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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길의 여유 Oct 01. 2023

가르칠 수 있는 용기와 힘의 원천

기도와 함께 

  나이 오십을 훌쩍 넘은 중년여성 15명이 한 달 동안 강사 교육을 받았다. 이름하여 경력단절 여성을 위한 취업의식고취프로그램 강사 과정. 이런 교육을 받는 것이 억울하다고 할 만큼 이미 교수, 교사, 학원 강사, 학습지 교사로 경력이 풍부한 사람이 여럿 있었다.


  교육이 끝난 후 심사위원들 앞에서 각기 다른 모듈로 시연을 했고, 엄중한 심사를 거쳐 최종 두 명이 강사로 선정되었다. 모두가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난 한 명과 내가 뽑혔다. 일부는 반신반의하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얼굴이 화끈거려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왜냐하면 시연 중 시종일관 부들부들 떠는 목소리로, 시선은 천장으로 바닥으로 갈 곳을 잃고 헤맸으니 말이다. 심사는 공정하고 엄격한 기준에 의해 이루어졌고 어떤 점에서 가점과 감점이 되었는지 발표한 심사위원장에게 아무도 반론을 제기하지 못했다. 그리고 13인의 부러움, 시기 그리고 질투를 받으면서, 기관에서 선정한 여러 곳에서 3년 동안 강의를 하게 되었다.


  모두에게 인정받은 강사는 아니었기에 많이 노력했다. 암기에 또 암기, 그리고 처절한 리허설. 첫 시간이 다가올수록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히고 호흡이 거칠어졌다. 강의하겠다고 선뜻 나선 나의 어리석은 결정을 가슴을 치면서 후회했다. 압박감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일상생활도 힘들게 만들었다. 시간이 흘러 마침내 해야 할 날이 오고야 말았다.


  두려움과 잔뜩 긴장된 마음으로 맞이한 첫날, 그 첫 1분은 한 시간도 더 되는 듯했다. 갑자기 머릿속이 텅 비어 버렸고 나를 바라보는 참여자들의 기대에 찬 눈빛은 내게는 마치 잔뜩 벼르고 있는 심판관의 엄중하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보였다. 하얗게 변해가는 강의실에서 나는 완벽하게 단절을 경험했다. 입에서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맙소사. 무수한 불면의 밤을 태우며 외우고 익혔던 그 많은 내용은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고 대신 호흡 곤란과 진땀만 삐질삐질 나올 뿐이었다. 그런 나에게 참여자들은 따뜻한 박수로 위로와 격려를 해 주었다. “괜찮아요. 천천히 하세요”. 처음부터 내가 강사로 시작하는 첫 강의임을 이야기했기에 이미 그들은 이해할 준비를 하고 있던 것이다.


  경력단절 여성을 상대로 시작한 강의는 시니어, 퇴직자, 퇴직 예정자, 제대군인, 자영업자, 그리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영역이 확장되어 갔다. 모든 첫 시간은 긴장되고 떨리는 동시에 참여자들이 가진 무한한 힘을 믿는 나로 리셋 된다. 수업 안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은 늘 기대 이상의 시너지로 서로를 성장시킨다. 그뿐만 아니라 촉진자로서의 나의 역할에 무한한 감사와 행복을 느끼곤 한다.


 가르치는 것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내면의 진솔한 언어로 참여자와   대등한 위치에서 상호 작용과 교감을 하는 것이다. 이것을 알기에 강의 시작 전에 늘 기도한다. 


‘지극히 정성을 다하여 진정성 있는 시간이 되게 힘을 주시고 함께 성장하게 하여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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