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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네 Nov 01. 2020

타인에 대한 기록

시작하는 글



"내 취향을 강요해서 미안해"


그래, 우린 개별적인 존재라서... 서로가 가진 희로애락과 취향은 확연히 다른데. 내 몸에서 떠나간 나의 분신이라 착각한 나머지... 내 취향과 습관을 네게 강요할 때도 있었어. 진심으로 미안해.


넌 너답게 웃을 수 있고 짜증 낼 수 있는데.. 내가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 네가 한 행동과 표정으로 상처 받을 수밖에 없다는 걸 받아들일게. 남녀 친구를 가리지 않고 모두를 사랑하는 너의 예쁜 마음. 선생님들과 친구 이름을 제대로 부를 수 없지만 사진으로도 이름을 구분할 수 있는 분별력. 공룡에도 각각의 이름이 다르다는 걸 알고 구분하는 세밀함.  모자와 신발뿐만 아니라 상어, 고래, 공룡, 악어 등 원하는 그림의 티셔츠가 있어서 아무리 설득해서 내가 원하는 옷을 입혀도 입어주지 않는 꼿꼿함.  뽀로로뿐만 아니라 뽀로로 친구들의 이름을 모두 불러야만 직성이 풀리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건강한 신체를 가진 너를 존경할게. 공들인 시간보다 더 넌 알아서 잘 크고 있는 거 같아. 식물처럼 쑥쑥. 가끔 내 혼을 다 뺏어가지만....


나의 작은 바람은 멋쟁이 어른으로 컸으면 하는 마음이 있어. 여러 선택지를 가지고 태어난 여자 아이들보다 더 멋을 알고 색에 민감하며.. 자기가 무엇이 잘 어울리는지, 자기가 무얼 좋아하는지 또렷이 잘 아는 남성으로 성장하길. 우리 사회가 바라는 남성상 말고, 정말이지 자신의 흥과 멋, 취향을 누리며 즐기며 살길 바란다. 그래서 더욱더 나는 나이를 먹을수록 겉치레(장신구나 옷.. 등)보단 책과 대화, 토론, 예술 등 내면을 가꾸어가는 것을 아는 사람으로 커가길.  내가 만난 사람 중에서 가장 멋진 취향을 가진 성인이 되길.. 엄마가 노력할게! 엄마의 사과문...



엄마, 낯선 이름을 얻다


땅에 씨앗을 뿌려 새싹이 트고 줄기와 나뭇잎이 생기는 것처럼.. 엄마가 되어가는 과정은 사계절의 변화처럼 지극히 자연스럽지만, 엄마가 되어가는 '순간'마다 내 감정과 아이 감정과 충돌하는 시간이 많아 힘들었다. 무엇보다 엄마가 되어보니 '엄마가 나를 키우는 과정'이 순탄치 않았음을 일상에서 깨닫고 있다.


결혼 전에는 어른들의 말씀을 흘려듣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그런데, '아이를 키워보면 어른이 된다'라는 말이 그리 와 닿을 줄이야. 아이를 낳지 않는다고 해서 어른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각자 '어른'을 정의하는 시각이 제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특별히 나의 경우 결혼과 출산으로 인해 자타가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철이 들었다. 그리고 엄마가 늘 입버릇 말씀하시던 '너 같은 자식을 낳아봐라' 등 자식과 연관 짓는 관용어구를 쏟아내실 때마다... 머리가 지끈했다. 이제야, 자식을 낳아보니 알겠다. 어미의 그 마음을.


아이를 갖기로 결심하면서부터 내 마음가짐은 '좋은 엄마, 좋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출퇴근할 때마다 뱃속의 아이에게 말을 건네고, 비록 답변을 듣지 못해도 어색한 혼잣말에 무안해지더라도... 그 마음을 변치 않기로 다짐했다. 결혼과 출산을 '선택하는 일'은 엄청난 책임감이 잇따르고, 내 일상을 송두리째 흔들어대는 태풍과 쓰나미 등등 여러 자연재난만큼 두렵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변화이다. 특히 아이를 낳는 건 오로지 자신이 그(아이)와 관련된 일상을 모두 감수할 수 있는 마음에서, 엄청난 용기의 카드를 내민 것이다.


그러나 아이를 출산한 후 내 결심은 유리조각처럼 산산이 부서지곤 했다. 현실에 맞닿은 육아는, 아이는 너무 달랐다. 내 결심이 초라할 정도로... 엄마의 말씀이 옳았다. 정말이지 '한 사람'을 키우는 건 순탄치 않은 일이었다.내 뱃속에서 열 달을 품다 나오는 과정을 다 지켜봤음에도 이 아이는 나의 아이 같지 않았다. 늘 달리 보였다. 나는 나고, 너는 너였다. 성별, 생김새, 식성, 우는 소리까지.. 모두 다 내가 정하지 않았던 '철저한 타인'이었다.  


내 인생에 없었던 새로운 타인, 아이


아이를 이해하기 위해 '타인(아이)의 기록'을 조금씩 남기기 시작했다. 오늘은 몇 시에 자고 일어났으며 무얼 먹었고 어떤 단어를 말하게 되고... 등 하루의 일상에 대한 육아일기보단 하나의 글감과 주제에 맞춰 시간을 관통하는 글을 써보고 싶었다. 결국 그 글은 나를 성장시켜주었다. 조금 더 나은 일상을 마주하기 위해. 또 다른 잘못과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역사책을 들춰보고 수많은 삶의 레퍼런스가 담긴 위인전을 보는 이유도. 과거의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 그들의 일생을 살펴보는 게 아니겠는가.


그런데 스스로 그 문제점을 찾아가기가 참 어렵다. 누군가가 내 문제를 정곡으로 찌를 때는 가슴 아리게 아프다. 내 마음이 아프고 나를 아프게 한 그 사람이 밉다. 대부분 아프게 하는 사람들은 가족이 대다수였다. 그나마 내 마음을 덜 아프게 하는 선에서, 사랑하는 가족에게 미운 마음이 들지 않도록 선택한 방법이 글쓰기였다.  일상의 여정에서, 삶의 여정에서 나의 자취와 실수들을 돌아볼 수 있는 매개체가 내가 쓴 글이었던 것이다. 일기이든 혹은 그 날의 사진의 설명글.


본격적으로 글쓰기를 하기 위해 브런치의 연재 글(매거진)을 택했다. 그리고 브런치 북으로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다짐했다. 아이를 낳기 전보다 아이를 낳은 후 해야 할 노동들이 많아서 주어진 시간이 빠듯하게 느껴졌지만, 글감은 늘어났다.. 신기했다.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았고 쓸 이야깃거리가 늘어났다. 글을 쓰기 어렵다는 부담감이 가득했는데, 모닝리추얼을 통해 글을 쓰는 부담감을 줄이고 다양한 방법으로 글쓰기를 시도해봤다. 스마트폰 메모 어플에 생각나는 글감과 문장을 저장해놓기, 산책하며 생각나는 문구가 있으면 녹음해보기,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는 시간에 기존에 썼던 글을 다시 읽어보고 퇴고하기.


오히려 글을 쓰려고 하는 노력과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은 자연스레 늘어갔다. 글쓰기를 통해 내 일상을 돌아보고 조금 덜 실수할 수 있도록, 조금 덜 아파할 수 있도록 노력했던 시간이었다. 육아로 지친 내 일상 속에 찾아온 글쓰기는 육아가 어렵지만 나만의 방법으로 '오늘 하루도 잘했어'라는 칭찬을 건네주었다. 늘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은 게 엄마의 마음이지만. 내가 나를 인정하는 게 가장 현명하고 행복해지는 지름길이라는 걸을 [육아일기가 나의 성장일기] 매거진을 쓰면서 알게 됐다.


내년에 미운 네 살이 나를 기다리고 있어도 걱정하지 않을 테다. 기존대로 나는 나대로 잘 지내올 것이고, 아이도 이제 아이대로 세상을 마주하는 방법을 자연스레 터득하고 있으니. 더 조급하지도 더 서두르지도. 낯선 외계어를 건네는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마음만. 내 마음에만 여유를 더 가졌으면 하는 바람. 그 바람만이 일하는 엄마가 육아를 하며 바라는 마음이다. 타인이지만, 누구보다도 내 인생의 보물. 아이를 다시 한번 살펴보고 내 손으로 아이 몸을 더 어루만져주고, 우리가 함께한 시간이 그리도 아름다웠다는 걸. 우리의 이야기가 증명해주었다.


덧.

누구나 읽어도 어렵지 않은, 육아하지 않은 기혼자와 결혼하지 않는 미혼자 모두가 읽을 수 있는 글이었으면 합니다. 우리 모두가 서로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지만, '사람 사는 세상은 누구나 똑같다'라는 생각에서 연재를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낳고 나니 세상에 태어난 아이와 어른, 모든 생명들이 다 소중하고 감사하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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