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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길의 여유 Oct 01. 2023

내 인생의 화양연화, 홍콩4대 트레킹

치유와 충천의 트레킹

회사를 그만두고 여유 있게 지내고 있을 때 중국과 홍콩 등지에서 사업을 하고 있던 친한 친구 남편이 조금만 도와 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시작된 홍콩과의 인연은 4년간 체류로 이어졌다. 세계금융시장을 뒤흔든 리먼 브라더스 사태가 벌어진 2008년, 타이밍도 기막히게 바로 그 절정에 나는 홍콩에 있었다. 환율 변동으로 인해 모든 것이 절망적으로 변해가던 그때 여러 가지 선택으로 고민하던 중 습관적으로 서점으로 갔다. 그리고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Hiker's Guide to Hong Kong.'


  피곤힘에 찌든 직장 생활 중 나는 걷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가까운 거리도 택시를 이용하여 잠깐의 휴식을 취했던 내가 걷기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대부분 홍콩을 화려한 도시로 알고 있지만, 대자연이 공존하는 곳이다. 전체 면적의 70%가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운 산과 다이내믹한 해안선, 아기자기한 섬들로 구성되어 있다. 영토의 40%가 국립공원과 자연보호 구역으로 지정되어 있고 영국 식민지 시절부터 조성된 트레킹 코스 중 대표적으로 4대 트레일이 있다. 홍콩 트레일, 윌슨 트레일, 맥리호스 트레일 그리고 란타우 트레일이다.    

 

  마음만 먹으면 전철로, 버스로, 마을버스, 때로는 작은 배로 어렵지 않게 갈 수 있고 가는 길이 험하지 않다. 가벼운 산책 수준부터 험난한 코스까지 다양한 코스로 되어 있으며 트레킹 코스의 대부분 경사가 완만하여 걷는 내내 산과 바다를 감상하며 친구 삼아 걸을 수 있다. 트레킹 중에 소박하고 한적한 어촌 마을, 단아한 숲길, 아기자기한 해변 등을 만날 수 있다.     


  꽝꽝 얼린 얼음물 두 통, 여벌의 옷, 수건, 수영복, 우비, 비닐 덮개를 넣은 배낭을 둘러메고 카메라를 목에 걸고 가이드 책을 나침반 삼아 집에서 가까운 곳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트레킹 4대 코스의 모든 구간을 완주했다. 홍콩의 아름다운 내면의 모습에 감탄하고 자연이 주는 온갖 영양분을 온몸으로 흡수하며 건강하고 단단해져 갔다. 숨이 차고 땀으로 범벅되면 잠시 숨을 돌려 얼음물을 마시며 잠시 쉬면 된다. 시원한 산바람에 영혼까지 정화되어 산 아래를 내려다보면 인생이 별거 있나 싶어 졌다. 바람이 불고 풀잎이 앞에서 거대한 파도처럼 휩쓸려 가며 출렁이는 것을 보면서 휘트먼의 풀잎이 생각나곤 했다.

“걸림 없이 나아가라/많이 배우지 않더라도 감동을 주는 사람들, 당신 생의 모든 해 모든 계절/당신의 영혼을 모욕하는 무엇이든 멀리하라”     


  휘트먼의 말대로 숲을 따라갈 때의 기쁨과 대낮의 떨리는 소리 들었고 소나기를 만나면 고스란히 맞으며 걸림 없이 나아갔다. 조금 젖은 들 모 그리 큰일인가 싶었다. 내 앞의 펼쳐진 장엄한 자연 앞에서 너무나 ‘미약한 나’와 힘들게 그 산에 올라온 ‘대견한 내가’ 보였다. 앞이 보이지 않는 산안개와 운무가 자욱한 숲 속 길에서 또 다른 자아를 만나 “진정한 나”를 되돌아볼 수 있었다.


  사진 동아리에서 만난 동료가 혼자 다니다 이상한 사람을 만날 수도 있다고 걱정했다. 그만큼 홍콩 트레일은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 호젓한 길이다. 그래서 등산 스틱을 마련하여 벗 삼아, 호신구 삼아 들고 다녔다. 홍콩에서 만난 새로운 인연들과 함께 트레킹 하게 되었고 차츰 멤버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북경에서 공부하던 딸아이도 방학 때마다 함께 하여 잊지 못할 추억을 쌓았다.    

 

  홍콩의 가을과 겨울은 특히 시원하고 건조하여 대자연 속에서 트레킹 하기 좋은 계절이다. 여름은 덥고 습하며 소나기가 자주 내린다. 걷다 보면 소나기를 흠뻑 맞아 물에 빠진 생쥐가 되기도 한다. 산에서 내려가면 바로 바다가 기다린다. 그것도 아주 호젓하고 정갈하고 아름다운 바다다. 산과 바다가 어울려 아름다움 그 자체인 곳들이다. 역시 사람이 거의 없다. 소나기로, 땀으로 흠뻑 젖은 상태에서 수영복으로 얼른 갈아입고 바다로 뛰어들어 온몸을 바다에 맡기면 자연과 혼연일체로 몰아지경이 된다.   

  

  그토록 습하고 더운 여름날 땀 흘리면서 트레킹 재미에 푹 빠지니 금융 위기에 대한 두려움도, 압박감도 사라졌다. 후배 말대로 재직시절 가슴까지 닿았던 나의 다크 서클은 사라졌고 튼실한 허벅지와 단단한 종아리 알이 건강 지표가 되어갔다. 함께 산행하는 동료가 생기자 혼자 서는 몰랐던 하산 후 시원한 맥주와 간단한 로컬 food를 먹는 재미까지 알게 되었다.    

 

 트레킹 덕분에 위기를 극복했고 몸과 마음이 건강 해졌으며 성숙해졌다고 믿는다. 내 인생의 화양연화인 홍콩에서의 시간. 홍콩 하면 트레킹이 생각나고 지금도 여전히 아름다운지, 아직도 잘 있는지 확인하러 일을 핑계 삼아 아름다운 홍콩에 트레킹 하러 가끔 간다.     


내게 있어 트레킹은 치유와 충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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