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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숙진 Sep 26. 2022

영국에서 낯선 문자를 받고 잠시 공황 상태에 빠지다

"XX가 오늘 12시 30분에 6lb 12.5oz (약 3kg)의 몸무게로 태어났어요. 오랜 진통으로 고생했지만 다들 건강해요."


내 휴대폰으로 들어온 문자다.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아이 아버지 혹은 어머니의 연락이다. 즉시 축하의 답장을 하고 나도 덩달아 기뻐해줘야 할 테지만, 내게 드는 감정은 당혹감 그뿐이다. 모르는 번호이기 때문이다. 발신자의 이름도 수신자의 이름도 안 넣고 메시지를 작성한 형태로 보아하니 단체로 보낸 문자다. 나는 가까운 사이가 아니고는 휴대폰에 전화번호를 저장하지 않는 편이라, 위 사람을 모르는 이라 단정할 수 없었다. 이렇게 문자를 보낸 걸 보면 자주 연락하는 사이는 아니더라도 어떻게든 나와 인연이 닿는 사람이리라.


갑자기 공포감이 엄습하며 머릿속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어...

그러니까...

주변에...

임산부 혹은 예비 아버지가 누가 있더라?

내가 이렇게 무심한 사람이었다니...


지인이 출산을 하는데 모르고 있다니 나 스스로가 한심하게 여겨졌다. 그렇지만 아무리 자책하고 또 머리를 굴려봐도 도저히 누가 출산한 건지 혹은 애 아버지가 누군지 감이 오지 않았다. 문자에 찍힌 아기 이름에 성 (Family name)이 있지만 생소하다. 그래도 First name만 알고 지내는 이도 있지 않은가. 


참... 

남편 동료의 아내가 임신을 했다고 하던데...

거긴 예정일까지 5개월이나 남은 걸로 아는데...

벌써 출산했다면 그건 의료계 기적이잖아.

아니지...

내가 예정일을 잘못 알 수도...

어쨌건 내가 아니라 남편에게 연락했을 텐데...


6년 전의 일이다. 주변에 아는 친구가 대부분 나와 비슷한 마흔 초, 중반이므로 임신이 불가능한 건 아니다. 하지만, 출산 소식보다는 자녀의 입학이나 대회 입상 등의 소식을 주로 들려주는 추세다. 


당시 노트북으로 작업 중이던 나는 재빨리 주소록 파일을 열었다. 휴대폰에는 저장하지 않더라도 나와 연락이 닿은 사람이라면 연락처가 기록되어 있다. 이들 중 특히 영국에서 알고 지낸 이들의 이름을 하나씩 검토했다.


하지만...

아무리 뒤져봐도...

또 아무리 고민해봐도...

이들 중 출산 소식을 내게 전할 만한 이는 없다. 

임신 소식을 중간에 전한 이도 없다.


그럼, 결론은 하나밖에 없다. 

잠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잘못 보낸 문자로구만...





"축하합니다. 그런데 번호 잘못 보내신 것 같네요."




며칠 전 우연히 이 캡처 화면을 다시 열어보게 되면서 당시 상황을 떠올리게 되었다. 6년 전과는 사뭇 다른 생각도 하게 되었다. 


- 어쩌면 나와 단 한 번 마주친 사람인데 내 번호를 저장해뒀다가 단체 문자로 연락했을 수도 있잖아.

- '혹시 누구신지?'라고 질문했으면 좋지 않으려나?

- 이왕, 모르는 사람의 문자에 답하는 거라면 그것도 한 생명의 탄생을 축하하는 자리라면 좀 더 따뜻한 글로 전할 걸 그랬나?


낯선 이의 문자를 받고 5분 정도 가슴이 쿵쾅거릴 정도로 당혹감에 떨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땐 내가 왜 그랬나 이해할 수 없는 순간이기도 하다. 여전히 소심한 내 성격은 6년이나 지난 일에 대해 아쉬움을 계속 남긴다.


이제 초등학생이 되었을 XX가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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