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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숙진 Feb 05. 2024

프롤로그 - 독서왕 가족이 전하는 책 이야기

독서왕 가족의 한바탕 책 이야기 1

"마지막 장면이 그걸 의미하는 거였어?"


내가 놀라서 한 말이다.


두 모자가 독서 토론을 벌이고 있던 중이었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두 번이나 읽었음에도 마지막 장면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내가 고백했다. 그랬더니 아들이 해당 페이지를 찾아서 소리 내 읽어주고, 자신의 생각도 말해주면서 내 의문이 풀렸다.


우리 모자는 독서 동지다. 


내 뱃속에 있던 시절부터 글자를 모르는 꼬꼬마 시절까지 아들을 위해 내가 책을 읽어주면서 우리의 독서 관계가 시작되었다. 학교를 다니고 스스로 책을 읽어낼 무렵에는 아들이 읽을 만한 책을 내가 골라주기도 하고, 그러다 점차 독서 폭을 넓혀가면서 아들이 직접 고르기도 했다. 어느 때부터 두 모자가 서로 책을 추천해 주는 관계가 되었다.




요즘은 좀 어렵다 싶은 고전도서를 선택해 각자 읽은 뒤 토론을 벌이는 관계로 진화했다. 


토론이라고 해봐야 특별한 건 없다. 책에서 느낀 점이 무엇인지, 기억에 남는 장면이나 문장, 대사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정도다. 글 첫머리에 나온 것처럼 내용에 대한 의문점이 있어도 또 아쉬운 점이 있어도 토론 대상이 되었다.


나는 조금 더 나아가 책의 줄거리와 감상문까지 작성하여 발표한다. 나 혼자 설치는 것일 뿐,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은 아니다. 글쓰기와 영작 연습을 하려는 목적이 더 크다. '너도 이렇게 해봐'라고 하면 안 그래도 바쁘다고 불평하는 수험생 아들이 우리의 동맹 관계를 끊으려 할 것 같아서, '아드님, 제발 참여만 해주십사' 간절히 바랄 뿐이다.


내가 추천하는 작품을 한 번씩 읽는 남편도 어찌 보면 독서 동지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독서 토론에도 간혹 참여하는데, 어떤 때는 책을 읽지 않고도 들어와 우리 토론을 듣고 가기도 한다. 요즘 유행하는 책 요약본을 통째로 듣는 시간이니 그럴 만하다.



"그렇게 하면 속임수죠, 엄마!"


아들이 못마땅하다는 투로 이렇게 외쳤다. 


가족끼리 독서왕 경쟁을 벌이던 시절이다. 책을 읽을 때마다 간략한 정보를 입력해 두었다가 그 자료를 연말에 공개해 책을 가장 많이 읽은 이에게 상을 주는 식이다. 


초딩 주제에 TV도 안 보고 책만 붙들고 사는 이를 누가 이기랴. 당연하게도 아들이 우리 집 다독왕으로 등극했다. 독서 경쟁에서 아들에게 졌다고 분하게 여길 필요가 있겠나. 오히려 대견하게 여겼다. 


그런데, 내가 사십대로 접어들면서 슬슬 노안이 걱정되어 독서 방식을 오디오북으로 갈아탔더니 판세가 뒤집히기 시작했다. 집안일을 하며 무심히 흘려보내기 쉬운 시간에도 휴대폰만 있으면 책을 읽을 수 있으니 독서량이 폭증했다. 수년간 우리 집 공식 다독왕으로 득의양양하던 아들이 결국 불평을 터뜨렸다. 나라고 가만히 참고 있을 수는 없지. 


"종이책이든 오디오북이든 읽기만 하면 되는 거 아녀?"



"무슨 앱인지 좀 보여줄래요?"


물품을 배달하러 왔던 택배 기사의 말이다.


혼자 오디오북을 듣던 중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서 급하게 나가느라 앱을 끄지도 않고, 또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어둔 채 문을 열었다. 스티븐 킹의 스릴러 한 장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 말고 다른 사람이 곁에 있는 것도 아니고 TV나 라디오를 켜두었다고 하기에는 소리 울림이 너무나 가깝다. 바로 내 옆구리에서 누군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고함을 치는 소리가 나오는 상태에서 택배 기사를 맞이했으니 의아해할 만하다.


오디오북을 틀어놔서 그런 거라고 해명하며 겸연쩍은 미소와 함께 휴대폰을 꺼내 보였다. 기사가 그냥 웃어넘기겠거니 했는데, 내가 이용하는 앱이 뭔지 가르쳐 달라고 했다. 


아...

책 좋아하는 사람, 그것도 오디오북에 관심 가지는 사람을 이런 자리에서 만나다니...

곧바로 집으로 불러들여 차라도 대접하며 같이 이야기 나누고 싶었다.


허나...

지금 당장 우리 집 말고도 얼마나 많은 곳에서 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겠는가. 

하루종일 차를 몰고 다니며 배달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일하는 사람의 시간을 뺏을 수는 없지.


나는 바로 몇 초 전만 해도 당혹감으로 어쩔 줄 몰라하던 일은 싹 잊어버리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오디오북에 관심 있냐고 남자에게 물었다. 그랬더니 자기 딸에게 소개해주려는 거라고 했다.


앱 이름을 말해줘도 남자가 뭔지 모르겠으니 직접 보여달라고 하길래, 휴대폰 화면을 펼쳐 보여 사진으로 찍어가게 해 주었다.



"참, 그 앱 말고 영국 도서관 앱부터 써봐요. 그러면 오디오북이 무료인데..."


택배 상자를 내게 전해주고 급하게 차로 달려가는 남자의 뒤통수에 대고 이렇게 소리치려 했으나 이미 늦었다. 아마, 말할 기회가 있었다 해도 내 성격상 그 정도 선에서 그치지 않았으리라. 


"그 앱을 깔려면요, 도서관 홈페이지나 앱스토어에 가서..."

"도서관 카드가 없다고요? 그럼..."

"회원 정보를 받으면 그걸로 앱에 로그인해서..."

.....


줄줄이 늘어놓아야 직성이 풀리지 않겠나. 




낯선 사람에게까지 책 이야기를 늘어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러다 나와 마주치기만 하면 '또 책 이야기하겠구나' 싶어 다들 도망가지 않을까 걱정된다. 


이런 걱정 좀 그만하려고, 브런치에서라도 그동안 하고 싶었던 책 이야기를 실컷 해볼까 한다. 혼자만의 독백이 되더라도 어쩔 수 없다. 누군가는 관심을 가지고 읽어주리라 기대해 본다. 책도 읽고 영어공부도 한다는 취지로 시작하니.


나의 작년 독서량을 집계해 보니 200권이 넘었다. 여기에는 50쪽 미만의 단편도 여럿 포함되어 있어서 권수만 놓고 독서량을 비교하기는 힘들다. 모든 책을 300쪽 전후의 장편소설 분량으로 환산하면 140여 권을 읽었다 할 수 있다. 한국인의 연간 독서량이 11권, 영국인은 12권이라고 하는데, 나의 경우 이들 평균 독서량의 10배가 넘으니 많이 읽었다 할 수 있다.


하지만, 하루에 책 한 권 정도는 거뜬히 읽는다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나보다 더 왕성한 독서가가 분명 어딘가 있으리라. 그래서, 단독으로 독서왕 타이틀을 달기는 부끄럽지만, 그럼에도 '독서왕'을 어딘가에 갖다 붙이고 싶은 심정에 내 가족 사연까지 가져왔다. 가족 모두 책을 즐겨 읽고 토론까지 벌일 정도면 독서왕 가족으로 불러도 되지 않을까? 하다 못해 처음 만난 택배 기사와의 일화도 가져오지 않았나. 그뿐이랴. 책으로 영어공부하는 비법도 공유하는 서비스까지. 이 정도면 독서왕 가족 타이틀을 붙여도 되지 않을까?


책에 얽힌 일화와 책으로 영어공부하는 이야기, 영어 독서를 쉽게 하는 법에 관한 연재와

북클럽을 운영하며 멤버들과 함께 같은 책을 읽고 감상문을 올리는 연재...


이렇게 두 가지 연재를 매주 번갈아 가며 운영하니, 시간이 된다면 두 가지를 모두 병행해 읽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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