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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식빵 Apr 20. 2022

다음 세대를 계획할 수 있는 세상

하교 후 놀이터 단상

하교 후 아이와 놀이터에 갔는데 예전보다

확연히 아빠들이 많이 눈에 띈다는 걸 깨달았다.

오늘은 아이의 보호자로 어린이집 혹은 유치원 가방을

대신 둘러맨 채 따라온 엄마(혹은 할머니) 대 아빠들

비율이 거의 6:4에 육박했다.


아무래도 절대적 양육시간이 적은 쪽이 아빠들인 경우가 많아서겠지만, 아빠가 데려온 아이들은 죄다

울거나 소리 지르고 있었고ㅋㅋ

아빠들은 쪼그만 악동들을 제어하지 못해 쩔쩔매거나 윽박지르거나 계속 그럴 거면 지금 당장 집에 돌아가자고 협박하는 중이었다.

반면 엄마나 할머니들은 아이들이 노는 패턴을 잘 알기 때문인지 대개 한 발짝 물러나 아이들 행동을 지켜보거나 놀이터를 이탈하지 않도록 보는 수준.

혹은 나처럼 멀찍이 벤치에 앉아 이렇게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딴짓을 하기도 했다.


놀이터에 아빠들 비중이 늘어난 건 코로나 덕(?)에 재택근무하는 아빠들이 많아져서일까.

아님 몇 년 새 자영업자 비율이 그렇게 늘었나?

우리 남편의 꿈인 전업투자자인 분들이 많아졌나..?

아님 싱글파파가 많아졌나?

아님 우리 아파트만 유독 육아 참여도가 (어떤 이유에서건)  많은 아빠들이 모여사나?  ㅎㅎ

별 생각을 다 해본다.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니던 3~4년 전보다 요즘 확실히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젊은 아빠들이

많아진 것은 사실인 것 같다.


그들이 겪어내는 육아 노동의 고됨ㅋㅋ을 보면서 나는 생각한다. 저들이 이 비생산적이고 감정노동적이고 대가도 없는 오직 사랑으로만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와중에 그들의 와이프는 승진을 위해 열정을 불사 지르며 일하고 있거나, 친구라도 만나 스트레스를 풀고 있거나

아무튼 좀 쉬고 있거나,

그게 뭐건 간에 어쨌든 그들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보내고 있기를.

  

젊은 부부들이 좀 더 아이 키우기 좋은 사회가 될 수 있으려면 더 많은 육아 당사자들이 직접 느껴야만 하고, 그들이 정책에 직접 가닿을 수 있는 정치를 하는 정치인들을 뽑아야 한다. 헬조선이란 슬픈 단어는 아직도 유효한 듯 하지만, 그래도 나는 낙관적으로 보고 싶다.

우리는 과도기에 있는 것이라고.


전에도 말한 바 있지만, 세상을 비관적 관점에서 바라보며 아이를 키워내야 한다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나는 부모로서 세상이 점점 더 나아질 곳이란 걸

전제하며 아이를 키워낼 수밖에 없다.

그래야만 힘이 난다.

더 나은 어른들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나가는

중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저출생 문제나 육아 관련 복지정책들도 어찌 되었든 앞으로는 직접 느끼며 정책 입안에 참여한 사람들이 많아질 테니 그만큼 더 나은 정책들이 나오기를.

(그리고 더더더 많은 여성 정치인들이

진보 보수를 떠나 나올 수 있기를.)


더는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 세상만큼 불행의 끝인

사회가 어디 있겠는가.

아이들이 희망이고 천사 같고... 그래서 아이를 낳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다음 세대를 도모하고 계획할 수 있는 세상이 희망이 있는 사회이기 때문에, 아이를 낳아 키우고픈 세상이 안전한 사회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세상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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