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문화 복제자 밈

by 밈바이러스

앞서 진화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봤습니다. 하지만 생물 진화만으로는 우리를 온전히 설명할 수 없습니다. 사람과 다른 비인간 동물의 차이를 파헤치기 위해서, ‘문화’라는 축이 하나 더 필요합니다.



그래서 밈이 뭔데? 인터넷 밈?

생물의 진화 중에 유전자(gene)라는 기본 단위가 전달되고, 변이됩니다. 비슷하게, 문화는 이기적 복제자인 밈(meme)을 통해 만들어지고 이어지고 변해갑니다. 리처드 도킨스가 제안한 단어인 밈은, ‘모방 등의 유전 이외의 방법을 통해 전달된다고 여겨지는 문화의 요소’입니다.


밈은 유전자처럼 물리적인 형태를 가지지는 않지만, 인간의 뇌와 마음을 발판 삼아 끊임없이 복제되고 전파됩니다.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짤이나 챌린지처럼 빠르게 퍼지기도 하고,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온 종교나 철학처럼 느리지만 강력하게 전파되기도 합니다. 단어 하나하나도 전부 밈입니다. 의사소통에 효과적인 단어는 계속해서 쓰입니다. 단어는 그 형태나 뜻이 계속해서 바뀌고, 새롭게 태어난 단어에 대체되어 사라지기도 합니다. (일상에서 의식하지 않는 말투나 말버릇, 걸음걸이 등 모두 모방 및 전달의 여지가 있는 밈입니다.)


밈은 어떻게 보면 ‘뇌에 떠다니는 정보 조각’이며, 전달되기 위해서는 ‘꼴’과 ‘형태’를 갖추어야 합니다. 데닛은 “살이 있는 바퀴가 달린 수레는 곡물 등의 짐을 여러 장소로 옮길 뿐 아니라, ‘살바퀴 수레’라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마음에서 마음으로 옮긴다”고 말합니다. 살바퀴 수레라는 아이디어는 표현되지 않으면 굉장히 추상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로 작동하는 수레라는 물리적 기계의 형태를 갖추어 전파되기도 하고, (‘나도 바퀴를 저렇게 만들면 편하겠네!’) ‘살바퀴 수레’라는 ‘단어’의 형태를 갖추어 전파되기도 합니다. (“너 살바퀴 수레 써봤어?”, “그게 뭔데?”, “이러쿵저러쿵”)


데닛이 드는 또 하나의 밈 예시가 있습니다. 고깃배입니다. 원시인들은 배 비슷한 것을 만들어 바다에 나갔습니다. 그 배들 중 몇 척은 성공적으로 살아 돌아왔기에 다음에 배를 만들 때 그 특성이 참고되었습니다. 반면에 침몰해서 돌아오지 못한 배의 특성은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어렴풋한 생각도 결국 말이나 행동으로 표현되어야 충실히 전달됩니다. 우리는 늘상 서로를 모방합니다. 그리고 모방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어떤 정보를 습득하고, 다시 그 정보를 퍼뜨립니다. 그 과정에서 뇌에 침투하는 것이 문화적 정보 조각, 밈인 것입니다. 그리고 정보를 습득하거나 전파하는 과정에 있어 조금의 변형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친구가 춤을 추면, 저는 저만의 방식으로 그의 춤을 따라 할 것입니다. 노래 한 구절, 패션, 아이디어, 캐칭 프레이즈, 건축 양식, 단어 등 모든 것이 밈입니다. 그 밈들의 복합체가 국가, 종교, 자본주의 등 커다란 사회 문화이며, 우리 삶의 기반이 됩니다.


감기에 걸리면 우리는 기침을 합니다. 기침을 하면 감기 바이러스가 공기 중으로 퍼져나가고, 다른 사람에게 전파되기도 합니다. 이때, 기침하는 행위는 바이러스에 이득이 되지, 행위자의 유전자 확산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밈 역시 사용자의 이익과는 직접적인 관련없이 서로가 서로를 모방하는 과정에서 저절로 복사되고 변이되고 전해집니다.


밈은 유전자와 마찬가지로 이기적입니다. 마음이 없어서 밈은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지만, 복사되어 퍼지는 밈은 성공적인 밈으로 남으며, 우리 뇌와 사회에서 살아남습니다. (모든 밈이 번성하기엔, 우리의 뇌와 마음에 자리가 충분치 않습니다. 그렇게 불운한 밈은 사라집니다.) 성공적인 밈은 우리의 뇌에 안착하고, 뇌 안에서 스스로 증식하고, 다른 밈들과 관계를 맺으며 조합되고 변이되면서, 언제라도 다른 뇌에 퍼져나갈 준비를 합니다.


수전 블랙모어는 밈이 가능했던 것은 우리가 훌륭한 모방자였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모방이라는 것은 단순한 하품과 웃음, 그리고 감정의 전염과는 다릅니다. 모방이란, 남을 관찰함으로써 행동에 대해 무엇인가 배우고 따라 할 수 있는 능력이 포함됩니다. 일반적이고 광범위한 모방 능력을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을 모방해서 기술을 더 빠르게 익힐 수 있었습니다.


농업 혁명이 일어나기 전 수렵채집 시기의 슬로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가장 뛰어난 모방자를 모방하라”. 모방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선택받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사회의 전체적인 상호-모방 능력이 증진되었습니다.

시작은 인류의 초기 뇌에서 만들어질 수 있을 만큼, 아주 기초적인 밈이었습니다. (대충 바나나를 보고 ‘브아!’라고 외치는 정도) 하지만 모방과 소통 과정에서 밈이 사회 구성원의 뇌에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 그리고 밈들의 쓸모가 유의미해지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훌륭한 모방자(밈을 잘 실어나르고 복제하면서 활용할 수 있는 뇌)쪽으로 선택압이 작용했습니다.


뇌의 발달은 더 복잡하고 실용적인 밈의 탄생을, 더 복잡한 밈의 탄생은 다시 밈에게 더 나은 서식지를 제공할 수 있는 뇌의 진화를 이끌었습니다. 그러니까 유전자와 밈의 공진화를 통해 더 복잡한 사회 문화, 문명이 태동할 수 있던 것입니다. 특히, 언어라는 밈이 우리의 음식물 소화를 돕는 장내 미생물처럼 뇌에 인스톨 되어서 강력한 사고 도구로 활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밈을 받아들이기만 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상호-교환합니다. 우리는 언제라도 이야기하며 카카오톡을 합니다. 밈은 확산이 기본 값입니다. 밈을 퍼뜨리려는 밈(침묵이 어색하네… 내가 재밌는 말을 해줘서 저 사람을 즐겁게 해줘야하나?)의 확산이 밈 확산에 있어 수동적인 밈(침묵이 금이고 미덕이지!)보다 더 잘 살아남습니다. 생존과 번식에 관심이 없는 생물의 유전자가 어느새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는 것과 같습니다.


밈은 한 사람의 뇌에서 자신을 점차 복제하면서 둥지를 틀고 다시 파져나갈 준비를 합니다. 밈이 인간의 뇌를 재편해서 자신에게 더 나은 서식처로 개척하는 것입니다. 밈은 다시 다른 뇌로 뻗어나가고 싶어서 경쟁합니다. 하지만 모든 밈이 복제되어 다른 뇌와 마음으로 퍼져나갈 행운을 누리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복제자의 유용성은 천차만별이며, 생물학적 이점과 꼭 연결 지을 필요는 없습니다. 좋은 발상이 대중적 유행에 묻힐 수 있는 것처럼요. 무엇보다 어떤 밈은 우리에게 지나치게 해롭기도 합니다. 아이디어 전파와 유전자 전파 사이에 진화적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성공적인 아이디어의 전파자는 유전자를 남길 확률이 높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꼭 유전적 전파에 득이 되는 밈만이 번성하는 것은 아닙니다.




생물학적 적합도와 반대로 작용하는 밈*

진화 생물학에서 적합도란 건강도 아니고 행복도, 지성도, 안락함도 아닌 생식 기량이다.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밈(문화) 중 다수가 생물학적 의미에서는 적합도를 명백하게 감소시킨다. 예를 들어, 대학 교육을 받는 것은 생식 기량이라는 측면에서의 적합도를 현저하게 저하시킨다.

만약 브로콜리 섭취가 그만큼의 (적합도) 저하 효과를 초래한다면, 판매되는 브로콜리에 당장 공중 보건 경고(“주의! 브로콜리 섭취는 당신의 자손 수를 평균 미만으로 낮출 수 있다!”)가 붙을 것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이 놀라운 사실이 그들의 삶에 경종을 울리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들은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고, 나는 그들을 믿는다.

학생들은 동종의 개체들을 재생산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들의 태도는 보편적이지 않을지는 몰라도, 모든 인류에게 우세한 견해다. 이 사실은 우리를 다른 종들과 구분시킨다. 자손을 추구하는 것은 새가 둥지를 짓고 비버가 댐을 건설하는 이유다.


*이하의 내용은 대니얼 데닛의『박테리아에서 바흐까지, 그리고 다시 박테리아로』, 신광복 역, 2022, 바다출판사에서 옮겨 왔습니다.




한국의 생존주의

요즘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 ‘생존’은 이전까지 써왔던 생존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되는 듯합니다(물론 모든 단어의 의미는 시시각각 변하지만, 특히나 의미의 대격변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김홍중 교수의 책 <서바이벌리스트 모더니즘>에 따르면, 생존과 대립하는 단어는 이제 ‘죽음’이 아니라 ‘경쟁상황에서의 도태’입니다. 이러한 ‘생존’은 다음과 같은 세가지의 상이한 형태를 띱니다.


경제적 생존 : 무용성의 유령이 되고 싶지 않아.

사회적 생존 : 과시적 인정 투쟁, 난 분명히 사랑받고 존경받아 마땅한 사람이어야 할텐데.

생물학적 생존 : 건강과 생명의 프리미엄 상품화, 웰빙 이데올로기, 무조건적인 건강에 대한 과도한 집착.


“한국인의 뇌리를 떠난 적 없는 강력한 질문, 영원히 회귀하면서 한국인들의 삶의 방식을, 죽음의 방식을, 존재와 체험의 틀을 만들어간 그 서글프고 야비하고 모질고 집요하며 잔인한 질문. 살아남는다는 것, 생존이란 무엇이냐.”

- <서바이벌리스트 모더니즘>, 김홍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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