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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숙진 Nov 23. 2020

무단횡단? 그게 뭔가요?

무단횡단이 없는 영국

영국의 한 교수가 미국에서 겪은 일이다. 


학회 참석차 애틀랜타에 머물고 있을 때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양쪽에 위치한 두 개의 호텔에서 학회가 동시에 열리고 있었다. H 호텔에서 한 세션을 마치고 다음 행사 장소인 맞은편 호텔로 가기 위해 도로를 건너려 했다. 한 젊은이가 불쑥 내 앞을 가로막더니 "이곳에서 길을 건너면 안 됩니다"라고 소리치는 것이 아닌가. 처음 보는 사람에게 대뜸 소리부터 치니 불쾌했지만, "조언해줘서 고마워요"라고 말을 건넨 후 목적지로 계속 향했다. 그랬더니 이 사람이 아까보다 더 거친 태도로 나오며 내게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한다. 낯선 사람이 무작정 신분증을 요구하니 황당할 수밖에 없다. "그럼 당신 것부터 보여주시오"라고 받아쳤다. 그랬더니 이 남자가 "당신을 체포하겠소"라고 외치며 내 다리를 발로 걷어 차고 땅바닥에 쓰러뜨려 꼼짝 못 하게 했다. 이 남자의 동료로 보이는 이들까지 갑자기 여럿 나타나 내 주위를 둘러싼다. 



Telegraph


위 사진이 실린 기사를 읽고, 해당 교수의 입장에서 내가 옮겨 적은 글이다. 이 교수는 이날 경찰에 체포되어 8시간이나 철창신세를 져야 했다. 2007년에 있었던 일인데 무기도 없고 도주범도 아닌, 무단횡단이라는 이유만으로 50대 남성에게 다섯 명의 경찰이 달려든 것이다. 미국 경찰의 과잉 대응과 폭력은 그 때나 지금이나 논란이 되긴 마찬가지다. 영국 문화에 익숙한 이 교수는 미국의 교통법규는 물론 경찰 명령과 복종 문화를 알지 못한 것이다. 상대가 경찰인지도 몰랐다고 한다.




영국에는 ‘무단횡단’이라는 말이 없다. Jaywalking이라는 단어는 있어도 쓸 일이 없다. '무단횡단'을 규정하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초보 해외 여행자를 대하는 여행사 직원이나 노부모에게 효도 관광을 시켜주는 자녀가 있다면


외국에는 무단횡단이 불법입니다. 영국에서처럼 아무 데나 길을 건너면 안 돼요. 벌금을 내거나 체포당할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라고 누누이 강조할 것이다. 


영국의 거리를 걷다 보면 신호등이나 건널목을 눈앞에 두고도 차도를 당당하게 건너는 사람이 있다. 아직 초록 신호등이 안 들어왔는데도 자연스럽게 횡단보도를 지나기도 한다. 길을 가던 경찰까지 이들 행렬에 동참할 때도 있어서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다. 어린 아들을 동반하고 다니면, 아직 길 건널 생각도 없는데 달려오던 차가 먼발치부터 속도를 늦추고는 우리 모자더러 길을 건너라고 손짓을 해줬다.


고속도로처럼 보행자의 출입 자체가 불가능한 곳을 제외하고 영국의 모든 도로는 건널 수 있다. 사람, 동물 할 것 없이 누구든 먼저 도로에 발을 들여놓으면 우선권이 주어지므로 운전자는 차를 정지할 의무가 있다. 보행자를 배려하는 광경을 자주 목격하다 보니 외국인들은 "영국 운전자가 친절하다"라고 평한다. 그런데 이는 기본 교통법규를 준수한 것에 불과하다. 



www.gov.uk


위 사진은 영국의 보행자와 운전자가 지켜야 할 안전 수칙을 소개한 사이트에 실린 것이다. 왼쪽 사진은 보행자가 안전하게 길을 건너는 방법을 설명한다. 건널목이 많지 않은 영국의 주택가는 이렇게 건너는 광경이 흔하다. 오른쪽은 운전자가 보행자를 만났을 때 대처하는 방법을 설명한다. 위험해 보이지만, 이 상황에는 보행자에게 우선권이 주어진다.



- 영국에 처음 오는 분들에게 -


영국의 운전자가 친절하다고 (법규를 잘 지킨다고) 여유를 가지면 안 됩니다. 정지선도 제대로 안 지켜놓고 보행자에게 신경질적으로 나오는 운전자도 있습니다. 무단횡단이 가능하다고 마음 놓고 돌아다녀도 안 됩니다. 운전 방향이 한국과 반대이니 어린이는 물론 성인도 길을 건널 때 좌우 살피는 방식에 새로 적응해야 합니다.


운전하는 분들은, 어디서나 보행자가 튀어나올 수 있고 건널목이 아닌 곳에도 길을 건너는 이가 있으니 대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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