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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길의 여유 Oct 02. 2023

호위무사, 아니, 수호천사!

무식하고 용감하게

   봉사 단체에서 함께 활동하며 친하게 지내는 B는 대화나 문장에 있어 품격 있는 어휘를 사용하여 번번이 감탄하게 하곤 한다. 대화중 ‘호위무사‘란 단어를 한결같이 믿어주고 힘을 주는 사람이란 뜻으로 사용하자 ”그건 당신의 심리상태를 반영하는 단어다. 즉 무의식 중에 사람들을 당신 아래로 보는 거다 “ 난 그 말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정말 그런건가 생각해 보았다. 나의 호위무사 명단엔 그리 호락호락하게 볼만한 사람은 없었다. 의도와는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단어 사용을 자제했다.    

 

  몇 해 전 교육 중 인생에서 나를 신뢰하고 지켜주는 ‘호위무사’가 몇 명인지 써 보는 시간이 있었다. 세 명만 돼도 성공적인 인생이라 했다. 생각나는 대로 써보니 열 명이 넘는 명단이 만들어졌다. 새삼스레 인복이 많은 것에 감사가 절로 나왔다. 성공한 인생이다 싶었다. ‘성공’은 상대적인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소소하게 실현되는 행복의 다른 모습이란 생각이 들었다. 
 
   면접을 보러 온 S는 다른 지원자들과 차별화될만한 특별한 점이 보이지 않았다. 삐딱하게 앉은 자세와 특유의 하이톤 음성도 거슬렸다. 면접 중 업무 프로세스를 설명하는 것도 판에 박힌 뻔한 답변으로 낮은 점수를 주었다. 그런데도 최종 면접에서 S가 선발되었다.
 
   S는 첫 출근날 5분이나 늦었다. OJT(직무 현장 교육 훈련) 교육을 받기 위해 내게 왔을 때 쳐다보지도 않고 일갈했다.  “5분 늦은 거 알죠?” 특이하게도 이 말에 반했단다.  “저의 멘토가 되어 주세요” 두 눈을 반짝이며 교육 후 내게 한 말이다. 하나를 알려주면 단번에 열을 알아듣고 곧바로 실행에 옮겨도 실수 없을 만큼 일머리가 뛰어난 S는 짧은 시간 내에 내 사람이 되었다. 직원들로 북적였던 내 사무실은 노란 포스트잇을 번호표 삼아 미팅 순번을 정하곤 했는데 늘 무법자처럼 쳐들어오곤 했다. 이것도 마음에 들었다. 종교, 페미니즘, 사회적 가치 지향성 등이 같은 방향을 향해 있었기에 우린 16년 나이 차이가 무색할 만큼 잘 통했다.
 
   얼마 전 S와 오랜만에 명동성당 앞에서 만났다. 대화 중 날아온 문자를 확인하고 S의 표정이 심상치 않게 변했다.
 "왜? 무슨 일이야?"
 "Oh My God, 저 우수상이래요!"
 “그래? 무엇을 썼기에?”
 “세상에, 이런 일이..... 글 주인공 만나는 날 당선이라니”
 “뭔 소리야?”
 “같이 앙크로와트 여행 갔던 에피소드를 썼거든요." 그러나 글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나는 S가 쓴 글을 어렵지 않게 찾아냈다.
 
   우린 여행사를 통하지 않고 종종 자유여행을 하곤 했다. 함께 갔던 여행지인 캄보디아 씨엠립 공항 입국 심사대 제일 앞줄에 섰고 미리 준비해 간 여권과 비자를 심사관인 군인에게 주었다. 얼굴을 쳐다보고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하고 통과시켜주지 않아 영문을 모른 채 한참을 기다렸다.  가장 쉬운 영어로  군인에게 물어보았다.  ”무슨 문제가 있느냐?, 한국에서 비자를 받아왔는데 왜 통과시켜주지 않느냐? “

무장한 군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입국심사대는 한 곳으로 우리가 통과되지 않으면 뒤에 줄 서 있던 패키지로 여행 온 많은 사람도 역시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상황을 지켜보던 여행사 가이드가 다가와서 비자 외에 공항 서비스 요금으로 1인당 1달러를 암묵적으로 지급해야 통과시켜 준다고 했다. 나는 금액의 고하를 막론하고 부당하기에 줄 수 없었다. 부당함에 침묵의 동조를 하면 어는 순간 정당화되고 당연하게 되는 것을 알고 있기에 지급하지 않았다. 시간이 많이 지체되긴 했으나 무사히(?) 통과하여 앙크로와트를 여행할 수 있었다. 다소 무식하고 용감하게 버티며 대치한 그날의 일화를 글로 쓴 것이다
 
   S가 쓴 글 속의 주인공인 내가 꽤 괜찮아 보였다. 나를 제일 잘 알 것 같은 세 사람에게 링크를 걸어 보냈다.


 나 : 나 조금 멋있었던 것 같아~
 딸: 흠, 엄마 너무 미화된 거 아냐?
 아들: 엄마 되게 꽉 막힌 사람이었네!
 친구: 넌 항상 멋있어.... 그리고 한마디 더 무식하고 용감해!
 
   내 마음이 추운 겨울 마른 나뭇잎처럼 바삭거리던 시절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S는 처음 만났던 때 내 나이와 비슷해져 가고 있다.
 
 언제나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네!" 하는 S는 나의 호위무사, 아니 수호천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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