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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식빵 Sep 16. 2024

15화. 휴직자의 두 마리 토끼 잡기  

- 가족, 행복, 그리고 돈

육아휴직한 1년 동안 뭐라도 조그만 성과라도 내서 최후의 날 결국, 아쉬움 안고 노예 생활로 복직하게 되더라도 최소한 회사 밖에 또 다른 세상과 기회가 존재함을 알게 되어 웃으면서 돌아갈 수 있길 바랐던 남편.

그 성과란 것은 대학 졸업 후 샛길로 새지 않고 꽤나 우직하게 10여 년간 회사원의 정체성으로만 살아온 사람의 첫 일탈이자 모험이기도 했다. 대단한 성공을 바란다기보다는, 1년이란 짧은 시간 동안 그런 것이 가능하지도 않겠지만, 그저 시키는 일만 해온 소극적인 사원, 대리, 과장, 책임으로 살아온 길 외에, 남편이나 아들이나 아빠로서의 김민준의 정체성 외에, 회사 외에 다른 것을 해서도 돈을 벌 수 있고, 주체적으로도 뭔가 이뤄낼 수 있을 거라믿음과 의지의 발현이기도 했다. 자기 자신에게 또 다른 능력도 있음을 티끌만큼이라도 증명해보고 싶은 듯했다.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을 위해서. 아직도 구만리만큼 남은 자신의 인생을 위해서. 그렇게 해야만 남편이자 아빠로서도 더 행복해질 수 있으리라 여기는 것 같았다.      


결국 모든 것은 일상의 행복으로 귀결된다.

행복은 자주 만날 수는 없는 희귀하고 반짝이는 어떤 것이라는 믿음이 많은 이들에게 절대적이지만, 사실은 아주 작은 것에서 시작되곤 했다. 아니, 사실 행복은 무언가에 의해서 시작되거나 저 멀리 높은 곳에 있는 무언갈 성취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찾아낼 수 있는 사람에게만 자주 보이는 것이었다. 어느 평범한 아침, 눈을 뜨자마자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의 기분이 든다면 그건 행복의 모습이 아니었다. 오늘 해야 할 중요한 PPT 발표 걱정부터 든다면 그건 행복의 모습이 아니었다. 온종일 빈둥거리며 놀거나 해외여행을 많이 다니며 돈을 마음껏 쓴다고 그것도 행복은 아니었다. 오늘, 내가 해야만 하는 ‘나의 일’이 있고, 내가 열심히 내 주체적인 계획 아래서 한다면 해낼 수 있는 정도의 스트레스의 일이 분명히 있고, 내 사랑하는 사람들 역시 나를 사랑하며 따뜻한 밥 한 끼 같이 앉아 먹고, 서로의 일상 얘기를 편안한 상태에서 나눌 수 있다면, 그리고 가끔 일상의 스트레스를 풀러 여행을 떠날 수 있을 정도의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그건 행복이라 이름 지을 만한 것이었다. 너무 늦기 전에, 인생의 너무 후반기가 아닌 적당한 시기에 그걸 알아볼 눈이 있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민준은 낙찰받은 빌라를 수익 내고 아름답게 마무리하여 첫 성공의 경험을 갖고 싶어 했고, 회사가 아니어도, 매일 얽매인 시간에 출근을 반복하지 않아도 매달 들어올 고정적인 수입을 갖고 싶어 상가를 갖고 싶어 한 것이다.     


서울에서 울산까지, 쉬어 쉬어 가면 편도로 5시간이 걸린다. 인천과 부천 상가 임장경험을 통해 더 치밀하고 확실하게 상권분석을 했다. 한 번 더 유찰된 가격은 대박이 맞았다는 확신이 다시 들었다고 한다. 걱정인형인 나는 낙찰받아 상가의 주인이 된다고 쳐도 서울과 울산의 거리를 무시하며 그 상가를 관리하기에 벅찰 수도 있겠다는 생각부터 먼저 했지만, 그딴 것은 민준에겐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런 걱정을 한다는 것 자체가 덜 아쉽고 덜 급한 사람이 하는 걱정이라고 믿는 사람이었다.      


무박 울산임장을 감행한 그는 다음 경매기일에 비장한 마음을 품고 적정가격을 책정해서 다시 한번 울산으로 입찰 여행을 떠났다. 결과는 안타까운 낙찰이었다.


3억에 가까운 추가 대출을 또 받아야 한다는 부담감과 아무리 1층에 스타벅스가 있는 도심의 메디컬 빌딩, 최고의 상권이라 해도 공실의 위험이 아예 없을 수는 없으므로 나는 사실 속으로는 내심 안도했다. 민준에게 그런 마음을 들키지는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아마 알아챘으리라. 알아챘지만 나의 안심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을 것이고, 지난번 회차에 최저입찰가 3억이 넘어도 입찰해서 무조건 가져왔어야 하는 물건이었다며 대단히 아쉬워했다. 그러곤 다시 또 입찰할 물건들을 뒤지지 시작했다. 뭔가 하나에 미치면 주변의 모든 것은 방해물이고, 오직 그것만 파는 끈질긴 집념. 가끔 보면 왜 저렇게까지 하나 싶은 정도였지만, 또 어느 날은 고맙게 느껴지기도 했다. 나의 경제적 무능력과 제로에 수렴하는 현실 감각은 그를 만나지 않았다면, 다른 남자와 결혼하기라도 했다면, 처참한 결과를 맞이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서로 너무나도 달라서 정말 지독하게 많이 싸우기도 했지만, 서로의 장점과 잘하는 것도 너무 달랐기에 우리는 서로를 신뢰하고 서로 잘하는 걸 분담해 맡는다면 최고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커플이었다. 다행히 아이는 우리의 장점을 적절하게 반씩 잘 물려받은 것 같았다. 문제는 늘 우리 둘이었다. 장점을 보려 노력해야 하는데, 서로 다른 점만을 물고 뜯고, 자신을 서로에게 이해시키려고 쓸데없는 시간과 체력을 10년 가까이 쏟았다. 아마도 이 싸움은 죽을 때까지 끊기지 않고 계속되겠지만, 어쨌거나 지금은, 이 순간만큼은 큰 결심을 하고 대한민국 탑티어 연봉을 받는 대기업도 못 다니겠다며 뛰쳐나와 딴짓을 하고 있는 그를 응원할 타이밍이었다. 나 혼자 능력으로 잘 먹고 잘살며 아이도 잘 키울 자신이 없다면 질책이나 걱정 대신 응원이라도 열심히 할 타이밍이었다.      


한편 민준은 휴직 후 부동산 투자와 경매뿐 아니라, 다행히 육아와 집안일에도 많은 시간을 쏟아주었다. 사람은 직접 해봐야 아는 법이다. 초등학교 2학년, 다 큰 것 같아도 아직 손 갈 데가 얼마나 많은지, 집안일은 왜 돌아서면 또 할 일이 기다리고 있는 건지, 매일 치우고 청소해도 티 나지 않는데, 하루 안 치우면 또 얼마나 티

가 나는지. 장보기며 아이 학원이나 방과후 스케줄을 짜고 간식과 숙제 같은 걸 챙기는 데 생각보다 얼마나 많은 품과 시간이 드는지. 그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 여겼던 일들을 전담해서 하게 되면 내가 진짜 하고픈 일을 할 시간을 내기는 얼마나 어려워지는지.

민준이 휴직한 후 나도 덩달아 부동산 공부를 시작하고 법원을 쫓아다니면서 본업인 글을 쓸 시간은 줄었지만, 요리하거나 아이 픽업을 하거나 청소를 하는데 시간을 덜 쓰게 되었다. 물론 내가 해오던 것만큼 완벽하게 나를 대체하거나 내가 원하는 수준으로 민준이 잘하게 된 것은 아니지만, 그 역시 육아와 집안일을 제대로 해

보는 게 처음이듯이 나 역시 그가 전담해 오던 돈 벌던 일을 조금이라고 나누어가져 부담을 가져오게 되었다. 여전히 나는 우리가 하는 이 경매란 것이 대기업 연봉을 대체할 만큼 돈을 벌게 해 줄지 의문스러웠다. 하지만 의문을 가질 시간에 아무리 안 될 것이라도 최대한 되도록 만들어보자는 게 민준이었다. 나는 걱정하고 부정적 생각을 하느라 시간의 8할을 보낸다면 그는 그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걱정이 없고 아직 마음의 여유가 있어서 그런 거로 생각했다.      


아이에겐 처음부터 아빠의 육아휴직을 밝히진 않았다. 어느 날부턴가 본인은 아침이면 늘 그렇듯이 학교에 가는데 집에 있거나 엄마 대신 학교에 자길 데려다주는 아빠를 의아해하기 시작했다.  

   

“아빠, 아직도 휴가야? 대체 언제 회사 가?? 나도 학교 가기 싫어~~!”     


“아... 아인아 사실은…. 아빠 육아휴직 했어!”     


“엉??”


“아빠가 우리 아인이랑 더 친해지고 싶어서. 이렇게 엄마 대신 학교에도 데려다주고, 같이 여행도 더 다니고 하려고, 1년 동안 회사 쉬기로 했어! 어때??”     


“우와 1년??? 좋겠다!!! 나도 학교 1년 안 가고 싶어!!!”     


아이는 처음에는 여름휴가도 아닌데 계속 회사에 안 가는 아빨 부러워했다가, 어느새 자연스럽게 엄마, 아빠가 늘 함께 집에 있는 일상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아침에 오늘은 엄마, 아빠 중 누가 데려다 줄 거냐고 묻게 되었다.      


불같은 다혈질 성격과 본인 기준에 못 미치는 모두를 나태하고 이상하다고 여기기 일쑤였던, 그래서 가끔 나와 딸을 힘들게 했던 민준, MBTI마저 ‘엄격한 관리자’란 별칭을 가진 그는 사실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되도록 그리 아이와 친하게 지내지 못했다. 주변에는 딸바보인 아빠들도 많던데, 내 남편은 그러지 못했고 나는 늘 그게 불만이었다. 아이는 여전히 엄마만 많이 찾았고, 가끔은 아빠를 무서워했다. 사춘기도 빨리 오는 요즘 아이들인데, 아이는 순식간에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버릴 거고 그땐 이미 늦을 거로 생각하며 나는 자주 초조해했다. 나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두 사람이 더 이상 되돌리기 어려워지기 전에 친밀하고 애틋한 부녀관계가 되길 바라고 또 바랐다.

부동산에 미쳐있는 남편이 1년 안에 투자도 어느 정도 성공하고, 하나뿐인 딸과의 관계도 좋아진다면 더할 나위 없는, 우리 삶에 꼭 필요하고 중요한 한 해가 되겠지만 과연 그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을까?               



....................


 

(다음 화에 계속)


좋아요와 댓글은 식빵작가가 계속해서 다음화를 쓰는데 큰 힘이 됩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참고로 이 연재소설은 박식빵 작가 부부의 실화를 바탕으로 쓰였습니다.                     

                         


참고) 연재 재개하며 연재요일을 바꾸려고 했는데 브런치 시스템상 9/27부터 요일 수정이 된다고 합니다. 따라서 당분간은 하던 대로 쓰고싶은 날 써서 무작위 업뎃할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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