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인격체로 받아들이기
결혼 후, 배우자와 서로 다른 생각의 차이를 느꼈을 때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를 접했다. 연애할 때 읽었으면 서로의 다름을 확연하게 깨닫고 '결혼에 대한 환상'을 접었을지도 모른다. 그땐 이미 사랑에 눈이 멀어 다름보다 공통점을 찾기에 혈안이 되어있었다. 지금에서야 생각해보면 그리 비슷한 점도 없었는데 말이다. 닮은 점을 찾으며 서로 맞추다 보니 무얼 원하는지도 무얼 좋아하는지도 명확하지 않았다.
결혼하고 1년이 지난 후, 알게 됐다. 이건 맞출 수도 없고 이해하기도 어려운... 그 자체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게 정답이라는 걸. 사사건건 따지지도 말고, 서로에게 스며드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부부는 한 몸'이 될 수 없었다. 그 답을 내기 위한 과정 중에 존 그레이의 책을 접한 것이다.
그는 미혼의 남녀가 아닌 기혼의 남녀의 차이를 사실적으로 서술하였다. 내 마음은 전적으로 그의 이야기에 공감했으나 머릿속은 복잡했다. 되려 아무것도 모르고 부딪히는 게 덜 아팠다. 결혼생활 자체가 그런 것 같다. 너무 많이 알수록 지쳐버리는...
출산과 육아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그린 희망을 버리지 않고, '지켜내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정답을 푸는 열쇠였다. 열 달간 내가 품었음에도 세상에 나온 아기를 마주했을 때란... 내 뱃속의 아기인지 정말이지 믿지 못했다. 힘을 주어 내 뱃속에서 아기가 나오는 과정을 또렷이 지켜봤음에도 의심을 버리지 못했다.
내 품에 안겼을 땐 정말이지 지구 밖 다른 행성에 온 낯선 존재 같았다. 처음 보는 모습과 생소한 울음소리에... 좁은 뱃속에서 몸을 웅크리며 자랐을 아기가 애처로워서 아기 울음소리에 맞춰 나도 흐느꼈다.
"해품아, 엄마야 고마워. 고생했어."라고 익숙한 태명을 부르니 아기 울음소리는 신기하게도 딱 멎었다. 늘 혼잣말로 배를 어루만지며 불렀던 호칭. 내가 알던 존재가 맞았다.
그러나 아기가 50일이 될 때까지 '아기 엄마'라는 호칭이 어색했고, 아기를 키우는 과정 자체가 너무나 생소하였다. 아기가 커가는 과정을 월별로 자세하게 설명한 육아책들은 그 생소함을 채워줄 수 없었다. 그냥 부딪혀야만 했다. 차라리 '책을 덜 읽었다면 낫았을걸'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온몸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아이를 두고 크라잉 앱에 의존했다. 전혀 맞지 않을 때도 있었다. 연구자가 아닌 이상 아이 울음소리를 분석할 필요가 없었다. 그 존재가 내 일상에 스며들면 절로 알게 되는 것이었다. 아이가 원하는 것 중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찾으면 됐다.
매번 아이의 울음소리도 차이가 난다는 걸 반복 학습하다 보니 알게 되었다. 배가 고플 때, 잠이 올 때, 심심할 때.. 놀랍게도 시간이 해결해주었다. 기존 책에서 언급한 내용과 다른, 아이의 개별성도 존재했다. 오로지 오랜 시간을 함께 겪어봐야 알 수 있는 것처럼. 이 작은 생명은 지속적으로 텔레파시를 내게 보냈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정석이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늘려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 가장 중요했다.
내가 단잠에 자는 아이를 깨우더라도 아이는 잠이 고프면 몇 분 뒤에 잠투정을 심하게 한다. 매일 일정한 수유 양을 채우려 해도 아이가 원치 않으면 그 양을 채우지는 못했다. 어느 상황이든 늘 변수는 존재했다. 다이어리에 아이의 수유 양과 낮잠시간 등을 세세하게 적어도 다음 날이면 달라져있었다.
다행히 기상시간과 밤잠을 자는 시간은 예상이 가능할 정도로 매일 규칙적이었다. 나도 나의 기상시간과 식욕과 수면시간을 통제하기 어려운데, 누굴 통제하리. 아이의 성별과 생김새 등 신체적인 것뿐만 아니라 성격과 가치관 등 아이의 인생을 내가 재단할 수 없는 것이다. 그냥 그 자체로 인정해주기. 아이가 성인이 된 이후에 이 마음이 변치 않았으면 좋겠다.
이 작은 생명은 지속적으로 텔레파시를
내게 보냈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정석이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늘려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
가장 중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