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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그 Lee Aug 21. 2023

8. 소원암은 소문난 합격도량.

고무신 신고 다니는 스님.

" 그런데 스님,

내림굿을 받았으면 신명님만 모시면

되었잖아요..? 근데 왜 힘들게 불교 공부까지

하셨어요..? "  또 내가 묻는다.


스님의 대답인즉슨

어려서 공부 못한 한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먼저 절에서의 공부가 참 좋으셨다고

한다. 부처님의 출가에서부터 경전 한 구절마다

진리가 아닌 것이 없었고 다른 건 몰라도

자비를 실천하고 구제중생을 으뜸으로

하는 가르침엔 누구보다 잘 실천할 자신이

있으셨다고 한다.

( 하긴, 이미 그렇게 살고 계셨으니... )


그래서 공부를 시작해 불교 대학을 차석으로

졸업하시고 법계를 하나둘씩 따며 단계를

올라가다 보니 대덕 품계에까지 이르셨다는 것이다.


또 신당에서 모시는 신명님도 뭐든지 퍼주고

싶어 하는 분들(특히 천상 동자님)이라 어려움이

없었고, 지금도 정기적으로 후원하는 곳만 해도

6-7 군데이며 그 외에도 소소하게 보살펴 오고

있는 곳이 많지만 옛날부터 지금껏 돈에 욕심 없이

'내 것은 없다'라는 생각으로 똑같이 살아오셨다고 한다.


( 지난번 일(앞 회차 참고)로 정처사님이 고맙다고

얼마간 시주를 한 모양인데 봉투 그대로 후원하고 있는 애육원에 기부하셨다.)


"스님, 제가 보면 다른 스님들은 맛있는 보양식에

고기도 드시고, 곡차도 드시고 신발도 발렌시아가

이런 명품으로 신고 다니고, 여름이면 윤기 좔좔

흐르는 모시로 몇 백만 원짜리 법복도 입고 다니던데요..? "

내 말이 웃긴가..?  웃으신다.


" 그 스님들은 또 그렇게 사시고요. 각자의 삶이 있지요. 저는 편하게 막 빨아 입어도 되는 이 무명옷이

제일 편해요. 그리고 이 고무신이 얼마나 좋다고요.

산에 가도 바위 위에 올라 다녀도 전혀 미끄럽지도

않지요."


스님은 사철 내내 흰 고무신이다.

어쩌다 겨울에 눈이 오면 옛날에 할아버지들이

신으시던 털신( 플라스틱 냄새 지독한 검정 신발에

속은 털 들어있고, 신발 테두리에 갈색 인조털이

둘려져 있는 )을 신으신다.


공양은 하루 한 끼.

미숫가루를 드시거나

김치나 나물에 밥.


지난번에 병원에서 의사가 단백질 섭취를

많이 하셔야 한다고 했다는데 그렇거나 말거나

스님의 식사엔 변함이 없다.  그렇게 드시고 용케도

살아가신다고 했더니, 제자는 신명밥을 먹기에

배고픈 줄 도 모르신다 한다.

나는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뭘 안 드시고도

저렇게 활기차게 움직이고 활동하시는 걸

보면, 우리가 모르는 뭔가 있긴 한 모양이다.


암튼, 난 궁금해졌다.

얼마 전에 13번이나  회계사 시험에 떨어지고

소원암이 합격도량이라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사람을, 스님께서 기도해서 단번에

합격시켰기 때문이다.

(아니, 신명님께서 또 뭔 합의를 보신 모양이다.)


"스님, 이번에 시험에 합격한 사람은

대체 어떻게 하신 거예요..?. 그렇게 오래

공부하고도 못한 합격을 어째 우리 소원암에

오자 마자 합격을 시키셨어요..?"

아이스커피를 한 잔 올려 드리면서

조심스레 여쭸다.


" 다 신명님께서 하신 일이지요.

전 그저 명도 동자님께서 하시는 말씀만

전해드렸을 뿐이고, 다행히 제가 전한 대로

그 집안에서 잘하셨기에 조상님과 명도 동자님께

합의를 잘 보게 되어 합격하도록 허락하신 거지요."


대체 어떤 합의를 보셨을까.,? 궁금해 죽겠다.


"스님 자세히 말씀해 주시면 안 돼요..?"

다가앉으며 내가 말한다.


커피를 한 모금 드시다가 고개를 들어 멀리

바라보시더니  말씀을 시작하신다.


" 이번에 시험 본 사람(편의상 S 군이라고 지칭함)의 할아버지 할머니에서 시작하고

그 부모에게서 마무리되는 얘기예요."




그러니까 오래전 S군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조그만 소 읍에 터전을 잡고 살아가는 소 농이었다.

누구나 그렇듯 가난한 살림에 간단히 단촐하게

혼인식을 하고, 아들 둘에 딸 하나를 낳고 올망졸망

살아가는 우리네 이웃의 모습처럼 평범한 가정이다.


어느 봄, 점심때 건너 마을의 혼인 잔치에 다녀온

 S군의 할머니가 기분이 다소 가라앉아있다.

본인은 내색하지 않으려 하지만, 오래 함께 살아온

남편이 그걸 모를 리 없을 터, 그 마을집에 가서

무슨 일이 있었나... 싶어서

물어볼 때를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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