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책길의 여유 Oct 02. 2023

오래된 희망

이어달리기

도서관 문을 열어야하는 하는 날 아침은 마음이 분주하다. 시간에 맞춰 가기 위해 종종걸음으로 전철역을 향해 가고 있었다. 손목에 찬 스마트워치에 진동이 느껴졌다. 왼손을 들어 보니 낯익은 번호이나 이름이 없었다. 백팩을 앞으로 돌려 핸드폰을 꺼내 받았다.     

”여보세요, 저.. 혹시... “

”네, 말씀하세요. “

”혹시  멘토단.. 이 국장님 핸드폰인가요? “

”네. 맞아요, 이선미입니다. “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아! 안녕하세요. 저 이 00입니다 “   

  

지난 8월 얼떨결에 50 플러스 도심권 폐관 비상대책위원이 되었다. 무리한 폐관조치에 항의하고자 대표 몇 명이 서울시 담당관에게 항의성 방문을 했다. 청사 로비에 붙어있던 부서 안내판을 보면서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서울시 공무원인 그를 떠올렸고 어디에서 근무하는지 검색해 보았다. 혹시 도움을 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가 그곳에 있다고 한들 나를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고 설령 기억한다 해도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는 생각도 동시에 들어 검색을 중단했다.  그런데 그가 내게 전화한 것이다. 마치 내가 찾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와~~ 소름.    

 

정말 반가웠다. 꼭 빠른 시간 안에 봤으면 좋겠다는 그의 말에 그러마 약속하며 통화를 끝냈다. 그는 내가 처음으로 인정한 능력과 인성을 갖추고 있는 공무원이다. 전철 안에서 멘토단 창설배경과 단체의 미래 방향성에 대하여 열띠게 토론했던 시간이 떠올랐다. 처음 가본 서울시 청사 회의실은 낯설었으나 그의 따뜻하고 배려 넘치는 태도와 이상적인 아이디어에 같이 동행했던 동료들 모두 매료되었다. 그는 스마트하고 정중했다. 저런 공무원이 있다니. 그는 멘토단 운영위원들의 공무원에 대한 인식을 바꿨다. 그가 설계했던 멘토단은 현재 50 플러스 운영체계와 꼭 닮은 기획이었다. 2011년 내가 참여했던 단체인 멘토단은 은퇴한 전문가들이 모여 커뮤니티를 만들어 사회 공헌하는 것이 목표였다. 활동 중 본래의 취지와는 역행한 몇몇 사람들에 의해 와해되긴 했으나 취지만큼은 좋았다. 그와의 즐거웠던 기억 덕분에 도서관 출근길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짧은 시간에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궁금해졌다. 왜 전화했을까? 현직 공무원이? 친하게 지내는 서울시와 비슷한 조직의 지인에게 넌지시 물어보니 ”지금 시즌이 새 사업을 기획할 때이니 아무래도 사업 얘기 같아요 “ 한다. 그로부터 1주일쯤 지나 약속을 잡았다. 그가 추천한 장소는 시끌벅적한 동대문광장시장 한가운데 있는 닭 한 마리 집이었다. 오래전에 가본 적이 있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음식점에 도착 했을 때 그가 전화를 했다. 내가 찾지 못할 것 같아서였다. 역시 매너 최고다!


여전히 그는 푸르고 밝았다. ‘선배님’이라 깍듯하게 부르는 그와 마주 앉아 물에 빠진 닭 한 마리를 안주 삼아  지난 10년 세월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앞으로 정년이 10년이나 남아있다는 그는 요즘 퇴직 이후의 삶에 관심이 많이 있다 했다. 이것저것을 둘러보다가 자신이 운영했던 프로젝트 중 가장 마음에 남아있는 멘토단 선배들이 궁금해졌다고 했다. 가장 빈번하게 연락을 주고받았던 내가 생각났고 그 인연을 이어가고자 하는 그의 마음을 전했다. 멘토단 혜택을 가장 많이 받았노라는 내 고백에 환하게 웃음으로 답하는 그를 보며 ‘인연’과 ‘연결’에 대한 생각이 깊어졌다. 다양한 곳에서 여러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으로 나에게까지 오는 것들이 얼마나 많을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참 감사한 일이다.    

 

그의 손에는 ”은퇴 후 30년“ 이란 책이 들려져 있었다. 그 책을 보이며 그가 말했다. ”요즘은 이런 책만 눈에 들어와요” “저는 저의 경험과 지식을 후배들에게 나눠주는 편한 선배가 되고 싶어요” 그의 희망대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활동들이 딱 그런 형태이다. 멘토단 이후 활동하고 있는 나의 이야기를 듣고 마치 자신이 나를 키운 것 같은 기분인 것 같았다.      


다음 만남을 기약하고 그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아침보다 더 가벼웠다. 나만의 노력으로 된 것은 없었다. 10년 전 그의 아이디어로 출발한 프로젝트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그가 희망차게 쏘아 올린 화살은 하늘을 날아올라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에게 펴져 있다. 선배로서, 멘토로서 사회에 선한 영향을 주고받는 오래된 우리들의 희망은 이어달리기처럼 세대와 세대를 연결해 주고 있다. 그 가운데 내가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이전 17화 비상대책위원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