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숙진 Mar 18. 2021

영국에서 시작된 ICE 운동

내가 쓰러지면 누구에게 연락하나

영국의 뉴스나 드라마를 보면, 누군가 사고를 당하는 경우 Next of kin에게 연락한다는 표현을 쓴다. 주로 한 집에 사는 배우자나 부모, 가까운 친척이 Next of kin에 해당한다. 


Next of kin: 가장 가까운 친척, 최근친 (最近親)


2005년, 영국에서는 사고 당사자의 가족에게 신속하게 연락할 수 있도록 가족의 정보를 누구나 알 수 있는 명칭으로 휴대폰에 저장하자는 운동이 시작되었다. 이는 유럽을 비롯한 다른 국가로까지 확산되었다. 영국에서 근무하는 구급요원의 제안으로 시작된 운동이다. 2005년 7월 7일, 런던에서 발생한 테러가 이 운동의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이 운동이 제안하는 방식은 자신에게 가까운 사람, 즉 Next of kin의 전화번호에 이름 대신 ICE라는 공통의 명칭을 넣는 것이다. 


ICE (= In Case of Emergency): 비상시에 (즉, 비상시에 연락할 사람)


사고로 의식을 잃거나 답변을 힘들어하는 사람의 휴대폰에서 번호를 찾아내 가족에게 전화함으로써, 사고 당사자에 관한 정보를 파악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echo-news.co.uk.............rnn10.wordpress.com


위 왼쪽 사진은 학생을 대상으로 휴대폰에 ICE 번호를 저장하는 운동을 펼친 학교에 관한 기사에 실린 것이다. 오른쪽은 ICE 번호를 휴대폰에 입력하는 방식을 소개한 화면이다. 이 휴대폰 주인의 Next of kin에 해당하는 남편과 주치의 연락처, 복용약, 알레르기, 지병에 관한 정보까지 입력되어 있다. 


나는 몇 년 전 간호사 친구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읽고는 온 가족의 휴대폰에 ICE 번호를 저장했다.


하지만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이 운동에 대한 부정적 견해도 있다.


우선, 개인 휴대폰의 잠금장치가 걸린다. 보안을 위해 사용자가 휴대폰에 곧바로 설정하기도 하지만, 요즘은 무조건 비밀번호를 설정하도록 유도하는 기종이 있다. 그래서 휴대폰 주인 말고는 휴대폰 속 정보를 확인하기 힘들 수 있다. 최근 나도 휴대폰을 바꾸면서 잠금장치가 생겨나고, ICE 번호가 자연스럽게 무용지물이 되었다.


둘째, 누구를 위한 번호인가라는 지적이다. 구급요원이 시작한 운동인만큼 이 ICE 번호는 사고 당사자를 가장 먼저 접할 사람인 구급요원이 사용할 것이다, 라는 전제가 있다. 그런데 구급요원은 사고 당사자를 병원까지 옮기는 과정에서 응급 처치만 할 뿐이고, 실제 가족이나 친척에게 연락하는 일은 경찰이나 의료진이 담당한다는 지적이다. 


따지고 보면, 누가 Next of kin에게 연락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위급한 상황에서 최대한 빠르고 효율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므로, 이 두 번째 견해는, 개인적으로, 무시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입력된 내용이 자칫 개인 정보 유출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든다.


휴대폰의 잠금장치 때문에 ICE 운동이 빛을 잃게 되자, 새롭게 비상 연락처를 소지하는 방식이 나왔다. 지갑이나 휴대폰 케이스 속에 넣을 수 있는 카드 형태이다. 말 그대로 Next of kin 카드 혹은 ICE 카드이다. 



Next of kin 카드 /  ICE 카드 / 안전신분증


mynextofkin.org.uk


위 이미지는 영국의 자선단체가 제공하는 Next of kin 카드의 앞과 뒷면이다. 소지자의 이름과 함께 비상 연락처는 물론 심장 질환과 당뇨, 알레르기 증세 등의 정보도 담겨 있다. 갑자기 쓰러져 의식불명 상태인 사람의 가족에게 즉각 연락하고 당사자의 지병에 대한 정보도 미리 파악해 응급조치에 활용하기 위함이다. 이런 긴급 조치가 필요한 질병뿐만 아니라 치매를 앓는 노인, 특히 혼자 지내는 고령의 노인에게도 카드를 제공하는 것이 유용하다.


인터넷에서 Next of kin card나 ICE card를 검색하면 직접 다운로드 받아서 사용할 수 있는 크기의 파일을 제공하는 웹사이트도 있다. 한국의 일부 지자체에서는 '안전신분증'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되어 있다.


sjsori.com


이전 17화 지나친 기대도 실망도 없는 영국 차 (Tea) 문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