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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숙진 Mar 04. 2024

작품을 몽땅 읽을 정도로 내가 좋아한 작가들

나는 한 권의 책이 마음에 들면 해당 작가의 다른 책까지 모조리 구해 읽는 성향이 있다. 마음에 드는 책을 고르는 작업이 만만치 않으니 이렇게 해서라도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다. 


우연히 읽게 된 책 한 권만으로도 행복해지는데, 그렇게 알게 된 작가의 다른 책까지 줄줄이 마음에 든다면 로또에라도 당첨된 듯한 기분이 들 정도다.


맞다, '로또 당첨'...


몇십 억이나 되는, 평생에 한 번 걸릴까 말까 할 정도로 거액이 보장되는 그런 로또는 아니고... 즉석에서 긁어서 몇 만 원 혹은 치즈 버거 세트 하나 더... 이 정도로 소소한 보상이 주어지는 로또 말이다. 난 이 정도도 잘 안 걸렸으니. 


그만큼, 한 작가의 책을 다 읽겠다는 목표는 실패할 확률이 크다. 


우선, 작가가 쓴 다른 책이 앞서 읽은 책과 비슷한 성향이겠거니 하는 기대가 쉽게 어긋나고 만다. 이름만 들어도 SF, 판타지, 공포, 스릴러, 로맨스, 역사 등 특정 장르가 저절로 떠오를 정도로 확고하게 장르를 지향하는 작가가 있는 반면, 장르가 모호한 작품을 쓰는 작가도 있지 않은가. 또, 명확하게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왕성하게 활동하는 작가도 있다.


같은 작가의 책을 다 읽겠다는 목표가 실패하는 또 다른 이유라면, 스릴러와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 내 취향 때문이다. 이런 소설의 특성상 범죄의 잔인성이나 공포감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위를 벗어나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다. 


교묘한 수법으로 무고한 타인에게 금전적 정신적 피해를 입히는 화이트 칼라 범죄도 있지만, 잔인하게 살육을 저지르는 극악무도한 범죄까지 모두 스릴러의 단골 소재 아닌가. 그러다 보니 아무리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이라도 잔인성이 어느 정도인지 사전에 확인하는 등 취사선택 할 수밖에 없다. 


확률은 낮지만 그럼에도 작품을 몽땅 읽거나 아직 다 읽지는 못해도 언제든 다 읽으려 벼르고 있는, 그토록 내가 흠뻑 빠진 작가를 이 자리에 소개해보겠다. 



메이브 빈치 

Maeve Binchy


아일랜드 출신 소설가, 극작가, 저널리스트인 메이브 빈치 (1939~2012).


올해는 다른 크리스마스 

체스트넛 스트리트

비와 별이 내리는 밤 

풀하우스 

그 겨울의 일주일

유리 호수

단짝 친구들

타라 로드 


외에도 수많은 소설과 희곡을 썼지만, 한국에는 덜 알려진 편이다. 영화로 제작된 <단짝 친구들>과 <타라 로드>도 마찬가지다. 


책을 읽는 내내 아일랜드의 거리와 해변, 숲을 거닐고 싶다는 충동이 일 정도로 작가의 고향 이야기가 곳곳에 아름답게 펼쳐진다. 


낯선 도시를 여행하던 중 우연히 책 한 권을 집어 들면서 메이브 빈치라는 작가를 알게 되었고, 그 후 한 작가의 작품을 모두 구해 읽는 습관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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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리 호수> 


아일랜드는 아니고 북아일랜드를 여행하던 중 발견한 책이다. 


메이브 빈치의 작품은 장르를 따지기 힘들다. 가족과 사랑, 치정, 동성애, 범죄가 거의 모든 작품에 조금씩 얽혀 등장한다. 어쩌면 내 또래 여성이 즐겨 보는 아침 드라마 소재가 될만한 내용이잘 읽혔는지도 모른다. 


메이브 빈치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주인공이 여럿 등장한다는 점이다. 같은 상황에 처한 여러 명의 등장인물을 각기 다른 각도에서 서술한다. 또한, 이를 별도의 책으로 탄생시킨 경우도 있다.


등장인물이나 이야기 소재가 유사하긴 하지만, 저자의 독특한 구술 방식 덕택에 지루함을 느낄 겨를 없이 끝까지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다. 


아일랜드라는 배경이 늘 등장하고 애절하고 안타까운 심정으로 책을 읽어 나가다가도 결말에 이르면 가슴이 따뜻해진다. 


작가는 1982년부터 매 2~3년 간격으로 소설을 한 편씩 탄생시켰는데 2012년에 지병으로 작고하면서 더 이상 새로운 작품을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아가사 크리스티

Agatha Christie


영국 출신 소설가, 극작가인 아가사 크리스티 (1890~1976).


스릴러, 탐정 소설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작가다.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스타일스 저택의 죽음

오리엔트 특급 살인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움직이는 손가락 

빛나는 청산가리 

쥐덫


<오리엔트 특급 살인>과 <쥐덫>처럼 영화와 연극으로 유명해진 작품도 있는데, 아가사 크리스티가 쓴 작품 중에는 소설이 아닌 무대 공연이나 라디오 방송용 희곡이 유난히 많다.


amazon.co.uk


↑ <쥐덫>


고등학생 한글 번역본으로 처음 대할 때만 해도 소설이라 생각했는데, 사실은 희곡 작품이었다. 1952년 런던에서 초연된 이후 코로나 시기를 제외하고 지금껏 공연되고 있는 <쥐덫>은 세계 최장 공연 연극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될 정도다. 


저자는, 아가사 크리스티가 아닌 메리 웨스트매컷 (Mary Westmacott)이라는 필명으로 작품을 내기도 했다. 


인생의 양식

두 번째 봄

봄에 나는 없었다

장미와 주목

딸은 딸이다

사랑을 배운다


이 중 한 작품을 읽게 되었는데, 아가사 크리스티가 필명으로 쓴 책이라는 사실을 알고 시작했지만, 막연히 이 책도 전작과 유사한 추리 소설이겠거니 짐작했다. 자신의 이름에 쏠리는 유명세에서 벗어나 순수하게 작품성만으로 인정받고자 본명 대신 필명으로 작품을 시도하는 작가가 있듯 말이다.


"주인공이 기차를 타고 가네..."

"그래, 다른 작품도 기차나 배를 타고 가면서 사건이 시작되지..."

"기차가 멈추고 주인공이 오도 가도 못하게 되네..."

"이제 곧 살인 사건이 벌어지겠군..."

"잉, 아직 아무도 안 죽었어?"


작품을 반 이상 읽어 갈 때까지도 이런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abebooks.co.uk


↑ <봄에 나는 없었다>


살인 사건이 언제 벌어질지, 누가 수상한 행동을 하는지 알아채려 노심초사하는 마음으로 읽었다.


알고 보니 작가의 기존 집필 방식, 장르와는 전혀 다르게 쓴 작품이었다. 자전적 소설에 가깝다는 평도 있다. 이 사실을 모르고 추리 소설이라 착각하고 읽는 바람에 이야기가 계속 엉뚱하게 흘러간다 싶었다. 그럼에도 상당히 흥미롭게 읽었던 책이다. 나처럼 작가에 대한 선입관을 지닌 독자를 위해 아가사 크리스티가 과감한 도전을 한 것이 아닐까 짐작된다.


내가 익히 잘 알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성향의 작품 때문에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을 몽땅 읽는 건 불가능하지 않을까 우려했지만, 이런 걱정 없이 앞으로도 마음껏 읽을 수 있을 듯하다.




리안 모리아티

Liane Moriarty


호주 출신의 소설가 (1966~      )


지금껏 9편의 소설을 냈으니 이 자리에 소개한 작가 중에는 작품이 가장 적다고 할 수 있다. 나이가 제일 어리고 작품 활동 시기도 짧으니 그럴 만도 하다. 덕분에 이 글의 제목에 가장 잘 들어맞는 작가로 소개할 수 있다. 9편의 책을 다 읽었으니.


지금껏 나온 리안 모리아티 소설의 오디오북 버전은 모두 한 명의 성우가 낭독해 준다. 나는 대부분의 독서를 오디오북에 의존하다 보니 성우의 목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아 작품을 고르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다. 다행히, 리안 모리아티의 소설은 오디오북 버전으로 한 번 더 매력을 발산하다. 작품 분위기에 맞게 성우가 정말 찰지게 잘 읽어주기에. 





↑ <허즈번드 시크릿>


나보다 책을 더 좋아하는 친구의 추천으로 고른 책인데, 이 또한 작가의 모든 작품을 섭렵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예전 종이책으로 읽었던 작품을 최근 다시 오디오북으로 하나씩 구해 읽으며 또 한 번 작가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다. 


세 가지 소원

마지막 기념일

기억을 잃어버린 앨리스

최면치료사의 러브스토리

허즈번드 시크릿

커져버린 사소한 거짓말

정말 지독한 오후

아홉 명의 완벽한 타인들

사과는 떨어지지 않는다


이 중 <커져버린 사소한 거짓말>과 <아홉 명의 완벽한 타인들>은 TV 드라마로 제작되었고 이외 다른 작품도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 협의 중이라고 한다.


리안 모리아티는 지금껏 9편의 소설을 냈으며, 이도 2~3년 간격으로 나온 셈이다. 마지막 작품이 나온 해가 2021년이니 곧 새 작품이 나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스티븐 킹 

Stephen King


미국 출신의 소설가 (1947~     )


너무나 좋아하는 작가지만, 이 자리에 소개하기에는 약간의 망설임이 있다. 공포 소설의 거장이라는 타이틀 때문이다. 


스티븐 킹 하면 스릴러, 공포, 판타지까지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집필하지 않았나. 이 중에서 공포물은 내가 범접하기 힘든 영역이다. <캐리>, <샤이닝>, <그것>, <미저리>, <다크타워>, <닥터슬립> 등 영화로도 유명한 그의 작품에는 공포물이 유독 많다. 


아무리 좋아하는 작가라 하더라도 그래서 그의 왕성한 집필 활동을 멀리서나마 응원하고 있지만, 내 성향과는 거리가 먼 작품은 선뜻 펼치고 싶지 않다. 다행히, 스티븐 킹의 작품 중 공포물로 분류되는 <미저리>, <돌로레스 클레이븐>, <그린 마일>을 읽어 보니 묘사가 다소 잔혹하긴 하지만 애초에 우려하던 만큼 공포감이 강하지는 않았다. 다른 책도 어쩌면 조금씩 읽어나갈 수 있겠다는 희망이 든다.


audible.co.uk


↑ <미저리>


스티븐 킹 작품도 워낙 많이 읽어서 이 또한 불확실한데, 이걸 가장 먼저 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고전 영화를 패러디하는 코미디 방송에서 이경규와 양희경이 <미저리>가 아닌 <머저리>라는 제목으로 연기한 장면이 기억난다. 포복절도하며 보았던 TV 속 장면 때문인지 아니면 진짜 <미저리> 영화의 주연을 맡은 캐시 베이츠의 연기력 때문인지 공포물로 분류되는 작품임에도 그다지 큰 두려움 없이 읽을 수 있었다. 스티븐 킹 작품 중 단연 최고라 꼽고 싶은데, 아직 안 읽은 작품이 더 많기에 현재까지 순위가 그렇다는 말이다.



스티븐 킹이라는 작가 자체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그의 저서 <유혹하는 글쓰기>를 통해서다. 


wob.com


제목만 보면, 글쓰기 비법을 전수하는 지침서라 생각할 수 있지만, 책의 전반부는 작가의 글쓰기 인생이 담긴 자서전에 가깝다. 각 작품의 탄생 배경과 그 과정에 저자가 겪은 일상, 사건사고까지 너무나 흥미롭게 펼쳐낸다. 책의 후반부가 되어서야 본격적인 글쓰기 지침이 나온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기까지 고단한 삶을 거치며 터득한 글쓰기 철학이라 할 수 있다.


커버 이미지: Photo by Ricky Esquivel on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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