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어갈수록 사람에게는 필요한 것과 갖춰야 할 것이 많아지는 것 같다. 꼰대가 되는 것을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해 요즘의 트렌드나 유행을 어느 정도는 알려고 노력도 해야 하고, 근손실을 막기 위해 꾸준히 운동도 해야 한다. 여전히 나는 나이만 먹은 천방지축이지만 그래도 어디 가서 적당히 어른의 대화를 나누려면 세상 돌아가는 일도 알아야 하고, 더불어 책도 좀 읽어야 하니 괜찮은 성인으로 살아가는 일은 꽤나 피곤한 일임이 분명하다.
게다가 주어진 시간은 한정되어 있어서 운동, 독서, 트렌드분석(?)과 같은 일들을 분주한 일상에서 챙기는 것은 정말이지 쉽지 않다. 작게나마 부수입을 만들고 싶어서 개설한 스마트스토어도 관리해야 하고, 주말엔 스냅촬영까지 다니다 보니 ‘그럼 체력을 길러야겠다!’라고 야무지게 생각하고는 운동시간까지 꾸역꾸역 추가해 넣었다. 그러니 책을 읽는 시간은 자연스럽게 뒤로 미뤄지기 시작했고, 독서모임에 가기 위해 전날 잠을 쫓아가며 밤늦게까지 책을 읽다가 아주 피곤한 상태로 아침을 시작해야만 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시간이 없어서 책을 못 읽는다는 말은 언제나 핑계라고만 생각해 왔던 나는 책 읽는 시간을 찾기로 했다. 평소 긴 호흡으로 느긋하게 앉아 커피와 함께 책을 읽거나 잠들기 전 침대에 파묻혀 읽는 것을 좋아했는데, 요즘은 앞서 언급했던 이런저런 일들로 긴 호흡을 두고 독서를 할 여유가 없고, 운동을 하다 보니 침대는 엉덩이만 걸치면 바로 수면상태로 접어드는 터라 책을 읽을만한 다른 시간이 필요했다. 긴 호흡이 어렵다면 자투리 시간을 이용하는 걸로, 비교적 눈과 손이 따로 일하는 시간에 멀티로!
그 결과 나는 드디어 책 읽는 시간을 찾았다. 바로 ‘점심시간’!
나의 일터엔 동료라고 할만한 사람이 없다. 코로나 시국이 시작되었을 때쯤부터 지금껏 누군가와 함께 일한 기간보다는 혼자서 일해온 기간이 더 많다. 그래서 점심은 주로 혼밥을 하는데, 예전엔 주로 드라마나 티브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밥을 먹었다. 그렇지만 요즘엔 책과 함께 밥을 먹고 있다. 왼손에는 책을 들고 오른손으로는 숟가락 또는 젓가락을 집으면서. 계속 손과 입을 움직이니까 책 읽다가 졸릴일도 없다는 것이 조금 웃프지만 장점이라면 장점이다. 책을 읽으면서 먹기에 가장 좋은 메뉴는 국밥! 숟가락 하나로 해결할 수 있어서 왼손이 책을 들고 있기에 좋다고나 할까. 때로는 아이패드로 이북을 열어서 세워두면 두 손이 자유롭기 때문에 밥 먹기에도 좋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책은 자고로 종이책이지!’하는 아날로그적인 사상(?)을 갖고 있었지만, 점심시간에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이북의 존재에 대해 관대해지기까지 했다. 역시 뭐든 색안경을 끼고 보거나 내 생각이 맞다는 고집은 살면서 큰 도움이 안 되는 게 맞는 것 같다. 밥 먹으며 책 읽기를 통해 의외의 것들을 깨닫는다는 게 역시나 의외다. 아무튼 점심시간에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나의 독서량은 꽤나 늘었다.
독서의 영향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기록에 대해 어떤 의무감 비슷한 것을 갖고 있다. 그래서 자꾸 사진도 찍게 되고, 그 사진들을 가지고 블로그도 운영하고 있다. 또 그때그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좀 더 편하게 기록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다 보니 어느새 내 핸드폰에는 다양한 글쓰기 앱들이 설치되었다. 물론 네이버 블로그앱과 인스타그램도 포함되어 있고, 매일 글감을 제시해 주는 글쓰기앱도 있다. 모든 앱들을 다 유용하게 쓰진 못하고 지금은 그중 일부만을 사용하고 있지만, 앱마다 여기저기 남겨둔 글이 아까워 모든 글쓰기 앱들을 지우지 못하고 남겨두고 있다. 여러 글쓰기앱 중 내 핸드폰에 오랜 시간 설치만 되어 있고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앱이 하나 있었는데, 그게 바로 ‘브런치 스토리’다. 다른 글쓰기앱은 가입만 하면 곧바로 글을 쓰고 게시할 수 있지만, 브런치는 어떤 글을 쓸지 계획하고 간단한 심사를 받는 ‘작가신청’에 통과가 되어야만 글을 게시할 수 있다. 뭔가 심사와 같은 과정이 하나 더 필요했기 때문에 그동안 선뜻 도전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신청이라니.. 그것도 ‘작가신청’이라니...‘작가’라니...!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언젠가 글쓰기 실력이 조금이라도 쌓이면 꼭 작가신청에 도전해 보리라’라고 마음속으로만 생각해 왔다. 그래서 나름 글쓰기수업도 들어보고, 틈틈이 몇 자 적어보기도 했지만 여전히 부끄러워 누군가에게 보여주지도 못했다. 매년 나의 일기장 맨 앞엔 ‘올해의 목표’ 몇 가지가 적혀있는데, 항상 빠지지 않고 목록의 한 줄을 채우고 있던 것이 바로 ‘브런치 작가신청’이었다. 한참만에 용기를 내서 브런치 작가신청을 했을 때에는 마음먹었던 것처럼 글쓰기 실력이 조금이라도 쌓였던 때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기깔나게 써둔 글이 많지도 않았던 때였다. 그냥 평범하게 흘러가던 어느 날이었고, 오히려 다른 날보다 조금 더 마음이 복잡했던 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갑자기 ‘오늘 브런치 작가신청을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브런치 앱을 설치한 지 거의 8년 만에 작가신청을 했고, 운이 좋게도 통과를 해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여전히 내 글은 부끄럽지만 이렇게 된 이상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꾸준함’을 발휘하는 것! 그렇다면 책 읽을 시간을 찾은 것처럼 꾸준히 글 쓰는 시간을 찾아야 했다. 밤과 새벽이 주는 오글거리는 감성에서 비교적 자유롭고, 정신이 명료한 시간. 내가 찾은 시간은 오전 원두포장 업무를 끝내고 첫 커피를 마시는 시간이다. 목표는 일주일에 한편 글 올리기, 그리고 하루에 최소 한 줄이라도 쓰기! 그래서 지금 이 글 역시 오늘의 첫 커피를 마시며 쓰고 있다.
책을 읽는 것처럼 글을 쓰는 것 역시 긴 호흡을 가지고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써야만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니 자연스레 내가 그동안 글을 써왔던 시간은 퇴근 후 잠들기 전까지의 시간이었고, 역시 주로 밤이었다. 밤이 주는 글은 감상적이고 말랑할지는 모르겠지만, 도저히 오글거려서 어디 내놓을 수가 없다. 오히려 몽롱했던 정신과 무거운 눈꺼풀을 일으켜주는 아침 커피타임에 쓰는 글이 더 명료하고 나답게 느껴진다. 그래서 단 한 줄을 쓰더라도 요즘은 아침에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쓰려고 한다.
책 읽는 시간은 밥 먹는 시간에.
글 쓰는 시간은 하루의 첫 커피를 마시는 시간에.
나는 그렇게 나를 채울 시간들을 찾았고, 또 찾고 있다.
주변의 지인들은 나에게 ‘그렇게 공사다망하니까 연애할 시간이 없는 거야’라고 하지만..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열일을 제쳐두고라도 그 사람을 만날 시간을 또 찾아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