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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살이가 알려준 아이들의 진짜 성장

by Remi

제주살이를 시작하고 가장 많이 달라진
아이들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었다.
예전에는 성격이라 불렀던 많은 것들을
이곳에 와서는 기질이라는 조금 더 정교한

언어로 느끼게 된다.


아이들은 바람처럼 움직이고

물결처럼 흔들리며 각자의 리듬대로

자란다는 사실을 나는 천천히 깨닫는 중이다.

둘째는 나를 닮았다.
예민하고 섬세하며 감정의 결이 촘촘한 아이.

새로운 환경에 들어서면
사람들의 말투와 온도, 친밀감, 분위기를 빠르게 감지하는 편이다.
그렇기에 제주 전학 왔을
조금 조심스러운 시기가 되지 않을까 걱정도 있었다.


그런데 어제 아이의 열한 번째 생일날,
아이 친구가 건넨 한 마디는
내 관찰을 완전히 다시 보게 만들었다.

“얘 성격 진짜 좋아요. 반에서 친구 많고 다 잘 지내요.”

예민함은 쉽게 상처받는 성향으로만 해석되기

쉽지만 발달심리학에서는 예민함을
높은 공감 능력, 타인의 신호를 빠르게 읽는 능력

관계 내 정서적 지능으로도 본다.

둘째는 그런 장점을
이미 또래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활용하고 있었다.

나는 그동안
예민함이라는 단면만 보고
아이의 전체성을 좁혀서 바라보고 있었던 셈이다.

기질은 결점이 아니라
아이의 세계를 넓히는 고유한 방식이었다.










첫째는 둘째와는 전혀 다른 결의 아이였다.
첫째를 설명하는 데에는 언제나 도전적이라는

말이 먼저 떠오른다.


친구와 심심하다는 이유만으로
한 시간을 걸어 다른 친구 집까지 가거나,
비가 오는 날엔 개구리가 더 잘 보인다며
우비를 걸치고 탐험을 나가는 아이.
학교 동생을 바래다준다며 자전거에 올라
제주의 도로를 활보하는 날도 있다.

아들은 일상의 소소함을 넘어
때로는 나를 긴장시키는 과감함으로 이어진다.

제주의 바람은 아들을 한층 더 들뜨게 하고
어른의 기준으로는 위험해 보이는 장면들도 생겨난다.
하지만 첫째는 언제나 스스로 길을 찾아왔다.
넘어졌다가도 다시 일어나는 방식,
모르는 길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
친구 관계에서도 선두에 서서 새로운 경험을

제안하는 용기.
첫째는 ‘움직이는 힘’으로 세계를 배워가는 아이였다.



둘째가 관계의 깊이로 세상을 읽는 아이라면,
첫째는 경험의 폭으로 세상을 이해하는 아이다.
하나는 흐름을 따라가며 조용히 세심함을 키우고
다른 하나는 경계를 넓혀가며 대담함을 체득한다.




제주살이의 좋은 점은 바로 이것이다.
아이들의 기질을 고치려는 마음 대신
이해하려는 마음으로 바라볼 여유가 생긴 것.
그들의 다른 속도가 문제로 보이지 않고
각자의 세계가 더 단단해지는 방식으로 느껴진다는 것.
그러다 보니 예전엔 불안으로 보였던 것들이
지금은 성장 중인 장면으로 읽힌다.

아이들은 결국 자기 기질의 결을 따라 자란다.
누군가는 천천히, 누군가는 거침없이.
그리고 부모의 역할은
그 속도를 억누르거나 가속하는 일이 아니라
그 길을 함께 걸어주며
때로는 넘어지지 않도록 손을 빌려주는 것뿐이다.

오늘 나는 다시 배웠다.
아이들은 이미 자기 속도로
온전히 자라는 중이라는 걸.
우리는 그저 옆에서
그들의 세계가 끝까지 펼쳐지도록
지켜봐 주면 되는 거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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