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진화: 생명의 연대기

by 밈바이러스
진화의 개념에 비추어보지 않고서는 생물학의 그 무엇도 의미가 없다. - 테오도시우스 도브잔스키 -



생명의 기본 원리: 생존과 번식

우리의 몸과 마음, 그리고 우리가 함께 살펴봤던 UI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이 질문에 답하려면, 다윈의 어깨에 올라서서, 최초의 생명이 태동한 원시 지구로 돌아가봐야 합니다.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밝혀냈듯이, 생명의 근본 원리는 단순합니다. 자연선택에 따른 차등적인 생존과 번식. 여기서 필요한 개념은 세 가지입니다. 변이, 선택, 그리고 유전. 우선 변이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각 생물체 사이에서 어떤 ‘유의미한 차이’가 존재합니다. 그 다음은 선택입니다. 지구의 자원은 한정적이라 모두가 다같이 번영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주어진 환경에서 어떤 생물이 다른 생물보다 더 잘 살아남습니다. 마지막으로 유전입니다. 후손이 부모로부터 생존에 유리했던 특성을 물려받습니다.


모든 생명체는 자신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전달하기 위해 환경에 적응하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칩니다. 생존과 번식에 관심이 없는 유전자를 가진 생물체는 자연스레 사라졌습니다. (물론 모든 생물에 인간의 수준의 마음을 투영하면 안됩니다. 자신의 행위가 생존과 번식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해도, 그들은 느낌에 이끌려서 행동합니다. 세포의 느낌은 회피와 접근 등의 단순한 행위로 이어집니다. 느낌은 생각의 대용물입니다.)

이 단순한 원리를 가진 진화의 알고리즘이 수십억 년에 걸친 장대한 진화의 역사를 이끌어 왔습니다. 우리의 뇌가 세상을 특정 방식으로 표상하고, 특정 감정을 느끼고, 특정 행동을 하도록 설계된 것도 결국 이 생존과 번식이라는 지상 과제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함입니다.




생명의 근본적인 복제 단위: 유전자(DNA)

그렇다면 생존과 번식의 주체는 누구일까요? 우리의 몸? 리처드 도킨스는 그의 책 <이기적 유전자>에서 개체보다 더 근본적인 단위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바로 유전자(DNA)입니다. 유전자는 생명의 설계도이자, 스스로를 복제하고 다음 세대로 이어지려는 이기적인 존재입니다. (유전자가 기본적으로 이기적이라고 해서 개체가 본질적으로 이기적이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도킨스는 선택의 단위가 집단이 아닌 유전자라는 것을 역설하는데, 부록에서 다뤄보고자 합니다.)


도킨스는 우리 몸이 유전자가 자신을 복제하고 퍼뜨리기 위해 만들어낸 일종의 ‘운반체’ 또는 ‘생존 기계’라고 봅니다. (저는 상호작용자라는 표현을 선호합니다.) 유전자는 수십억 년 동안 끊임없이 자신을 복제하고, 때로는 돌연변이를 일으키며 환경에 더 잘 적응하는 새로운 ‘운반체’를 만들어냈습니다. 유전자가 복제되는 와중에 오류가 생기기도 합니다. 거의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한 번의 사건의 발생, 그리고 그것의 누적과 연쇄가 진화를 이끌어갑니다.


우리가 가진 생물학적 특성, 즉 우리의 신체 구조, 기본적인 본능, 뇌의 기본적인 작동 방식, 심지어 마음 같은 정신적 특징까지도 유전자에 의해 설계되고 전달됩니다. 유전자는 ‘나’라는 존재의 가장 깊은 뿌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DNA는 단순히 설계도일 뿐만 아니라, RNA와 함께 그 설계도에 따라 우리 몸을 만들어내고 작동시키는 데 필요한 모든 지시와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유전자의 많은 부분은 직면한 환경에 맞추어 언제 해당 코드를 작동하고 멈출지에 대한 지시를 포함합니다. 또, 후성 유전학*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DNA는 우리에게 신체적 기반을 제공하는 동시에 생존과 번식이라는 게임의 기본 규칙도 알려줍니다.


* 유전자 프로모터 부위에 메틸기(-CH3)가 결합되면 특정 유전자 발현이 억제됩니다. 뱀은 실제로 사지(팔다리)를 형성하는 데 필요한 대부분의 핵심 유전자 자체는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유전자들이 적절한 시기에, 몸의 특정 위치에서 ‘켜지거나’ ‘꺼지는’ 유전자 발현 조절 메커니즘에 변화가 생겨 사지가 만들어지지 않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메커니즘을 작동시키는 ‘설계도’와 ‘도구’가 모두 유전자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 후성 유전학: DNA의 염기 서열을 변경하지 않고도 유전자 발현이 조절되는 현상과 그 과정을 연구하는 학문.




하나의 세포로부터

우리는 모두 하나의 세포로부터 출발했다고 합니다. 물론 우리는 하나의 수정란에서부터 출발합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그보다 더 근본적인 의미를 가진 ‘하나의 세포’입니다. 우리의 조상에 조상을 쭉쭉 타고 타고 올라가다보면, 분명 단세포 원핵생물이었던 때까지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는 겁니다.


최초의 생명이 어떻게 발생했는지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지만, 원시 지구에서는 최초의 자기 복제자들이 생겼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습니다. 이들 중 살아남아 현재 지구 모든 생명체의 공통 조상이 된 세포가 바로 루카(LUCA)입니다. 자신을 복사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무사히 복사되는 과정 동안 자신의 형태를 유지할 수 있는 안정성, 그리고 생존과 복제에 필요한 물질을 포집할 능력이 필요 했습니다.


루카는 필요한 기능만을 딱딱 갖춘 최적화 된 존재는 아니었을 겁니다. 온갖 것들이 얼기설기 엉켜져 있어서 작동은 하는데, 왜 작동하는지는 모르겠는 그런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복제되고 변이가 발생하고, 다른 원시 세포들과 먹고 먹히는 치열한 생존 경쟁을 벌이는 중, 조금씩 최적화 (적합하게) 되었습니다. 너무 길지 않은 주기 내에서 복제될 수 있는 힘, 그리고 복제되기까지 안정성을 유지하는 힘, 그리고 복제될 때마다 아주 가끔 생기는 약간의 변이 (복사 오류는 버그가 아니라 특징!) 이 두 가지를 바탕으로 생명은 진화를 거듭해 온 것입니다.




전문화의 시대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세포 간의 공생이 시작됐습니다. 한 세포가 다른 세포를 먹었는데, 먹힌 세포가 흡수되어 사라지지 않고, 큰 세포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하게 된 것이죠. 마치 기업의 인수 합병처럼요. (포식이 아니라 작은 세포의 침투 관점에서 볼 수도 있습니다.) 특히 에너지를 생산하는 능력이 뛰어난 미토콘드리아 같은 세포가 다른 큰 세포 안으로 들어가 공생하게 되었고, 이로써 핵이나 미토콘드리아 같은 세포 소기관의 전문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진핵 세포의 탄생)


진핵 세포는 미토콘드리아를 통해 더 많은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핵막을 통해 자신의 유전 물질도 잘 지켜나가면서, 자신의 덩치를 불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만, 그 정도로는 아직 갈 길이 멉니다. 무엇이 또 가능했을까요? 생명은 세포의 수를 늘렸습니다. 하나의 개체 안에서 여러 세포가 각각 특정 기능을 담당하도록, 세포 전문화를 이뤄낸 것입니다. 이로써 더 크고 복잡하며 효율적인 생명체가 탄생했고, 환경 변화에 더 잘 적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바야흐로 다세포 생명의 시대의 개막입니다.


그러나 하나를 둘로 만드는 무성 생식은 단일한 것의 복제에 불과했으므로, 다양성을 낳지 못해 바이러스나 환경 변화 등에 취약했습니다. 자연은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자기 유전자의 절반과 다른 개체의 유전자의 절반을 섞는 감수 분열이라는 신식 메커니즘을 개발했습니다. (“생물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성(性)’의 본질은 ‘유전자의 뒤섞음’이다. 대부분의 진핵 생물이 채택하고 있는 유성생식은 이로운 유전자를 모으고 해로운 유전자를 버리기 용이할 뿐만 아니라, 끊임없는 유전변이의 조합을 통해 환경에 더 잘 적응하는 형질을 만들어낼 수 있는 생명의 위대한 발명이다.” 이대한 유전학자)


무성 생식밖에 없던 칙칙한 세계에서 유전적 다양성을 폭발적으로 증가시키며 다채로운 생태계의 토대가 된 유성 생식에 기어이 성공해낸 것입니다. 최초의 유성생식이 발생한 현장은 육상이 아니라 바다였을 정도로 유성 생식 역시 어마어마하게 오래된 사건이라고 합니다. 이런저런 환경에 적응하면서 종이 분화되고 분화되고, 600만 년 전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원숭이와 다른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초기 인류의 탄생입니다.


+ 유성생식 종에서 성별은 생식세포의 크기로 구별합니다. 큰 생식세포(난자)를 만드는 쪽이 암컷, 작은 생식세포(정자)를 만드는 쪽이 수컷이 됩니다. 이처럼 크기와 특성이 서로 다른 생식세포가 결합하는 유성생식을 ‘이형접합’이라고 합니다. 유성생식의 기원은 비슷하게 생긴 생식세포가 결합하는 ‘동형접합’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동형접합에는 정자와 난자로 구분되지 않는 여러 ‘교배형’이 존재하고 그 수는 두 개보다 많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형접합 종에서 오직 두 개의 성별만이 존재하는 이유는 ‘분단선택’ 가설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유성생식의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두 가지 상충하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하나, 수정 확률 극대화: 생식세포의 수를 늘리고 이동성을 높여 다른 생식세포와 수정할 가능성을 높여야 합니다. 둘, 수정 후 생존율 극대화: 생식세포의 크기와 내용물(세포 소기관, 영양분)을 늘려 수정 이후의 생존율을 높여야 합니다. 이 두 전략은 제한된 에너지와 자원 관점에서 서로 충돌합니다. 따라서 자연선택은 한쪽은 생식세포의 ‘수’를 최대한 늘리는 방향(수컷), 다른 한쪽은 생식세포의 ‘질’을 최대한 높이는 방향(암컷)으로 각각의 성별을 분화시켰다는 것입니다. 중간적인 특성을 가진 애매한 생식세포를 만드는 성별은 이러한 분단선택 압력 때문에 경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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