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삶이라는 이야기

by 밈바이러스


자아가 고작 즉흥적인 이야기라니요. 나에게는 분명한 과거와 역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미래를 향해 달려가고 있고요. 네 맞습니다. 기억은 ‘이 순간 등장할 캐릭터’의 기반이 되고, 허물어지고 재구성되면서 다시 미래를 만듭니다. 뇌는 과거부터 미래까지 여러 ‘나’의 이야기를 플립 북(flip book)처럼 넘기며 과거 현재 미래를 매끄럽게 잇는 인생이라는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순간에 피고 지는 즉흥적인 캐릭터들이 일관성을 갖출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바로 기억입니다. 우리는 각자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뇌가 지금 이 순간의 ‘나’라는 이야기를 만들어낼 때, 뇌는 과거의 경험, 생각, 감정에 관한 기억을 끌어와서 참고합니다. “내가 예전에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느꼈었지”, “나는 이런 걸 좋아하고 싫어했지”, “그 사건을 겪으면서 난 이런 사람이 되었지” 같은 기억들은 지금의 ‘나’라는 캐릭터를 구성하는 재료가 됩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기억도 완벽한 녹화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기억은 기억을 회상하는 상황이나 감정에 따라 재해석되고 변형되기도 합니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서 슬픔이가 만진 기억 구슬들이 다 파란색으로 바뀌는 것을 생각해보면 됩니다.) 기억이 일관성을 주긴 하지만, 그 일관성조차도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기억으로 엮은 역사 소설


티비에서 드라마가 나오길래 한 장면을 힐끗 봅니다. 주인공들 표정이 사뭇 진지합니다. 하지만 저는 드라마가 연기라는 것임을 알기에 주인공들이 웃기는 콩트를 이끌어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순간의 저를 보면 드라마와 별반 다를 것 없습니다. 참으로 웃긴 고민(맥도날드냐 버거킹이냐)을 하면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 옆에서 친구는 죽을 둥 살 둥 자기소개서를 고쳐 쓰고 있고요.


우리는 순간에서 벗어나 자신을 멀찍이 조망해보기도 합니다. 자신의 역사를 알아야 지금의 나를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제 과거를 지금 여기에 불러오려는 바로 그 순간, 역사는 역사 소설로 바뀌어 버립니다. 왜일까요? 역사는 승자의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서사에 있어서 언제나 승자이기 때문에 기억을 삭제하거나 왜곡하는 등 편집할 권리를 가집니다. (앞서 봤듯이 자신의 도덕성, 일관성, 주체성, 극적 요소를 살리는 방향으로요.)


역사 그 자체와 역사 소설을 비교해볼까요? 역사는 객관적인 사실의 나열입니다. 제가 어느 고등학교에 다녔고, 어느 대학교에 가서, 어느 회사에서 일했고, 누구와 사랑했다는 사건 자체는 부정할 수 없는 진짜 사실입니다. 이건 조선왕조실록 같은 ‘역사적 기록’에 해당합니다. 그 역사적 사실들을 바탕으로 작가(여기서는 뇌)가 자신의 관점, 해석, 감정, 상상력을 더해서 새롭게 구성해낸 이야기가 역사 소설입니다. 야사(공식적인 역사 기록이 아닌 민간에서 떠도는 이야기나 풍속, 전설)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뇌는 실제로 겪은 사건들을 재료로 삼고, 거기에 생각, 감정, 기억, 가치관, 심지어는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자기 ‘이미지’지 더해서 ‘나의 일대기’라는 역사 소설을 쓰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군대에서 생활했던 사실은 진짜지만, 그때 제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그 경험이 지금의 저에게 어떤 의미인지에 대한 해석은 뇌가 즉흥적으로 만들어낸 ‘이야기’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했던 경험 자체는 진짜지만 그 관계를 어떻게 기억하고, 그 사람을 어떻게 생각했고, 그 경험이 제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해석하는지는 뇌가 쓰는 소설의 내용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소문이 몇 다리만 거쳐도 얼마나 무성해지는지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난날을 떠올릴 때마다 삶이라는 이야기 역시 무성해지고 풍성해집니다.


여러 사건을 순서대로 엮고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역사는 한층 더 허구적 성질을 띠게 되기도 합니다. 가령,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고 심지어 범죄 경력까지 있는 사람이 있다고 칩시다. 그런데 그 사람이 낳은 아이가 신체적으로 선천적인 장애를 갖고 태어났다는 겁니다. 사람들은 그놈 벌 받았다, 쌤통이라는 이야기를 지어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대체 무슨 죄인가요? 그리고 착하게 살아왔는데 선천적인 장애를 가진 아이를 낳은 사람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둘은 독립적인 사건이며, ‘잘못된 연결짓기’의 사례로 봐야 합니다. 조상님이 꿈에서 복권 번호를 알려줘서 복권에 당첨되었다는 극적인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뇌는 계속해서 패턴과 인과를 찾으며,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는 것도 냅다 연결하고 봅니다. 그렇게 우리는 권선징악 또는 업보라는 주제를 담은 극적인 드라마를 만들어냅니다. 그렇게 삶이라는 이야기에 허구성이 더해집니다. 우리는 손쉽게 부정적인 전망이 가득한 미래 이야기를 만들기도 합니다. (이 경우는 역사 소설도 아니고 아예 허구의 엉터리 소설입니다!)


유발 하라리에 따르면, “우리가 과거를 배우는 이유는 과거에서 해방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근거 없는 악성적인 고리를 끊고 더 나은 이야기로 재구성할 수 있습니다. 역사 소설은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수정되고 재해석됩니다. 제가 지금 과거를 돌아보면, 그때는 몰랐던 의미를 찾아서 부여하거나, 중요하지 않게 생각했던 사건을 중요하게 여기기도 합니다. (반대로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던 것들을 잊어버리기도 합니다.)


우리는 과거를 있는 그대로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불완전한 기억이 오히려 우리의 상상력에 날개를 달아줍니다. 우리는 기억을 마음껏 허물어서, 미래 기억의 재료로 활용하기도 합니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이나, 다가올 일을 생각하는 것을 미래 기억이라고 부릅니다.) 역사 소설은 지금의 자신을 돌아보도록 도와주며, 이 앞의 이야기의 방향을 제시해주기도 합니다. 역사 소설로 우리의 삶에 더 풍부한 의미를 담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우리는 삶을 이야기로서 이해합니다. 뇌는 ‘나’라는 굳건한 존재가 있다는 관념을 구심점으로 (‘나’는 삶이라는 이야기의 중심이자 기준점이 됩니다.) 과거부터 미래까지 여러 ‘나’의 캐릭터를 플립 북처럼 촤라락 넘기며 과거 현재 미래를 잇는 인생이라는 매끄러운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우리의 삶에 방향을 제시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는 데에 도움이 됩니다.


건강한 뇌라면 도덕적이고, 희망적인 영웅의 이야기 (또는 시련을 극복해나가는 주인공 이야기)를 만들어내서 주인공 자리에 ‘나’를 앉힙니다. 이야기는 언제나 현실과는 조금 거리가 있지만, 분명 우리의 의미 있는 삶에 없어서는 안 되는 서사입니다. 대니얼 데닛은 자아를 “새로운 경험과 역할을 통해 끊임없이 변화하며, 스스로 구축하는 내러티브”로 정의합니다. 데닛은 이를 ‘self-authoring’이라 부르며, 우리가 자신의 이야기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정체성이 형성된다고 설명합니다. 우리는 이야기의 주인공인 동시에 작가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이 자신의 내러티브를 객관적 현실이라고 착각해서 자아가 경직된다는 점입니다. 데닛은 이러한 착각에서 벗어나, 자신의 이야기가 가능한 여러 해석 중 하나임을 인식하고 유연하게 다룰 때 진정한 자유와 지혜가 시작된다고 주장합니다.


열린 마음(개방성)을 갖고 유연해지면, 더 적응력 있는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특히, 삶의 위기와 전환기에 자신의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능력은 효과적인 적응과 성장을 가능하게 하며, 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전환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자아의 가상성을 인정하는 것이 처음에는 불안할 수 있지만, 오히려 이것이 성장과 변화의 잠재력을 깨워줄 수도 있습니다. ‘나’라는 것이 이야기라는 것은, 자신의 삶을 의식적으로 해석하고 방향을 설정함으로써 진정한 작가가 될 가능성과 책임을 일깨워줍니다.


내가 말하자, 내가 대답했다. “어쩌면 당신의 소설은 당신이 쓴 게 아니라, 당신 안에서 흘러나온 것일지도 몰라요. 글을 쓸 때는 몰랐는데, 나중에 읽다 보면 ‘내가 왜 이런 말을 썼지?’ 싶은 구절들이 있잖아요. 그러니 당신은 자기 소설을 읽을 때마다 새롭게 느끼는 거고, 그만큼 새로운 해석도 가능한 거죠. 독자 입장에서 읽으면 낯설고, 작가 입장에서 읽으면 익숙한데, 그 둘이 한 사람 안에서 동시에 일어나니까, 결국 자기 자신 안을 탐험하는 거예요. 한마디로 당신은 자기 안의 미지(未知)와 잘 놀고 있는 작가예요.”

- <비밀 수집가>, 동구


* 이하의 내용은 손영호,『대니얼 데닛의 지혜를 통해 배우는 25가지 삶의 법칙』, 2025, 루미너리북스 중 2장. 자아의 가상성의 내용을 옮겨왔습니다.


** 데닛의 Self-authoring이라는 개념은 에셔(M.C Escher)의 작품 ‘그리는 손(1948)’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리는 손’은 흰색 종이에서 솟아오르는 듯한사실적인 두 개의 인간 손이 서로를 그리는 역설적인 작품입니다. 한 손이 다른 손의 손목과 소매 부분을 스케치하고 있고, 동시에 그 스케치되는 손이 또 다른 손을 그리고 있습니다.




함께 써내려가는 이야기

삶이 이야기라는 것은 결코 비관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얼마나 창조적인 존재인지,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놀라운 ‘스토리텔러’인지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우리의 인생이라는 이야기는 우리의 뇌가 사용자를 위해 끊임없이 다시 쓰는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역사 소설’인 셈입니다. 심지어 그 ‘역사 소설’은 혼자 쓰는 외로운 작업이 아니고, 사랑하는 가족, 친구, 지구촌 이웃들과 함께 쓰는 감동 겨운 작업입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자신의 존재를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삶의 고난을 함께 극복하는 서사를 만들어냅니다.

이야기는 개인과 가족의 수준에 머물지 않습니다. 삶이 ‘나’라는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의 연속이라면, 문화는 80억이 넘는 머릿속 이야기꾼들의 거대한 공모입니다. 이야기의 창조성과 확장성, 수정 가능성 덕분에 우리 뇌 속의 이야기꾼들이 함께 종교, 국가, 돈이라는 상호주관적 실재를 만들었고, 이를 주춧돌 삼아 문명을 이뤄냈습니다.


우리는 단순한 허구의 이야기를 만들고 믿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스토리텔링을 통해 불확실한 세상에서 나를 믿고, 처음 보는 타인과 협력하며, 복잡한 사회를 구성합니다. 글자는 읽히기 전에, 세상은 누군가 하나의 ‘관점’을 갖고 살아가기 전에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합니다. ‘읽음’, 또 ‘살아감’이라는 우리의 행위 속에서 비로소 텍스트와 세상은 해석되며 의미가 싹틉니다. 읽기 전에, 또 살아가기 전에 그저 주어지는 의미는 없습니다. 살아감으로써, 그리고 다시 우리의 삶을 이야기함으로써 비로소 삶에 의미가 생기고 또 풍부해집니다.

또, 우리는 삶과 죽음, 우주의 기원, 고통의 의미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합니다. 인류는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들에 관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며 함께 불확실성을 견딥니다. 우리는 견딜 뿐만 아니라 결단을 내려 용기와 함께 다음 행동에 나섭니다. 우리는 함께, 계속해서 더 나은 이야기를 만들어갑니다. 그럼에도 다시 한 번, 이야기는 사용자가 아닙니다. 사용자는 이야기를 활용하는 주체입니다. 우리가 앞으로 만나게 될 ‘나’라는 캐릭터는 어떤 곳에서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친절해야 하는 이유

밥 딜런의 외할머니가 어린 밥 딜런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행복은 뭔가 얻으려고 가는 길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길 자체가 행복이라고, 그리고 네가 만나는 사람이 모두 힘든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에 친절해야 한다고.

- <불편한 편의점>, 김호연


왜 나에게 이런 문제가 발생했는가? 이 질문에 대한 해답도, 의미도 딱히 없다. 문제 스스로 소멸할 때까지 겪어내는 수밖에 없다.

- <세계에 대한 믿음>, 김홍중


우리는 모두 이야기와 함께 (‘나’라는) 이야기로서 (또, 이야기로써) 살아갑니다. 그런데 문제가 없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때로는 문제에 ‘나’라는 인물이 압도되어, 문제 그 자체가 이야기의 주인공 자리를 차지합니다. (심하면, 문제를 죽이지 못하고 ‘나’를 죽이게 됩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친절해야 합니다.




순수한 영혼

자신이 만들어낸 세계에 몰두하고 심취할 수 있는 순수한 영혼.

창조한다는 것은, 자신에게 푹 빠지는 것.

- <WXY>, 마도카 마치코


자신이 쓴 소설의 주인공과 사랑에 빠진 적 있나요? 자신이 쓴 소설에 몰입해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정말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일 것입니다. 톨스토이는 인생의 막바지에 어떤 책을 펼쳐 들고 중간에서부터 읽어 나가다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고 합니다. 작가가 누구인지 확인하려고 표지를 봤더니, 그 책은 <안나 카레리나>로 자기가 쓴 책이었습니다.


또, 어떤 인터뷰에서 유명인들에게 무인도에 가져갈 책을 딱 한 권 고른다면 어떤 책을 고를 것인지 물어봤습니다. 자신이 쓴 책을 가져가겠다는 유명인이 제법 많았습니다.


이 책으로 나의 삶과 존재를 혐오감 없이 떠올릴 수 있게 되리

- <구토>, 사르트르


우리는 모두 삶의 작가이자 주인공입니다.

“우리 모두 자신의 삶을 위로할 수 있는 이야기와 함께

각자의 밤을 건널 자신만의 방법을 갖게 될 것이다.”

이것이 제 지론입니다.

keyword
수요일 연재
이전 09화6. 즉흥적인 캐릭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