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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길의 여유 Oct 03. 2023

사랑하고 일하라. 일하고 사랑하라. 그게 삶의 전부다!


  제주 오기 바로 전날, 요양 보호사 교육원 원장이 6월 마지막 주에 이름하여 ‘인재육성’ 프로그램 참여자들을 위한 이력서 쓰기와 면접 준비 강의를 부탁했다. 이미 기본 강의안이 있음으로 흔쾌히 하겠노라 약속했다.     

  나는 딸이 살고 있는 제주에 2~3개월에 한 번씩 간다. 쑥쑥 크고 있는 손자의 성장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코를 향긋한 아이의 향을 맡는다. 믿기지 않을 만큼 눈부시게 늘어나는 아이의 어휘력에 내 귀는 절로 호강한다. 이번 6월에도 짧은 1주일이지만 아이와 찐하게 지내려고 어렵게 시간을 만들었다.  

   

  손자와 즐겁게 집안일을 하던 중 요양보호사 교육원 원장의 전화를 받았다. 

“선생님, 이번 주 일요일에 강의 가능하세요?” 

“저 어제 제주에 왔어요.” 

“아휴, 일정상 선생님이 먼저 해 주시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요.” 

“저 1주일 후에 서울 갑니다.” 오죽 급하면 이렇게 늦은 시간에 연락했을까 싶어 마음이 조금 쓰였다.    

 

  하루 휴가 낸 딸과 함덕해수욕장 인근에서 맛있는 해물 칼국수 먹고 바닷가 바로 앞에 있는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커피도 마시고 책도 보면서 느긋하게 오후를 즐겼다. 살짝 나른해져서 맨발로 바닷가를 거닐다 그늘진 곳에 자리 깔고 누워 다른 듯 같은 길을 가고 있는 딸내미의 공사다망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언니처럼, 선배처럼 아낌없는 조언을 했다. 육아와 직장 일 병행하는 모습이 애잔하고 안타깝다. 모든 모녀 관계가 그렇듯이 나와 딸아이와 관계는 특별하다.     


  둘만의 오붓한 시간 중 교육원 원장의 전화를 받았다.

 “선생님 다음 주 일요일 강의 해 주세요.” 

“어, 전 토요일 아침 비행기로 서울 올라가서 오후에 코로나 백신 맞아야 해요. 그러면 이틀은 쉬어야 한다고 하던데.” 

“에이, 제가 간호사 출신이에요. 걱정하지 마시고 해 주세요, 4시간입니다.” 

그녀의 말을 들으니 그렇겠다 싶었다. 옆에 있던 딸이 “엄마에게 일어날 수도 있는 백신 부작용과 전직 간호사가 옆에 있는 것이 무슨 상관있어? “ 딸 말도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미 하겠다고 했으니 계획을 수정해야 했다. 토요일 서울 올라가려던 일정을 목요일로 변경하고 백신 예약도 앞당겼다.     


  금요일 아침 주사를 맞았다. 잠시 병원 대기실에 앉아 숨을 고르고 평상시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다음 주에 면접을 앞둔 4명을 포함한 전체 10명의 소그룹을 위한 이력서 쓰기와 면접 준비 강의를 실전같이 느낄 수 있도록 준비했다. 

    

  나는 2011년 이래 다양한 대상자들에게 취업에 필요한 것들을 강의를 하고 공공기관에서는 전문면접관을 한다. 올해는 4월부터 6월 초까지 거의 쉬는 날 없이 서울과 지방에 있는 공공기관 면접과 서류전형을 했다. 빡빡한 다른 면접관에 비해 나는 조금 넉넉한 면접을 하는 편이다. 신입이나 경력직 지원자에게 자신들이 쓴 이력서와 자기소개서에 서술한 개연성에 대하여 살짝 까다롭고 슬쩍 압박하는 정도로 면접한다. 지나치게 굳어있는 후보자들에겐 실없는 농담을 건네 긴장을 풀어준다. 간혹 시설 분야에 나이 드신 분들 면접할 때는 자신 있게 답변할 수 있는 질문을 하곤 한다. 강의 중 실시하는 모의 면접도 그 정도의 수준에서 준비했다.  

   

  일요일, 교육원에 일찍 도착하여 실습용 자료를 준비한 한 후 강의실로 들어갔다. 10명의 초롱초롱한 눈빛이 나를 향했다. 이번 강의 참여자들은 거의  50대 후반으로 ‘케어 매니저’를 지원한, 나름대로 사회에서 한가락했던 분들로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소지한  사람들이다. 휴식 시간에도 쉬지 않고 열심히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썼다. 대단한 열정 들이다. 그들이 강의 3시간 참여하고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작성한 후 스토리텔링을 해서 모의 면접에 임 한 것이다. 모의지만 실전 수준의 면접으로 진행하니 다들 긴장하여 당황하고 준비한 만큼 충분히 답변하지 못하여 안타까워했다. 오랜만에 하는 것이니 당연하다. 모두 최선을 다했다.    

 

  최고의 하이라이트는 70대 남성 지원자였다. 그분은 평소 건강관리를 잘하고 있음을 한눈에 알아볼 정도로 탄탄한 몸매와 살아있는 눈빛, 태도까지 침착하고 당당했다. ”몇 살까지 일하고 싶으신가요? “ "건강이 허락되는 한 하고 싶습니다." ”건강은 어떻게 관리하시나요? “ ”전 매일 자전거를 3시간 타고 1시간 정도는 걷습니다. “ ”다른 분보다 나이가 많으신데 괜찮으시겠어요? “ ”이 분야의 경력은 이제 시작이니 나이와는 상관없이 선배이고 상관으로 모시겠습니다. 영화 인턴에서 나온 것처럼 그런 롤이면 됩니다. 전 일을 하고 싶을 뿐입니다. “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맞는 말이다. 노년에 명예와 권력을 추구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영화 '인턴'은 열정적인 30대 여성 CEO와 70대로 부사장까지 지낸 나름 성공적인 은퇴남이 시니어 인턴으로 채용되면서 일어나는 다양한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영화다. 요가와 화초 재배를 취미로 즐기면서 행복한 노후를 보내던 중 아내와 사별하고 공허함을 느끼던 차에 시니어 인턴으로 도전하는 남 주인공은 너그럽고 여유로우며 지혜와 위트도 겸비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남 주인공이 자신이 살아있다고 느끼게 해 주는 것으로 일을 선택하여 도전하고 실행에 옮긴 것이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없이, 끊임없이 하는 도전이야말로 살아있음을, 살아갈 맛을 느끼게 하는 것이라고 영화 상영 내내 보여준다.     


누구나 나이를 먹는다. 노년기에는 적극적인 활동 추구와 사회참여를 통하여 삶의 만족도와 자아존중감이 높아진다. 급속한 변화 속에서 다른 경험을 가진 세대와의 소통은 중요하다. 세대를 아우르는 현명함은 존중, 배려, 경청 등 소통의 기본에서 온다.    

  

  긍정적인 사고와 건강하고 유쾌한 노년의 모습에서 삶의 연륜과 지혜가 변하지 않는 가치임을 보았다. 그래서 더욱 영화 인턴에 나오는 대사가 마음에 와닿는다.     

Love and work, Work and Love. That's all there is

사랑하고 일하라. 일하고 사랑하라. 그게 삶의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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