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보다 중요한 건 삶을 배우는 시간
초등 고학년이 되면 아이들의 세상은 조금씩
부모의 품을 벗어나기 시작한다. 친구와의 관계가
더 중요해지고 말보다 표정이 먼저 변한다.
그 순간 나는 느꼈다.
이 아이들의 유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그래서 멈췄다.
그리고 이 섬으로 왔다.
사교육의 물살을 거슬러
조금은 비효율적이고 불편한 삶을 택했다.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
‘지금 아니면 안 된다’는 목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내가 아이들 곁에 가장 온전히 있을 수 있는 시간,
아이의 마음이 아직 닫히지 않은 그 문틈.
그 사이로 빛이 들어올 때
나는 모든 걸 걸고 싶었다.
사교육보다 함께한 시간이라는 공부
사람들은 말했다.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기예요. 공부를 놓치면 따라가기 힘들어요.”
하지만 나는 그 따라가는 삶을 멈추고 싶었다.
지식보다 먼저 배워야 할 건 삶을 대하는 마음의 자세라는 걸.
《본질육아》의 지나영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부모는 아이를 국어, 수학으로 가르치는 존재가 아니라 살아가는 가치와 마음자세를 가르치는 존재여야 한다.”
내가 제주로 떠나려 했던 이유가 바로 그 말에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배워야 할 건 시험 문제의 정답이 아니라 넘어졌을 때 일어나는 법, 자신의 기분을 스스로 다독이는 법, 타인을 배려하고 자연을 존중하는 법이었다. 그리고 그건 학교나 학원에서 가르치지 않는 오직 삶 속에서만 배워질 수 있는 일이었다.
어느 날, 아이의 한마디에서 내 마음은 더욱 단단해졌다.
유년기의 아이들이 매일 학원을 전전긍긍하며
집에 오자마자 숨 돌릴 틈도 없이 또 학원 숙제를 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무너진다.
‘이게 정말 행복한 성장일까?’
책가방보다 무거운 피로를 지닌 채
잠든 아이의 얼굴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그 아이가 배움보다 ‘숨 쉴 틈’을 먼저 얻기를 바랐다.
제주에 온 어느 날, 5 학년이 된 아들이 무심하게
내게 말했다.
“엄마, 우리 반에서 학교 끝나고 내가 제일 시간 많아.”
그 한마디가 이상하게 마음을 흔들었다.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혹시 내가 너무 느슨하게 키우는 건 아닐까?’
‘저 아이가 나중에 뒤처지면 어쩌지?’
그 불안은 한동안 나를 괴롭혔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았을 수 있었다.
나는 나의 선택을 믿기로 했다.
아이의 시간은 결코 낭비가 아니라 아이 자신을
채우는 과정이라는 것을.
부모의 불안이 만든 수업
요즘 아이들은 스스로 생각하기보다 정답을
빠르게 찾아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부모가 미리 준비한 답을 배우고
선생님이 정해준 길을 따라 걷는다.
심지어 공부도 놀이도 진로까지
앞서 나가는 아이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 속에 있다.
하지만 그 앞섬의 방향이 정말 아이들이 원하는 길일까? 아니면 부모의 불안이 만든 길일까?
“부모는 아이를 행복하게 만드는 존재가 아니라
아이가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도록 돕는 존재다.”《본질육아 중》
나는 아이들의 시간표를 채우는 대신
아이의 마음을 비워주는 것이 진짜 교육일지도 모르겠다고 믿는다.
아이는 부모의 자랑이 아니다
나는 제주에 오기 전까지 아이의 성취를
자랑하는 게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열심히 키운 결과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깨달았다.
아이의 성취가 부모의 자랑이 되는 순간
그건 아이의 삶이 아니라 부모의 이력이
되어버린다는 걸.
우리가 살아가며 유일하게 자랑해선 안 되는 게
있다면 그건 자식과 배우자다.
그들의 삶은 나의 증거가 아니라
그들 자신이 걸어가야 할 고유한 여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 나는 조용히 응원하기로 했다.
세상에 드러내는 칭찬보다
아이의 눈을 마주 보며 건네는 한마디
“나는 네가 자랑스러워.”
그 말이면 충분했다.
스스로 선택할 줄 아는 아이
공부를 잘하지만 아주 간단한 의사결정조차
스스로 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주변에서 자주 본다.
‘무엇을 먹을래?’
‘이건 네가 해볼래?’
그런 질문에도 눈치부터 보고 엄마를 찾는 아이들.
그 모습이 안타까웠다.
그건 아이들의 탓이 아니었다.
모든 선택을 대신해 주는 어른들의 불안이
아이의 판단력을 조금씩 앗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독립적이지 못한 양육, 의존적인 관계 속에서는 아이가 자신만의 방향으로 성장하기 어렵다.”
이제 나는 조금은 다르게 생각한다.
공부를 잘하는 것보다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자신의 하루를 선택할 줄 아는 아이로 자라길 바란다.
그게 진짜 배움의 완성이라고 믿는다.
부모의 불안을 버리면, 아이는 더 단단해진다
제주살이를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배운 건
아이를 믿는 법이었다.
이곳에서는 시험 성적도 순위도
그 어떤 수치로도 아이의 하루를 평가하지 않는다.
그저 ‘오늘은 어떤 일이 있었니?’
그 대화 하나로 충분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단순한 대화 속에서
아이의 자존감이 조금씩 자라났다.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정리하며
하루의 의미를 자기 언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제야 나는 알았다.
내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앞으로 나아가라’가 아니라
‘네가 가고 싶은 길을 찾아봐’라는 말이라는 것을.
지금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
가끔 생각한다.
이 선택이 완벽했을까?
정답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 시간만큼은 다시 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아이들이 사춘기를 지나고
각자의 길을 가게 되더라도
이 섬의 바람과 빛이 그 마음 어딘가에 남아
그들을 지켜줄 거라 믿는다.
“부모는 아이에게 세상을 가르치는 동시에
자기 자신을 다시 배우는 존재다.”
그 말처럼
나는 오늘도 아이들과 함께 배운다.
그리고 다짐한다.
지금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
우리는 제주에 왔다.
이 선택이 내 인생의 가장 용기였고
아이들의 가장 큰 선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