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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숙진 Jun 07. 2021

영국에 살면 뭐가 좋아요? 1

간단히 말해, 영국에 살면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많다. 


취업?

영국의 직장에서 입사, 승진 시 외국인은 현지인과 동등하게 평가받기 힘들다.  


날씨?

소문대로 안 좋다. 특히, 한국의 산천이 아름답게 물들고 화창한 날씨가 이어지는 봄과 가을에 영국은 흐리고 비와 돌풍까지 동반하는 날이 종종 있다. 


음식?

이것도 소문대로 맛없다. 사실, 아무리 음식으로 유명한 나라에 살더라도 고국 음식과 집밥 생각은 늘 간절해지기 마련이다.


임신과 출산?

생소한 출산 문화에 충격받을 수 있다. 임산부가 출산 전후에 찬물을 마시고 외출도 자유롭게 한다. 신생아도 자랑스럽게 데리고 다닌다.


치안?

외국인 대상 혐오범죄, 인종차별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전염병?

2009년 신종플루와 코로나 19까지 세계적으로 전염병이 유행할 때마다, 확산 속도면에서 영국이 세계 상위권에 들었다. 방역 체계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고 사람들의 생활 태도나 영국의 지정학적 특성도 한몫하겠지만 무슨 이유에서건 두렵긴 마찬가지다.  


이런 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남편과 나는 20년 가까이 영국에서 살았고 그 사이 아들도 태어났다. 남편과 내게 주어진 기회가 영국 정착의 꿈을 버리지 못하게 했고, 무엇보다, 단점이라 할 만한 위 요소에 점차 적응해서다. 


고국을 떠나 20여 년 살아온 곳, 영국의 장점을 꼽으라고 하면, 나는 사람들의 무관심과 느긋함 두 가지를 대겠다.


* 한국과 영국, 두 문화 사이에서 우열을 가리고자 쓴 글이 아닙니다. 살아남기 위해 좋든 싫든 영국 문화에 적응해야 했고, 그러다 보니 익숙하다 여기던 한국 문화가 오히려 생소하게 다가온 순간을 기록했습니다.



"영국에서 오래 살고 싶지는 않아요."


향후 진로에 대해 얘기하던 중 A가 한 말이다. 


영국인은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서 흉금을 털어놓고 대화 나누기 힘들다고 한다. 자신의 경력과 취미, 가정에만 몰두하지, 타인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내가 장점으로 꼽는 영국인의 특성이 다른 이에게는 단점이 되는구나, 싶었다.


이에 반해, 모르는 사람에게도 친절을 베풀고 관심을 가져줄 정도로 한국인은 정이 많다. 때로는 지나친 관심이 부담스러울 정도다. 내 경우는 특히 그랬다.


내 키는 176cm로, 여자 중에는 당연히 제일 크고 남자들 틈에서도 작은 키가 아니다. 그래서인지, 만나는 사람마다 키를 물어본다. 길거리나 버스, 지하철에서 낯선 사람이 다가와 대뜸 묻기도 한다. 어떤 때는 옆에 있는 내가 듣건 말건 자기들끼리 내 키를 대화 주제로 삼는다. 


"와, 진짜 크다." 

"키도 크면서 하이힐은 왜 신었대?"  

"저 여자 옆에 함 서봐라, 너 보다 더 크겠다."  



"젊은 사람 얼굴이 그래서 우짜노!"


키에 비해 일시적이긴 하지만, 내 피부 또한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한때 여드름이 얼굴 전체를 뒤덮었던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늘 달고 살던 위염 증세가 피부로 드러난 거겠지만, 주변 사람은 겉으로 보이는 피부만 문제 삼았다. 그 시절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피부에 아무것도 안 하고 마음 편하게 살 것이다.


"여드름에는 XX가 좋은데 안 써봤어요?"  

"제가 약사인데요, 학생 얼굴 보고 안타까워서 버스에서부터 따라왔어요." 


모두 처음 보는 사람이 내게 한 말이다. 선의에서 하는 말과 행동이겠지만, 낯선 사람이 무작정 따라오거나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걸면 솔직히 무섭다.


세상에는 낯선 사람들의 관심이 모여 기적을 이루어내기도 한다. 


지하철 선로에 빠진 사람을 구해내거나

영원히 묻힐 뻔한 범죄의 진실을 밝혀내고

학대 가정의 아이를 구해내고

촛불의 기적도 이룩하고


그런데, 수많은 이의 관심과 힘을 모아서 달성할 기적의 과제로, 한 개인의 피부는 가치가 떨어지지 않는가. 또한 성인의 키는 아무리 관심을 가져도 더 크지도 줄지도 않으며 남는 키를 나눠줄 수도 없다.


다행히 내 피부는 이제 안정을 찾았으므로 타인의 관심에서 벗어났다 할 수 있지만, 키는 여전히 크다. 지금도 간혹 더 큰 여자를 만나지만 대체로 어디를 가나 내가 제일 크다. 


키에 대한 질문이 영국에서도 이어지겠지 짐작했던 나는, 내 키를 5' 9" (5피트 9인치)라고 소개할 준비를 해두었다. 영국인은 일상에서 미터법을 쓰지 않으니까. 하지만, 정작 이 수치를 써먹을 기회는 없었다. 키에 관한 정보는 병원과 보험사에서만 다루며, 공식 서류이니 미터법 그대로 입력하면 된다. 그 외 다른 곳에서는 아무도 내 키를 묻지 않았다. 


내 키에 관심을 가지는 영국인이 전혀 없었다고 할 수는 없다. 마트의 높은 선반에 진열된 물품을 내려달라고 부탁한 노인과 장애인이 그들이다.  



"이제 둘째도 (딸도) 낳아야지."  


내가 결혼하고 나서 가장 많이 들은 소리다. 


* 엄밀히 말해, 키에 대한 질문이 지금껏 가장 많이 들은 소리이며 앞으로도 계속 들어야 할 운명이니 이건 예외로 해두겠다.


얼마나 자주 들었는지 횟수로 기억할 수는 없지만, 얼마나 오래 들었는지는 추정해 볼 수 있다. 아들이 태어나서 초등학교 저학년이 될 때까지니, 7~8년 정도, 즉, 내 나이 30대 후반까지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임신과 출산이 가능한 시기라고 믿어서겠지. 


이 시기에 만나는 사람은 거의 모두 한 마디씩 건넨 셈인데, 자주 만나는 사이가 아니니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문제는, 같은 지역에 살거나 모임을 통해 알게 된 사람과의 만남이다. 볼 때마다 반복적으로 말을 꺼내는 성향이 있어서다. 


내가 두 번째로 자주 들은 소리인 '조금이라도 젊을 때 출산해야지'까지 합치면 출산하라는 잔소리를 10년 넘게 들은 셈이다.


이런 말을 인사처럼 건네는 이가 있다. 지난번에 말해놓고도 기억 못 하거나 자신의 충고가 먹힐 때까지 반복하겠다는 심산인가? 나중에는 이 사람이 거리에서 보이면 먼발치에서 길을 돌리곤 했다. 


간단한 인사말이 오가고 나면 상대는 매번 같은 말을 꺼내고...

나는 늘 같은 답변을 하고...

갑갑해진 상대가 야단치는 어조로 말을 이어가고... 


이런 불편한 상황을 더 이상 맞이하고 싶지 않았다.


-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


커버 이미지: Photo by Gotta Be Worth It on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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