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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숙진 May 17. 2021

해외에 살면서 더 바빠지는 육아

"험티 덤티 샛 온 어 워... ♬~"


무심결에 내 입에서 노래가 흘러나오자 아들이 질겁하고 뜯어말린다. 


말리니까 더 하고 싶어 진다. 노래를 잘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듣는 사람이 괴로워할 정도의 음치도 아닌데 아들이 왜 이런 반응을 할까? 


이 노래는 영국의 유아들이 부르는 동요다. 초등학생만 되어도 유치하다고 안 부를 것이다. 이걸 10대 아들과 산책하는 길에 불렀다. 



어떤 노래냐 하면...


Super Simple Songs


애초에 아들을 당황시키려 부른 건 아니다. 처음에는 습관처럼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아들과의 추억이 떠올라 부르기도 하지만, 나중에는 결국 아들을 놀리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 돼버렸다. 



"엄마가, 노래 불러줄게, 울지 마!"


한 때, 노래 한 소절만으로 아들의 울음을 뚝 그치게 만드는 신통력이 내게 있었다. 


어린 아들과 같이 놀아주고 달래주기 위해 내가 선택한 방법이 노래 부르기였다. 병원이나 마트에서 무한정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어른인 나도 힘든데 아들은 더 힘겨워할 수밖에 없다. 마땅히 무료함을 달랠 방도도 없고 몸이 피곤해지니 칭얼대기 시작하겠지. 이럴 때면 아들에게 노래를 불러줬다.


육아 초기에 불러주던 노래는 '꽃밭에서', '반달', '노을', '꼬마 자동차 붕붕', '개구리 왕눈이', '아기공룡 둘리'까지, 내가 어린 시절 듣고 자란 한국의 동요와 오래된 만화 영화 주제곡이 대부분이었다. 


노래를 실제 듣고 불렀을 법한 시기에서 20여 년이 훨씬 지났음에도 다시 기억해 낼 만큼 그 예전 내가 많이 듣고 불렀으리라. 이 노래와는 거의 무관한 시대와 장소에 살면서도 아들은 엄마가 자주 흥얼거리는 소리를 듣고 안정을 찾았다. 


우는 아이를 달랠 때 부르는 노래는, 누가 무엇을 얼마나 잘 부르느냐가 중요하지 않다. 


일단 부르기 시작하면 흐름이 끊기지 않아야 한다. 나는 동요와 만화 주제곡으로 시작했다가 바닥이 나버리면 흘러간 가요마저 끄집어내야 했다. 해외에 살면서 좋은 점은, 유행이 한참 지난 한국 가요를 불러도 주변에 눈치 볼 일이 없다는 점이다.


하지만, 영국에서 육아를 하다 보니 이런 한국어 노래 메들리만으로는 부족했다.


동네 도서관에서 열리는 유아 모임에 참석했을 때다. 


또래 아이들이 매주 모여서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다가 동화 구연도 듣는 시간이다. 시종일관 즐거워하며 모임에 집중하지만, 노래를 부르는 시간만 되면 아들과 나 모두 입만 벙긋해야 했다. 아는 영국 동요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아들이 학교에 다니기 전이니, 내가 모르는 동요는 아들도 모를 수밖에 없다. 


이 날도 노래 부르기는 포기해야지 하던 찰나...

오...

이런 행운이...

몇 곡 안 되지만, 내가 아는 영국 동요가 강사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라운드 앤 라운드 더 가든... ♬~"


Scottish Book Trust


노래 부르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가사에 맞춰 아이의 손바닥에다 동그라미를 그리다가 마지막에 겨드랑이 간지럼을 태우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노래다. 이대로 따라 하기만 하면 아이가 안 웃고 버틸 수가 없다. 내 아들도, 영상에 나오는 아기처럼 손바닥에 또 그려달라고 손짓을 하곤 했다. 물론, 어느 정도 큰 아이에게 이런 노래와 동작을 시도했다가는 화를 낼 수도 있다.


이날 도서관에서 처음으로 익숙한 노래가 나오자, 아직 말도 못 하는 아들이 나를 올려다보고는 '엄마가 불러주던 노래네요'를 눈으로 말하며 얼마나 반기고 좋아하던지. 



아들이 내 노래를 듣고 행복해하던 시절도 있다



나는 그날 이후 곧바로 영국 동요집을 샀다. 지금은 다른 육아용품들과 함께 사라지고 없는 음반이다. 자선단체에 기증하거나 아이를 키우는 다른 집으로 보냈으리라. 


제목이 'Top 50 Nursery Rhymes'로 시작했던 것 같다. 어디에서 샀는지, CD인지, 테이프인지도 기억나지 않지만, 50이라는 숫자는 확실하다. 가사를 다 외울 작정까지 했으므로, 곡목이 가장 적은 50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나는 미련하다 싶을 정도로 시험공부하듯 음악을 듣고 가사를 외웠다. 영국의 Nursery Rhyme (동요)은 취학 전 아동이 주로 부르므로 유효기간이 얼마 안 된다. 영국의 아이들은 엄마 뱃속에서부터 듣고 자란 노래지 않은가. 내 아들에게는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당장이라도 써먹으려면 달달 외우며 공부하는 수밖에 없다고 여겼다. 


다행히 대부분 곡이 짧고 노랫말도 반복되었다. 한국어로 번안되어 나온 곡도 있어서 생각보다 익숙하고 쉽게 외워졌다.  


이렇게 익힌 노래 중 하나가 앞서 나온 Humpty Dumpty다. 


그리고,


The Wheels On The Bus

Hey Diddle Diddle

Two Little Dickie Birds

Wee Willie Winkie

Row Row Your Boat

Incy Wincy Spider

Old MacDonald Had a Farm

Five Little Ducks 


등의 노래는 아직도 기억한다. 


이 노래들 중, 유일하게 반복되는 문구도 거의 없고 가사마저 엉뚱한 단어의 조합에다 쉴 새 없이 빠르게 불러야 하는 'Hey Diddle Diddle'이 있다. '이걸 어떻게 외우나?' 하면서도 나는 결국 외웠고, 재미있는 가사가 지금껏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아마 그런 면이 동요의 특징이지 않을까 싶다.



CBeebies    


내가 50개의 영국 동요를 거의 다 외워갈 무렵, 한국 애니메이션을 아들과 같이 보기 시작했다. 그때 본 방송이 '뽀로로', '부루와 숲속 친구들', '구름빵'이며 주제곡도 같이 외웠다. 여전히 공부의 연속이지만 영국 동요 외우기보다는 쉬웠다. 만화를 볼 때마다 주제곡을 들을 수 있어서다. 


이후, 내가 아들에게 불러주는 노래 메들리가 제법 알차고 길어졌고, 나중에는 아들도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두 모자의 동요 부르기 역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당시 부르던 노래를 나는 아직도 외우고 그 시절을 추억으로 떠올리지만, 10대로 접어든 아들은 그 시절을 깡그리 잊어버리고 엄마의 노래를 부끄러워하기 시작했다. 


"아들, 그때는 엄마가 노래 부르기만 하면 좋아라 했잖아." 

"내일 산책하는 길에는 Incy Wincy Spider 불러볼까?"

"아니다."

"버스 지나갈 때마다 The Wheels On The Bus 불러볼까?"



"아들아 농담이야!"


커버 이미지: Photo by Kelli McClintock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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