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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숙진 Jun 09. 2021

영국에 살면 뭐가 좋아요? 2

"영국 사람들, 왜 이렇게 느려요?"


날씨 못지않게 영국에서 흔하게 나오는 불평이다. 


주문한 물품도 늦게 오고 서비스를 신청해도 늦게 개통된다. 영국에서만 경험하는 일은 아니다. 한국의 초고속 서비스는 세계 어느 나라, 어떤 문화든 따라오기 힘들다.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해 있다가 해외 어디를 가서 뭘 하더라도 한국인에게는 느리게 다가오는 이유다.


그런데도 영국의 느린 문화가 좋다고? 


나는 '느림' 대신 '느긋함'이라 표현하고 싶다. 


다들 느긋하게 사는데 나 혼자 빨리빨리를 외치고 다닐 수 없다. 배달이나 서비스 개통이 늦다고 해서 차일피일 계속 미루는 건 아니다. 예상 날짜는 지킨다. 귀찮더라도 미리 확인하고 주문할 필요가 있다.


오랜 세월 이런 느긋한 문화에 살다가 한국인을 만나면 정신이 퍼뜩 들곤 한다.


* 한국과 영국, 두 문화 사이에서 우열을 가리고자 쓴 글이 아닙니다. 살아남기 위해 좋든 싫든 영국 문화에 적응해야 했고, 그러다 보니 익숙하다 여기던 한국 문화가 오히려 생소하게 다가온 순간을 기록했습니다.



"함께 전화해서 따집시다."


B의 집을 방문했을 때다.


오전에 침대가 배달된다고 해서 가족 모두 기다리고 있었다. 곧 배달 트럭이 집 앞에 도착하고 B가 맞으러 나갔지만, 잔뜩 화난 얼굴로 되돌아오는 것이 아닌가. 직원이 부품을 빠뜨리고 오는 바람에 물류 창고로 돌아갔다고 한다. 


짜증 날 만한 일이긴 한데, 이후 B의 행동이 거슬렸다.


이때부터 침대 회사에 항의하겠다고 전화통을 붙들고 있었다. 평소에도 통화 대기가 길어지는 업체인데 주문이 한꺼번에 몰리는 토요일에 제때 연결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연결된다고 한들 무슨 소용인가. 


"우리 침대, 지금 어디에 있는 거야?"

"빨리 갖다 주지 못해?"


이렇게 따지려고? 그런다고 물류 창고로 간 직원이 더 빨리 돌아오기라도 한단 말인가?


나중에는 어이없게도, 옆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나까지 전화해 보라고 B가 재촉했다. 콜센터에 연락하려고 수십, 수백 명의 대기자가 몰려 있을 주말인데, 한 집에서 두 명이나 전화기를 붙들고 있으면 연결이 더 빨리 된다는 말인가? 


콜센터와 연결된다 해도 배달을 재촉할 방도가 없으니 다른 일을 처리하며 기다리자고 제안해 보았지만, 그는 막무가내로 전화하라고 내게 강요했다. 


강압적인 분위기에 떠밀려 시키는 대로 했지만, 통화 대기음으로 흘러나오는 아바 노래를 두어 번 듣고 나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러고는 급한 볼일이라도 생긴 것처럼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서둘러 그 집을 나와버렸다. 


이후, B 가족을 돕던 일에서 나는 자연스레 손을 뗐다. 영국 정착 과정에서 이 보다 더 속 터지는 일을 겪을 것이 뻔한데, 이 정도 일에 격분하는 사람 곁에 있다가 날벼락이라도 맞지 않을까 두려웠다. 



"그때 말한 시리얼이 어디에 있는지 사진에서 집어줄래요?"


C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우리 집에서 먹어 본 시리얼이 맛있어서 이를 사보겠다고 마트를 샅샅이 뒤졌지만 찾지 못했다고 한다. 여러 시리얼이 진열된 마트 코너 사진을 찍어 보내니 여기서 집어 달라는 뜻이다. 


당장 답변해줬으면 하는 눈치다. 쇼핑 중 대답을 초조히 기다리는 C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한 시간이나 지난 뒤 문자를 확인했다. 



"이 서류가 뭔지 아세요?"


D에게서 온 연락이다. 


은행에서 서류를 받았는데 이게 뭔지 궁금해서, 이 사람도 사진을 찍어 보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C와 D처럼 사진으로 내게 질문하는 것보다, 지척에 있을 직원에게 도움을 구하는 편이 훨씬 빠르고 현명한 상황이다. 둘 다 이 정도 영어 구사에 문제가 없음에도 당장 내가 더 빨리 답변해 주리라 기대한 모양이다. 


저 그렇게 빨리 답변 못하는데요.


영국에 온 목적과 체류 기간, 사는 지역, 가족 구성원, 직업에 따라 내게로 향하는 질문은 각기 다르다. 사람도 다르고 질문도 다르지만 이들 모두 한 가지 공통점은 있다. 한국인이라면, 질문한 즉시 곧바로 답해주기를 바란다는 점이다. 답변을 재촉하지는 않지만, 늦게 답변하면 실망하는 눈치다. 



사람들이 느긋하다는 말은 나도 서두를 필요 없다는 뜻이다. 


영국에 오기 전부터 장롱면허 출신이던 나는 영국에서 초보 운전자 시절을 보냈다.


신호 대기 중 시동이 꺼지는 바람에 신호가 두어 번 바뀌고도 차를 출발시키지 못해 쩔쩔매는 일이 종종 발생했다. 그럴 때마다 뒤 운전자가 경적 한 번 안 울리고 기다려줬다.


* 영국의 운전자가 대체로 느긋한 편이지만, 일부 대도시에서는 성격 급한 운전자도 있습니다.



"할아버지 놀라서 기절할라. 경적 울리지 마요!"


운전대를 잡은 남편을 향해 소리치고 난 뒤, 나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집 근처 재활용센터를 다녀오는 길이다.


재활용센터로 출입하는 차량 흐름을 통제하기 위해 접근 도로와 출구가 모두 일방통행으로 되어 있었다. 센터에 차를 세울 때도 한 번에 5~6대 정도만 가능하다. 앞서 내린 운전자가 자신의 폐기물을 정해진 구역에 버리거나 재활용 코너로 옮긴 후 차를 뺄 때까지, 뒤차는 기다려야 한다.


이 때문에 입구부터 차량이 길게 늘어선다. 우리도 그런 일행들 사이에서 오랜 시간 기다렸다가 작업을 끝내고 돌아가려던 참이다. 


이 날은 출구 도로까지 줄이 길게 이어졌다. 센터 입구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일방통행이 끝나고 도로가 넓어지는데도 말이다. 


70대로 보이는 노인 한 분이 수레를 끌고 도로 위를 걷고 있었다. 


노인과 수레라고 하니 폐지 줍는 노인을 연상하겠지만, 이 노인의 수레는 정원 작업에 쓰는 작은 손수레다. 나뭇가지나 풀 등 정원 쓰레기를 모아서 재활용센터에 버리고 가는 길이리라. 


도로 중앙을 따라 노인이 걷고 있었다. 구부정한 허리에 다리까지 저느라 속도는 더욱 더디다. 당장 눈앞에 차가 안 보이니 자신이 걷고 있는 길이 도로인지 모르는 듯하다. 자동차 행렬이 뒤로 길게 이어진다는 사실도 눈치를 못 채고 말이다. 사실, 이런 정원용 수레를 집 밖으로 끌고 나오는 사람도 드물다.


우리 차가 이들 거북이 행렬의 선두에 있으니 내가 앞서와 같이 남편에게 당부했던 것이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앞에 두고 남편이 성급하게 나오리라 염려는 안 했지만, 우리 뒤로 길게 이어지는 차 행렬을 신경 쓰는 눈치다. 


시동이 꺼지지 않을까 두려울 정도로 속도계 바늘이 바닥을 치는 걸 보며, 우리는 노인 뒤를 최대한 조용히 따랐다. 다행히 뒤편에 있는 그 어떤 운전자도 경적을 울리지 않았다.  



"자동차가 이렇게 조용할 수도 있나?"


거동이 불편하거나 청력이 약한 노인도 아닌 30대 초반의 여성도 위 노인처럼 도로를 막은 경험이 있다. 


좁은 인도의 반 이상을 자동차가 차지하고 있어서 유모차를 통과시킬 수 없자, 여성은 도로변으로 내려갔다. 중간중간 이런 식으로 주차된 차가 계속 나오는 바람에, 당시 한산한 도로 상태만 믿고 도로를 따라 걸었던 모양이다. 아이도 제법 크고 짐까지 실어 무거워진 유모차를 인도에서 도로로, 도로에서 다시 인도로 반복해 옮기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것도 주차된 자동차 틈 사이로 말이다.


가로등은 없고 날은 어두워지는데 점차 자신의 뒤로 불빛이 하나씩 반사된다 싶어 돌아다보니 장엄한 군인의 행렬처럼 자동차들이 소리도 없이 줄줄이 뒤를 따르고 있었다.


아...

이렇게 민망할 수가...

십수 년 전, 바로 내 얘기다. 


커버 이미지: Photo by Gotta Be Worth It on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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