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맞는 육아법 찾기
오늘 아침 신문을 살펴보니, 눈에 띄는 기사가 보였다.(기혼 여성 "자녀 반드시 있어야" 처음 50% 밑돌아) 기혼여성 2명 중 1명은 자녀가 꼭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결혼을 결심하고 나서 아이를 갖는 것에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다. 그 생각을 거슬러 올라가면 고등학교 때부터였다. 화목한 가정을 꾸린 부모님을 보며, 자연스레 내 가족을 찾고 새로운 구성원을 얻고 싶었다. 그러나 홀로 서울에서 유학하며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내가 바라는 가정을 꾸리기란... 쉽지 않았다. 내 입에 풀칠하기에 급급해서 누구를 챙길 형편이 되지 못했다. 성인이 된 후, 5년간 함께 살아왔던 동생에게도 그리 넉넉하게 베푸는 누나가 되지 못했다. 지금 내가 결혼한 후 아이를 얻게 될 수 있었던 것은?!... 예전보다 나은 직장과 일을 선택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또 다른 이유는 부모님의 조바심도 한몫했을리라.
어른들의 조바심은 결혼해서 아이를 갖는 것까지 이어진다. 통상적으로 살펴볼 때, 기혼자들이 제일 많이 듣는 질문은 "아이 있어요?", "아이를 언제 가질 계획이세요?", "둘째는요?" 등이다. 흠, 나는 되도록이면 이런 질문을 피하려고 한다. 아이를 갖고 아이를 낳는 일이란... 지극히 사적인 영역이기 때문이다. 어느 직장과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 한 사람의 가치관과 진로에 직결된 결과처럼 결혼과 임신, 출산도 대동소이한 결과다. 어느 누구도 그 사람의 인생의 발걸음을 무력으로 옮길 수 없다. 무엇보다 인생에서 변화를 주고자 한다면, 이직보다 결혼과 출산이 매일 똑같은 일상에 큰 변화를 가져다준다. 20대의 일기장에 계획한 대로 다 펼쳐낼 수 있는 일이 아닌, 내 모든 걸 다 내어주고 감수할 수 있어야 하는 책임감. 그 책임감과 의무가 발목을 잡을 때가 종종 있다.
"누가 빨리 간다고 해서 따라가려다 보면 페이스를 잃고 오히려 뒤처지게 된다." 지난해 10월, 신문에서 만난 배우 류승룡의 문구를 일기장 한편에 메모한 적이 있었다.(소문난 올레꾼, 류승룡도 치유의 길 함께 걸어) 그의 말처럼 사람마다 인생 스케줄이 제 각각인 것이다. 자신의 인생의 적기를 찾아서 유학을 가고, 일을 시작하고, 결혼하며 아기를 낳는다. 전성기, 전환기... 어느 누구와 시점이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의 진로를 절대 부러워하거나 따라갈 이유가 없다고 본다. 자신이 서 있는 위치에서 원하는 방향대로 묵묵히 걸어 나가면 된다. 남들 하는 것을 따라가다 보면 자신을 잃게 되는 것 같다. 자신의 색을 잃게 되는 것만큼 안타까운 일은 없는 듯싶다. (참고로 인생의 긴 레이스에서 기회와 적기를 잘 찾고 자신이 원하던 바를 이루기 위해선, 자기 자신에 대해 연구를 많이 해야 한다. 마치 취업의 취업 면접을 보는 것처럼 말이다.)
지난해 9월, 출산 후 백일 간 친정에서 몸조리를 하며 지냈었다. 아이는 원래 사는 지역에서 태어났고, 조리원을 나오며 내가 향한 곳은 친정이었다. 아이를 품은 막달에 친정에서 지낸 시간보다 출산 후 아이를 데리고 친정에서 보낸 시간은... 정말이지 망설여졌다. 어린 아기를 키우는 일이란... 듣기에도 육체적으로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들여야 하는 일이니, 부모님이 주름살이 절로 늘 수밖에 없을 거 같았다. 그러나 몇 달간 부모님과 지내다 보니 현실에선 큰 걱정거리가 되지 않았다. 나는 아기를 낳은 엄마가 아닌 아이를 기르는 엄마가 되기까지 일정기간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이 시간 덕에 '엄마가 되는 수습기간'을 가지게 됐다. 온전히 백일 간 아이와 관련된 모든 행위를 홀로 할 수 있는 틀이 잡혀 독박 육아도 며칠간 가능했다.
이 행위 외에 당연히 갖춰야 할 것은 엄마가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 곧 태도였다. 온전히 한 존재로 아이를 품어야 하는 태도. 나는 겉으로 아이를 낳았던 엄마이지 철저하게 내 중심적이고 독립적인 사람이었다. 동생이 '시험공부하냐'며 묻기도 하고, 남편은 육아책을 보고 열심히 메모하는 나를 보며 '육아 박사'라는 쑥스러운 호칭을 불러주기도 했다. 수많은 육아정보를 책을 통해 읽고 메모하며 수험서처럼 읽었지만, 도통 아이를 바라보면 너무 몰랐다. 아이가 울면 안아주고 속만 애태웠다. 어느 순간 아이가 무얼 바라는지 알게 되었을 땐, 아이 옆에서 '관찰'을 많이 했었던 날이었다. 그 관찰은 책으로는 배울 수 없었다. 엄마가 손자를 바라보는 시선과 가르침에서 나도 따라 하게 됐다.
결국엔 누군가의 도제식 교육이 필요하다면.. 아이를 갖는 부모를 위한 교육을 하는 것은 어떨까. 지역 보건소에서 임산부에게 건네주는 엽산제와 철분제 등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먹는 약보다 부모가 되는 마음가짐과 교육시간을 선물해주면 어떨까. 아이가 50일이 될 때까지 아이를 낳은 사람이 나라는 것을 머리는 알면서도 몸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러나 교육을 통해 내 마음이라도 다독거리며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번다면... 이유식 또한 늘 즐겨 만들던 요리의 기초단계에 속하는데, 뭐 그리 어렵게 생각하며 이유식 책에만 얽매였을까 싶다. 결국, 시간과 마음가짐이 내가 아이를 잘 돌볼 수 있는 지침서였다.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 일정기간의 수습기간, 즉 정식으로 일하기 전에 미리 일을 배워 익히는 기간이 있듯 친정에서 백일의 시간은 엄마가 되기 위한 수습기간이었다. 그 기간을 아무것도 모르고 버텨내기보단, 엄마를 통해 아이를 대하는 태도를 배우며 가정과 가족의 소중함을 알 수 있었다. 가정교육이 사회생활의 첫걸음이지만, 나는 서른이 넘어서야 가정교육을 다시 밟아보는 것 같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부모님 품을 떠났던 10년간의 시간 동안 늘 마음이 공허했는데... 성인이 되어 부모님과 한 집에서 살림을 살며 내가 스쳐 지나갔던 부모님의 과거를 마주하며 다시 내 자리를 찾았다. 가족의 구성원에서 나를 부정했던 10대의 모습과 기억..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가 아닌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난 수습기간은 앞으로 내 인생의 큰 주춧돌이 되어주리라 믿는다. 정말이지 나의 인생은 아이를 낳기 전과 낳은 후가 확연히 달라졌다. 삶을 대하는 태도도. 어찌 보면 나의 전성기는 지금일 수 있겠다.
백일의 시간은 엄마가 되기 위한 수습기간이었다.
그 기간을 아무것도 모르고 버텨내기보단,
엄마를 통해 아이를 대하는 태도를 배우며
가정과 가족의 소중함을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