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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숙진 Nov 16. 2020

영국에 사니까 사용하는 것, 버리는 것, 어색한 것

"이거 들고나가면 다들 이상하게 쳐다보지 않을까?"


어떤 물품이든 내가 편하다 싶으면 계속 쓰기 마련이지만, 내 경우, 영국에 오면서 특히 쓸모를 잃어버리거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한 것이 있다.


영국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사용하게 된 물품이 있는가 하면, 한국에서 챙겨 왔다가 결국 버리고 만 것이 있다. 또한, 주위에 아무도 안 쓰는 거라 어색하지만 '이것만은 포기 못해'라는 의지로 사용하는 것도 있다. 


같은 영국에서라도 주변 환경과 생활 습관에 따라서는, 나와 전혀 다른 관점을 지닌 사람도 있으리라. 철저히 내 개인적 경험에서 나온 분류일 뿐이다.



"영국에서 살다 보니 이건 꼭 필요하다 싶어서요."



1. 미아방지 끈


미디어다음 통신원 시절, 이 끈을 주제로 기사를 낸 적 있는데 내가 적은 글 중 가장 많은 조회수를 기록했다. 당시 한국에 정식으로 알려지지 않아서인지, 이 끈의 한글 명칭도 없어서 그때는 '아기 끈'이라고 내 기사에 표기했다. 기록적인 조회수 덕택에 내 글을 향해 쏟아지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많은 관심만큼 비난도 거셌다. 아동 학대 제품을 미화시킨다, 업체와 결탁한 장사꾼이다 등.



기사가 나갈 무렵 백일도 안 되었던 아들이 중3의 나이가 될 때까지 중간에 몇 차례 고국에 들렀지만 이 제품을 사용하는 이를 본 적은 없다. 지금도 한글 포털을 검색하면 대부분 수입품만 나오는 걸 보면 여전히 한국인 정서에는 안 맞는가 보다. 내가 이 제품 홍보 담당자였다면 실패작이 아닐까?


당시 나도 이 끈을 쓸지 확신은 없는 데다 아들이 걸음마를 늦게 시작한 편이라 사놓고 기다리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겨우 걷기 시작한다 싶던 아이가 차도를 향해 잽싸게 뛰는 걸 보고 당장 쓰기 시작했다. 


고국 방문길에 착용하고 다녔더니 별별 소리를 다 들었다.


"허이, 저 놈 개 꼴로 하고 다니네."

"아들 정서에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겠니?"


귀가 따가울 정도로 질책을 받았지만 그 시절로 돌아간다 해도 반드시 다시 쓰고 말 육아 용품이다.



2. 장화 + 방수복


장화와 방수복은 영국의 기후적 특성 때문에 선택했다. 


산책과 아이 등하교, 정원 관리, 여행까지 두루 쓰인다. 비 오는 날 유모차를 끌면서 동시에 우산을 들기는 불편하니 방수복이 유용하다. 비가 잦은 데다 돌풍까지 동반하는 영국의 봄가을에 우산이 망가지거나 날아갈 뻔한 일을 몇 차례 겪고 나니 더욱 방수복이 절실했다. 


학교에서 견학을 갈 때도 장화와 방수복이 준비물로 빠지지 않는다.



↑ 학교에서 떠난 견학이나 가족 여행에도 장화와 방수복이 필수다.


도심 한복판의 빌딩 숲을 제외하고 사람이 다닐만한 장소면 어디든 포장과 비포장 길이 공존하는 영국에는 비가 그쳐도 며칠간 땅이 젖기 마련이다. 자연경관을 즐기며 오래 걷고자 한다면 장화를 챙기는 편이 유리하다.


한여름에도 갑자기 기온이 떨어지고 화창한 날씨에도 언제 비가 쏟아질지 모르는 등 하루에 사계절이 있다는 영국의 변화무쌍한 날씨에 적응하려면 가볍게 접어 보관할 수 있는 방수복이 편리하다.



3. 비타민 D


이것도 영국의 날씨와 연관된다. 


겨울에 해가 짧아지니 영국의 연간 일조량은 흑야 현상이 있는 북유럽 국가보다 약간 더 높은 수준이다. 그래서 우리 가족 모두 비타민 D를 챙겨 먹는다. 영국 보건 당국도 권하는 영양제다.


Getty Images



"영국에 살다 보니 별 쓸모가 없더라고요."


1. 수영모


영국의 수영장에 가보면 수영모를 안 쓰는 사람이 많다는 점에 놀라고 만다. 수영장에서 지켜야 할 규칙에 '수영모 착용'은 없으니. 초등학교 정규 수업에도 수영이 있어서 아들도 참여했지만 수영모를 챙겨갈 필요는 없었다.


hubbardswim.com....................everybody.org.uk


초창기만 해도 나는 영국의 수영장에서 수영모를 쓰는 소수에 해당했다. 긴 머리가 수영에 방해가 되기에 한국에서 가져온 수영모를 계속 썼다. 그러다가 낡아서 버린 뒤부터 수영모를 포기하고 말았다. 


대다수 영국인의 행동을 따른다기보다 내가 불편해서다. 당시 영국에서 구할 수 있는 수영모가 대부분 실리콘 재질이었는데, 서양인보다 두상도 크고 머리까지 긴 상태에서 실리콘 수영모를 쓰기는 부담스러웠다. 어쩔 수없이 다른 여성들처럼 머리를 핀으로 최대한 고정시켜서 수영하는 습관을 들였다.



2. 가죽옷


이 또한 영국의 날씨 때문이며 내 주관적 견해에 해당한다. 


한겨울에 '니 얼어 죽을라고 그라나'라는 잔소리에도 짧은 치마를 고수하는 사람이 있듯, 번거로운 관리법과 습한 날씨에도 가죽옷으로 멋을 내겠다는 사람을 말릴 이유는 없다. 같은 영국에서지만, 일 년 내내 가죽 롱코트만 입고 출근하는 동료도 있었다.


내 경우, 영국에 올 때 챙겨 온 가죽옷은 오래전 이미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 없다. 내 경고에도 불구하고 영국에서 가죽 재킷을 구매했던 남편. 다행히 중고라 큰 부담은 안 되었지만 계절이 바뀌고도 계속 보관만 하고 꺼내 입지 않다가 결국 망가뜨리고 말았다.



3. 전기밥솥


한국인이 전기밥솥을 안 쓴다고? 

아무리 해외에 살더라도 밥은 먹을 텐데? 

다른 집에는 있던데? 


이렇게 반문할 수밖에 없으리라. 이것도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담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집 부엌 한 구석을 전기밥솥이 차지하고 있었다.


우리 가족은 아침식사로 빵과 시리얼, 오트밀을 번갈아 가며 먹고 점심으로 아들은 샌드위치 도시락, 남편은 회사 식당 메뉴를, 나는 집에서 밥을 먹는다. 저녁에만 가족 모두가 밥을 먹는 셈인데, 이마저도 남편이 회식을 가거나, 밥 대신 면이나 감자 등으로 대체할 때가 있으니 3명이 하루 평균 한 끼만 밥을 먹는 셈이다. 


당연히 밥을 해놓으면 며칠씩 밥솥에 남았다. 그렇다고 작은 솥을 사서 매번 해 먹는 건 더 비효율적이다 싶어, 전기밥솥은 치우고 냄비에 밥을 짓기 시작했다. 냄비째 냉장고에 보관하기도 편하다.



"영국에서 사용하기는 어색하지만 그래도 포기 못해요!"


* 영국에서 사용하기 어색한 물품은 사실 별로 없다. 주변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나라요, 이방인이 개인적으로 하는 행동에 크게 관심을 가지지는 않으니.


양산


일조량이 적은 영국에서는 해가 보이기만 하면 어디서든 드러눕는 사람이 있다. 그동안 그리웠던 해를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부족했던 일조량을 한 번에 채우려는 듯하다. 안타깝게도, 일조량이 적은 국가일수록 피부암 발병률이 높다고 한다.


이런 영국에서 'Parasol'이라고 하면 정원이나 해변 등에 꽂아두는 대형 파라솔로 인식한다. 휴대용 양산은 고전 영화에서나 볼 수 있다. 제대로 된 양산을 구할 수 없으니 나는 우산을 양산 대용으로 쓰고 다녔다. 


비가 와도 그대로 맞고 다니는 이가 많은 영국에서 화창한 날 양산으로 둔갑시킨 우산을 들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 아들의 운동회 때 이러고 돌아다녔다.


운동회를 관람할 때 특히 양산이 유용하다. 한국과 달리, 주로 6월과 7월 사이에 열리는 학교 행사라 3시간여 동안 햇빛에 노출되는데 자외선 차단제 하나만으로 피부를 보호할 수는 없지 않은가.


곳곳에서 의아해하는 눈초리가 내게 쏟아지지만, 학생들이 운동장 트랙을 따라 각 경기 종목을 치르느라 구경꾼들도 몇 차례씩 자리를 옮길 무렵 다들 적응했는지 더 이상 쳐다보지 않았다. 


다행히 아들은 경기하느라 바쁜지, 땡볕에 우산 쓰고 다니는 엄마를 황당한 눈으로 바라보긴 해도 만류하러 오지는 않았다.


그래서 내가 쓰고 싶은 건 다 쓸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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