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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길의 여유 Oct 01. 2023

“청춘이란  마음상태"

나침반

00 종합복지관의 영어, 중국어, 일본어 교육을 ¹외국어 봉사단에서 운영하게 되었다. 나는 영어 중급반을 맡아 1년 동안 봉사했다. 복지관 영어 중급반에 참가하는 수준이면 제대로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다.


  강의 계획서를 작성할 때부터 설렘이 시작되었다.  영어영문학 전공자로서 수강생들이 영문학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다. 수업의 주 교재는 복지관에서 이미 구매한 상태라 준비할 필요가 없었다.  부교재로 누구나 좋아하는 ‘어린 왕자’ 영어 원문 독해로 선택했다.  그리고 매달  한 편의 영시를 선정해서 읽고 느낌을 나누도록 했다.  교재에 나와 있는 미국드라마를 다운로드하여 영상으로 감상할 수 있도록 빔프로젝터로 연결했다.  소리가 잘 나오는 스피커를 갖고 가서 생생하게 들을 수 있도록 했다.   어린 왕자의 영어 원문도 원어민 목소리로 된 클립과 연결했다.  영시도 마찬가지다.  그달의 시에 가장 어울리는 목소리를 가진 음성파일을 찾아 영시의 깊은 울림을 느낄 수 있도록 준비했다.  여기저기 산재하여 있는 영상자료들을 찾느라 시간과 공을 많이 들였다.   나의 얕은 영어 실력이 탄로 날까 염려되어 나름 철저히, 열심히 공부했다.      


  수강생은 전부 18명. 평균나이 72세의 어르신들이다.  맨 앞줄에 계신 네 분은 자신들을 F4 (드라마 꽃보다 남자)로 부르라 하며 늘 유쾌하게 수업 분위기를 만들었다.  그중 한 분은 아침마다 ²햄(HAM)으로 세계 곳곳의 햄들과 매일 아침 영어로 대화한다 했다.  다른 한 분은 매년 세계 10대 트레킹 코스를 한 곳 한 곳 여행하시는 분도 있다.  무릎이 고장 나기는 하지만 매년 해외트레킹을 가기 위해 국내에서 무박으로 산행하여 몸도 단련하고 고되고 거친 환경에도 적응한다 했다. 그래서 영어도 필요하다는 그분은 나를 해외 트레킹팀에 넣어 주고 싶어 하셨다. 중간쯤 앉으신 어르신은 수업 중 가끔 질문한다.  몰라서가 아니라, 나 이 정도 아는데 당신도 아는가?이다. 그래서 당신의 지식을 뽐내시라 기회를 드리곤 했다.  늘 뒷자리에 앉는 어르신은 혼자 다니신다.  건강한 기가 넘쳐나는 분으로 목소리가 남달리 맑고 우렁찼다.  영시 낭독을 할 때 강의실은 그분은 멋진 음성으로 가득 차곤 했다.   항상 창가에 홀로 앉는 분께  슬쩍 발음이 범상치 않다고 칭찬하니 영문과 출신이라 하셨다.  그분은 지금도 하루도 빠짐없이 카카오톡으로 영상 시를 보낸다.  모 방송국 PD 출신인 분은 완전 마초 중의 마초다.  절대 여자한테 얻어먹을 수 없다며 근사한 점심을 사 주시곤 했다.  최고령자인 84세의 어르신도 있다. 수줍은 듯 떨리는 아름다운 목소리와 미소를 머금은 표정은 너무나 아름다운 노년의 모습이었다. 그분은 수업이 끝나면 슬며시 당신이 직접 만든 누룽지를 주시곤 했다.  가장 최근에 퇴직한 교감 선생님도 계셨다.  그분은 내게 00 도서관에서도 강의하라고 강요 아닌 강요를 하곤 했다.  강의실에서 내가 제일 어렸다(!) 가끔 혼자 해결하기 벅찬 복잡한 문제 해결을 위해 지혜를 빌렸다. 자신들의 일처럼 앞 다퉈 최고의 해법을 주시곤 했다.     


  어르신들이 좋아할 법한 영시를 고르는 것은 행복한 고민이었다.  심사숙고하여 선택한 영시를 화면에 올려놓고 “읽어 주실 분?” 하면 저 뒤에 앉아 계신 중후한 어르신이 손을 번쩍 들며 일어선다.  멋진 저음으로 화면에 있는 영어와 한국어를 번갈아 운율에 맞춰 실감 나게 낭독하신다.  오메 멋져부러!    

 

특히 미국의 시인 사무엘 울먼 시 ‘YOUTH’를 읽으셨던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느 기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그것은 장밋빛 용모, 앵두 같은 입술, 나긋나긋한 자태가 아니라

강인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는 열정을 말한다.

청춘이란 인생의 깊은 샘에서 솟는 신선한 정신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를 뿌리치는 모험심을 의미한다.”     

 이곳저곳에서 영어 수업을 받아본 경험이 많은 분들이다. 그들이 나를 최고라 엄지 척해 주었다.  진짜 ‘청춘’들의 뜨거운 애정을 한 몸에 받으며 1년이 지나갔다.    

  

12월 초, 마지막 수업 날이었다.   나는 그동안 내게 주신 무한한 사랑에 대한 보답으로 소박한 선물과 음료수를 대접했다.  F4 중 한 분이 하신 말씀;

‘내가 퇴직할 때 이렇게 오랜 시간이 내게 있을 줄 알았다면 영어 공부를 처음부터 다시 했을 거야. “ 함께 하신 모든 분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할 만한 일이 어찌 영어 공부뿐이겠는가.  내 생에 남아 있는 시간을 더욱 보람되고 가치 있게 만들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시도하고 용기를 내어 도전하고 해야 한다.   


영어 학습 전달자로 시작한 ’ 자원봉사‘에서 오히려 어떻게 ’ 시니어‘로 살아가야 할지 가르침을 받았다. 내가 활동한 1년은 자기 성찰의 시간이었으며 어떻게 괜찮은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를 생각하도록 방향을 제시해 준 나침반이었다.


1. 2013년 서울시 이모작센터에서 시니어 전문자원봉사단으로 시작된 이래 2023년 현재 50+ 액티브외국어봉사단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2. 아마추어 무선(영어: Amateur Radio ;HAM)은 직업이 아닌 취미 활동으로서 무선 통신을 즐기는 취미. 아마추어 무선은 햄(HAM)이라고도 하며, 아마추어 무선사도 햄(HAM)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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