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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길의 여유 Oct 02. 2023

비상대책위원회

비대위활동

“밴드를 들어가 보세요”
 “왜요?”
 “H팀장이 쓴 글을 보세요”
 
 함께 사회공헌활동을 하는 정 선생님의 귄유로 ‘도심권 센터’의 밴드에 들어가 보았다. 사회공헌 활동을 하면서 음으로 양으로 도움을 주고받았던 50+ 도심권 센터가 2022년 11월 말로 폐관된다는 소식이 올라와 있었다. 확인차 센터의 양대 산맥인 H팀장과 L팀장과 통화를 해보니 맞는 말이었다. 두 팀장과는 2014년 이래 서로 믿음과 신뢰를 바탕으로 가깝지도 멀지도 않는 관계이다.
 
 이직과 전직을 자유자재로 하는 요즘 세대답지 않게 꾸준하고, 일관되게 센터를 운영하던 그들과 기획하고 운영했던 프로그램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들의 지속이 가능한 기획은 딱딱하게 굳어있던 기성세대를 말랑말랑하게 만들었다. 협업하는 내내 세대 간의 간극이 좁혀졌고 즐겁고 유쾌하게 일했다. 11월 30일로 센터의 폐관과 함께 해임을 통보받았다는 말에 어이가 없었다. 두 팀장보다는 직업을 잃을 다른 어린 직원들 생각에 마음이 아려왔다.
 
 나의 이전 경력(HR)을 활용하여 내가 할 수 있는 일 하기로 마음먹었다. 가장 처음으로 한 것은 서울시 사이트 응답소에 민원을 제기한 것이었다. 예상했던 대로 답변은 천편일률적으로 돌려막기식이었다. 나처럼 민원을 제기하는 사람에게 같은 내용으로 회신하고 있음을 다른 루트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모호한 답장이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민원을 제기했다. 두 번째 민원에는 그들이 하고자 하는 센터 폐관 조치와 해임 통보는 노동법상으로 부당함을 언급하며 질문에 번호까지 붙여서 재답변을 요구했다. 예상대로 책임지지 않으려는 애매모호한 문구로 본질을 흐리는 회신이 왔다.
 
 서비스디자인워크숍에서 일해본 사람들답게 행동으로 옮기자는 의견이 모였고 비상대책위원회가 발족하였다. 전체 이용자 (1,318명)의 폐관 반대 서명이 3일 만에 만들어졌다. 그리고 25명으로 비상대책위원회가 구성되었다. 비대위는 서울시 자치구별로 팀을 구성하여 서울 시의원들을 만나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대책을 세우는 방향으로 전략을 세웠다. 
 
 비대위의 활동 현황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도록 구글 시트를 이용했다. 비상대책위원 대표 4인은 서울시 담당자들과의 면담을 통해 센터 이용자들의 입장과 의견을 개진하였고 이에 서울시 담당자는 3주 후에 답변하겠다고 약속했다. 서울시와의 미팅이 잡힌 날 나는 강의가 있었으나 강의 날짜를 변경하여 미팅에 참석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은 일부러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마스크로 가려있어 전체를 볼 수 없었으나 선량한 눈빛을 가진 서울시 담당 공무원은 품성이 좋아 보였다. 작고 날카로운 목소리로 다그치듯 조여드는 나의 공격도 부드럽게 잘 방어하는 모습에 약간 믿음이 갔다.
 
 그로부터 3주 후, 약속한 날짜에 맞춰 비대위 대표 4인이 다시 서울시 미팅룸에 모였다.
 기대만큼은 아니나 거의 90% 이상은 우리의 요구대로 해 주겠다는 확언을 받았다. 이를 문서로 만들어 놓은 공문도 사진 찍어 확실하게 했다.
 
 불가능하게 보였던 도심권 센터의 기능과 고용 문제가 인생 전환지원센터(가칭)로 넘어갈 때까지 연착륙시키겠다는 서울시 담당자의 진정성과 의지를 확인한 것이 큰 소득이었다.
 
 오래전 노사갈등을 해결하기 위하여 중간역할을 하던 시절, 부끄럽지 않게 살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퇴사 이래 가능하면 중간에 끼지 않으려고 의도적으로 노력해왔다. 이번 일도 전면에 나서는 일은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어떤 일은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사정없이 나를 휩쓸고 간다. 이번 일도 그랬다. 동참하면서도 끊임없이 어디까지 해야 할지 고민하면서 함께 했다. 마침내 결론을 내렸다.
 
 지금은 비겁하지 않게, 후회하지 않게 행동해야 할 시간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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