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섦은 자존감을 키운다
제주살이를 시작한 뒤, 나는 매일 새벽 5시쯤 눈을 뜬다. 완벽한 날도 있고 어설픈 날도 있지만
가능한 한 이 시간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하루의 시작을 내가 먼저 잡을 때
어제보다 조금은 단단한 사람이 되는 기분이 든다.
어둑한 부엌에 불을 켜고 책장을 펼친다.
독서로 맞이하는 새벽은 나에게는 삶의 주도권을
잃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막이다.
중국어 선생님으로 일하던 시절에는
말을 가르치며 감정까지 함께 쏟아내던
날들이 있었고 그 이후 영업직으로 바뀌면서
하루의 의미가 숫자와 실적으로 바뀌었을 때
오히려 무기력해진 날들이 더 많았다.
그래서 지금은 책을 통해서라도
내 가치가 숫자로만 정의되지 않도록
마음을 지키려 한다.
한 시간 남짓의 고요한 독서 시간은
언어를 넓히고 시야를 깊게 하고
생각의 방향을 조금씩 조정한다.
그건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내가 무너지는 속도를 늦추는 기술이다.
책을 덮고 7시에 아이들을 깨운다.
제주에 온 뒤로 아이들은 육지보다 훨씬 잘 먹는다.
환경의 변화 때문일까, 성장 때문일까.
아침을 건강하게 비워내는 아이들을 보면
내 선택이 엇나가지 않았다는 안도감이 든다.
8시가 되면 스쿨버스가 집 앞 골목에 멈춘다.
아이들은 신발 끈을 동여매고
코코에게 손을 흔든 뒤 버스에 오른다.
그 순간, 집안에 쌓여 있던 기운이
사르르 흩어지며 공간은 고요해진다.
나는 씻고, 간단히 화장을 하고,
다시 아주 짧은 독서 시간을 갖는다.
하루에 두 번 책을 펼치는 이유는
시간을 공부하는 마음으로 쓰기 위해서다.
언제나 몸보다 마음이 먼저 흐트러지니까.
그리고 주 2~3번은 코코와 바닷가를 걷는다.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조개껍데기가 발끝을
건드리는 아침의 산책길은 어디서도 배우지
못했던 감정의 기초체력을 만들어준다.
도시에서의 산책이 해야 할 일이었다면
제주의 산책은 살아있는 숨이다.
출근시간이 되면 나는 일터로 향한다.
돌담을 지나 바다 냄새를 맡으며
웨이팅 줄이 길게 뻗은 식당으로 들어갈 때면
아직도 약간의 긴장과 기대가 동시에 밀려온다.
4시간 동안 나는 쉼 없이 움직인다.
주문을 받고 접시를 나르고 테이블을 정리한다.
한 테이블의 식사가 끝날 때마다
다른 테이블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리고 그 모든 흐름은
내 삶의 리듬처럼 느껴진다.
손님들은 말한다.
“저번에 봤던 분 맞죠?”
“오늘도 에너지 좋으시네요.”
짧지만 선명한 문장들 속에서
나는 다시 사회와 연결된다.
손님들의 특징을 기억해 주고
센스 있게 서비스드리면
팁을 건네고 가는 분들도 있다.
돈이 아니라 고맙습니다라는 말로 받는 인정이
오늘 하루의 방향을 살짝 위로 올린다.
고마운 주인 분들은 늘 점심까지 챙겨주시고
쌀이며 고기며 식량을 가끔씩 챙겨주시기도 한다.
그 작은 선의가 내 마음의 무게를 조금씩 덜어준다.
단지 용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일이
관계와 자존감을 배워가는 수업이 되었다.
식당 문을 나서면
몸은 녹초가 되지만
마음은 묘하게 정리되어 있다.
인간관계의 피로에 무너졌던 시절과 달리
사람에게 상처받지 않고 사람이 회복된다.
집에 돌아오면 코코가 꼬리를 흔든다.
코코와 함께 시장을 보고
주섬주섬 장바구니를 채운다. 제주에서는
웬만한 장소에 코코를 데리고 갈려고 노력한다.
저녁에는 집밥을 만들어 먹거나
근처 맛집을 찾아다니며
아이들과 그날의 이야기를 나눈다.
그 시간은 하루의 마지막 불을 밝힌다.
사실 제주살이에서
육지와 좀 다르게 살고 싶었지만
시간은 생각보다 짧고 빠르다.
그래서 매일의 순간을 조금 더 눌러 담고 싶어진다.
마치 금방 사라지는 파도 끝처럼.
하루하루가 너무 아쉽다.
하지만 그 아쉬움 덕분에
나는 살아 있는 감각을 잃지 않는다.
낯선 환경은 종종 자존감을 흔들어놓는다.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자존감을 길러준다.
관계는 단순해지고
생활은 명료해지고
감정은 천천히 정리된다.
나의 루틴은 거창하지 않다.
하지만 적당한 운동처럼
마음을 단단하게 만든다.
하루는 짧고
인생은 더 짧다.
그래서 나는
지금의 이 리듬을 사랑하고 싶다.
누군가가 대신 살아줄 수 없는 하루를
내 두 발로 걷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라는 낯선 곳에서
나는 다시 나를 만나고 있다.
그리고 그 사실 하나면 충분하다.
낯섦 속에서 길러진 자존감은
익숙함 속에서는 결코 자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