 늘 동생이었고, 동생이라 늘 어렸다.
나는 다섯 살 때부터 누나였다.
그건 더 이상 어린 동생처럼 굴 수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맏이라서, 엄마는 나를 내 나이보다 늘 크게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자주, 매일, 엄마 대신 가게를 보게 됐다.
우리 집에는 계산기가 없었다.
그러니 온전히 내 머리로 계산해야 했다.
물건을 조금만 사 가는 손님은 괜찮았다.
하지만 이것저것 많이 고르는 손님이 오면, 속이 바싹바싹 탔다.
그중에서도 가장 무서웠던 건, 라면.
라면값이 100원이던 시절은 괜찮았다.
그런데 가격이 오르고, 십 원 단위가 붙기 시작하면서 계산은 복잡해졌다.
라면에 과자에 음료에 담배까지 한 번에 사는 손님이 오면 나는 태연한 척했지만 속은 조여들고 손바닥에는 땀이 찼다.
겁이 나고, 틀릴 것 같아 불안했지만 ‘저… 못하겠어요’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지금의 나라면, “이거 계산 좀 같이 해주세요.” 웃으며 말했을 텐데,
어린 나는 그러면 안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엄마 대신 가게를 지키는 주인이었고, 이건 꼭 해내야만 하는 미션 같았다.
어쩌다 계산이 틀리면 손님이 다시 찾아왔다.
그럴 땐 죄송하고 부끄러웠다. 하루 종일 기분이 가라앉았다.
그렇게 라면값은 내게 짜증 나고 무서운 존재가 됐다.
어른이 된 지금,
누군가 앞에서 갑자기 계산을 해야 할 때 내 표정이 굳고 머릿속이 하얘지는 건 그때의 기억 때문인 것 같다.
이렇게 글로 꺼내놓고 나면 마음이 조금 풀린다.
내가 덜 별로 같고, 덜 바보 같고, 스스로 보듬을 여유도 생긴다.
그때는 정말 무서웠지. 긴장되고, 막막했을 거야.
그런데 이제는 괜찮아. 몰라도 되고, 틀려도 돼.
너는 어린아이였잖아.
네가 혼자 책임져야 하는 거, 그런 건 없어.
차라리 가게 문을 그냥 잠가버려.
너는 그냥 나가서 신나게 놀아도 되는데.
어릴 때의 기억은 폭, 겹겹이 쌓여 있다.
어떤 구김은 겉에서 펼 수 있는 게 아니다.
저 안 깊숙이 손을 넣어 당겨 펴줘야 한다.
그때의 나를 유심히 살펴봐야 한다.
발견하기만 하면, 창이 열리고 바람이 분다.
구김은 자연스레 밀려나고, 묶여 있던 매듭도 쓱, 느슨해진다.
매듭이 풀리면 마음이 훌훌 자유로워진다.
남들에겐 별거 아니지만 나에겐 별 거인,
작지만 중요한 나만의 사건들,
그건 누구에게나 있다.
난 산책과 기록을 통해 기억을 낚아 올린다.
유성처럼 스쳐 지나갈 때 얼른 손을 뻗어 그 꼬리를 붙잡고 길게 이어준다.
그러면 라면값은 더 이상 무섭지 않다.
그때의 내가 몇 겹 아래에서 편안히 놀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