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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길의 여유 Oct 01. 2023

작은도서관

도서관 활동가

2020년 2월 외국어봉사단이 소속되어 있는 기관 0 팀장이 전화했다. 

“선생님, 이번에 저희가 작은도서관 운영을 맡았어요. 외국어봉사단에서 함께 해 주셨으면 해요”

“ 좋죠!”     


 나는 3년 동안 종현 언덕을 오가며 여고 시절을 보냈다. ‘종현’이란 현재 명동성당 자리의 옛 이름으로 성당 축성식을 열었을 당시 이름은 종현성당(鐘峴聖堂)이었다.   


명동성당 바로 옆에 나의 모교인 계성여자고등학교가 있었다. 우리 교복은 항아리치마와 마치 은행잎 모양을 연상하는 둥근 모양의 칼라 블라우스에 벨트로 허리를 조이는 특이한 모양이었다. 은행잎 모양의 교목 블라우스 칼라 한쪽에 학교 배지인 별 모양을 다른 쪽엔 ‘이란 도서 반원 배지를 달고 다녔다. 


명동성당과 수녀원 사이에 있던 도서관은 작은 명동성당이라 불려도 손색없을 만큼 아름다운 고딕식 건물로 많은 장서가 잘 정돈되어 있었다. 도서관 안으로 들어가 왼쪽 계단을 올라가면 도서 반원만이 드나들 수 있었던 작은 방이 있었다. 그 방에선 오래된 책에서 나는 매캐하면서도 향긋한 냄새가 났다. 삼 년 동안 도서 반원이었던 나는 아름다운 도서관에서 도서정리와 책 읽기에 대부분 시간을 보냈다. 책에서 나는 향기를 많이 사랑했고 도서 반원만이 누리던 그 특혜에 흠뻑 빠졌다. 언제든지 서가에서 자유롭게 뽑아 볼 수 있는 특권과 학생수첩 도서 대출 기록란에 내가 읽은 책 제목이 늘어가는 것을 보는 기쁨도 컸다. 친구와 보이지 않는 신경전 비슷한 것을 하면서 경쟁하듯이 읽어 재꼈다. 이런 행복한 기억 덕분에 나는 ‘도서관’ 이란 단어만 보아도 즐겁고 달콤한 추억에 젖곤 한다.     


0 팀장의 작은도서관 활동이란 말이 나오자마자 봉사단 회의를 소집해 안건을 상정하여 모두의 동의를 받았다. ‘도서관’ 이란 단어에 다들 10대로 뒤돌아 간 듯 적극적으로 힘과 마음을 모았다. 마음 넉넉한 사람들이다. 교육받고 조를 편성하고 촘촘하게 활동계획을 세웠다.   그렇게 시작한 활동은 코로나 19로 개관과 휴관을 반복하며 동력이 떨어져 갔다. 자연스럽게 활동 초기 활활 타오르던 열정이 점차 사그라져 갔다.


  그러던 중 8월, 50+ 서부 캠퍼스에서 작은도서관 지원단을 모집했다. 한쪽의 활동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호기심이 생겼다.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 경험하고 싶었다. 작은도서관 지원단 지원서를 쓰면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고등학교 3년 동안 도서 반원 활동을 했던 소중한 추억이 있으며작은도서관 지원단 참여와 활동을 통해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일에 공헌할 수 있고 함께 성장할 수 있다면 큰 기쁨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라고 소개/각오/포부 난에 썼다.    

 

아파트 단지 안의 작은도서관은 아파트 주민들의 순수 자원봉사로 운영되었기에 도서관 열람시간과 운영관리가 전문 사서가 있는 곳과는 조금 차이가 있었다. 교육을 받은 후 2인 1조로 짝을 지어 배정받은 작은도서관에서 주 2회 활동했다. 

  

  대출반납서가 정리장서점검도서등록신규회원등록연체자관리 등 그리고 명상숲 걷기세계시민 교육 프로그램 등을 운영했다기획부터 실행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은 자원활동가(아파트 주민), 그리고 파트너의 절대적인 신뢰와 협업으로 실행되었다활동이 끝나갈 무렵 내년에도 꼭 다시 활동해 달라는 작은도서관 관계자들의 간곡한 부탁을 받았다정말 바라는 대로 되었다지원단에 선발되어 작은도서관 코디네이터 활동 4개월 동안 도서관운영에 필요한 업무인 장서관리도서 대출반납시스템 운영 등을 통해 성장했고 큰 기쁨을 누렸다.

  

  함께 활동했던 파트너 선생님에게 받은 배려와 존중 그리고 함께 이뤄낸 최고의 시너지로 연대의 중요성을 더욱 깨닫게 되었다책을 사랑하는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과 알콩달콩 주고받는 상호작용은 보람을 느끼기에 충분했다오랫동안 강의 주제에 필요한 부분만 발췌한 편향된 책 읽기였다작은도서관 지원단 활동을 통해 잊고 있었던 독서 DNA를 되찾은 것도 큰 수확이다.

      

  사춘기 시절 도서관 로망과 사회경험으로 쌓은 역량이 시니어가 된 지금지역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해결책으로 될 수 있음을 직접 경험했다.     


  여를 통해 장했고 헌하는 자세와 마음을 다시 잡는 기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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