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

나를 위해, 그리고 아이들을 위해

by Remi
삶의 궤도를 잃고 감정이 하루하루 무너져 내리던 어느 날, 나는 나를 회복하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방식으로 1년간의 제주살이를 택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성적과 경쟁보다는 삶을 체감하며 배울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렇게 우리는 일상의 궤도에서 벗어나 함께 떠나는 작은 탈주이자 뜻밖의 전환점이 될 여정을 결심했다. 결심 이후 단 2주 만에, 수십 통의 부동산 전화, 당일치기 제주 방문 두 번, 현장 발품을 통한 집 탐색, 그리고 아이들 학교 근처 동네 분위기까지 꼼꼼히 탐색했다. 전학 서류를 챙기고 집 계약을 마무리하기까지 모든 절차를 나 홀로 감당했다. 이 모든 준비의 기록은 제주살이를 결심했지만 막막함 현실 앞에서 망설이고 있는 누군가에게 실질적인 이정표이자 조용한 연대의 손길이 되기를 바란다.


무너진 건 삶이 아니라 내 마음이었다.


숨 쉬는 것조차 버거운 날들이 이어졌다.

밤이 오면 가슴 한가운데가 조여왔고

아침이 밝으면 또다시 하루를 버텨야 한다는

사실에 숨이 막혔다.

가끔은 그냥 도망치고 싶었다.

누군가의 아내도, 아이들의 엄마도 아닌

나 자신으로 단 하루만이라도 숨 쉬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었고

나는 점점 투명한 존재가 되어갔다.
웃음이 많은 내가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는 걸 느꼈다.


나는 마치 얇게 갈린 유리 조각 같았다.

작고 사소한 말에도 금이 가고 반복되는 일상 안에서도

스스로를 잃었다. 그게 하루, 이틀이 아니라 매일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쏟아내는 짜증 섞인 말투

말끝마다 붙는 한숨, 아이들 앞에서 이유 없이

흘렸던 눈물. 나는 분명 아이들을 사랑하고 있는데

사랑하는 방식이 자꾸만 엉켜갔다.


'나 이대로 정말 괜찮을까?'

문득, 아이들을 바라봤다.

무기력하게 반복되는 학교와 학원,

감정이 무뎌지는 자극적인 영상들,

게임 속에서만 살아 있는 듯한 아이들의 눈빛.


그래, 지금 아니면 안 되겠다.


그 순간, 마음 깊은 곳에서 큰 울림이 왔다.
그래서 다짐했다. 이제는 내 안에 나를 다시 세워야겠다고.

누구에게도 휘청이지 않는 단단한 나로, 감정에 휩쓸리지 않는

마음의 근육을 키워야겠다고.

다시 나로 살기 위해서.


그 시작은 떠남이었다. 익숙함을 떠나 삶을

다시 배우고 오롯이 나 자신으로 살아보는 시간.
물론 이건 나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내 인생의 중심엔 언제나 아이들이 있다.

두려움 건너편에 새로운 세상이 있을 거라는

믿음 하나로 11살, 12살 남매를 데리고 제주로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아이들이 지금은 공부보다 삶을 먼저 배우는 1년,
조금 늦어도 괜찮다고 말해줄 수 있는 계절.

그리고 흙을 만지고 바람을 느끼며
진짜 자신을 만나볼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싶었다.

화려한 제주 여행기가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지극히 현실적인 고민을 끌어안고
행복의 방향을 다시 묻는 여정을 시작하기로.

지금 나와 비슷한 갈피 속에 서 있는 당신에게
이 이야기가 작은 용기가 되었으면 한다.







마음은 결심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바다 건너 새로운 삶을 준비하며

제주살이의 시작은 풍경이 아니라
나는 가장 높은 벽, 집 구하기 앞에 서게 됐다.


산 넘어 산, 그 말이 딱이었다.
집을 구하고, 학교를 찾아 나선 2주의 시간.
과연 아이들과의 제주살이는 가능할까?
현실이라는 벽 앞에서 흔들렸던 순간들.

부동산에 전화 수십 통, 비행기 두 번, 집을

직접 보고 오니 마음은 천 번 흔들렸다.


이어서 2화는 고군분투로 시작한 엄마의 제주

입도 전 현실 준비 과정을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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