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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식빵 Sep 25. 2024

17화. 점유자와의 아름다운 이별

새로운 세입자를 만나다.

여름이 끝나감과 동시에 잠시 뒤로 젖혀두었던 일을 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

낙찰받은 빌라에 살고 있던 점유자 이씨가 집을 비워주기로 한 시기가 다가온 것이다. 과연 그는 약정서에 사인한 대로, 선불로 월세를 지급한 대로 딱 3개월만 더 살고 내 집에서 순순히 나가줄 것인가? 경매 권리분석은 배운 대로만 잘 뜯어보면 크게 어려운 점은 없었는데, 낙찰받은 집에 살고 있는 전소유자나 세입자를 내보내는 명도는 경매고수들도 어려워하는 과정이었다. 집을 비워야 세를 놓거나 매도를 해서 경매의 최종목적인 투자수익을 얻을 수 있을 텐데, 명도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다양한 일들이 일어나거나 이사 협상이 잘 되지 않아 결국 비용을 들여 강제집행까지 가는 경우도 꽤 있기 때문이었다. 경매 커뮤니티 글들을 보니 이사 나가줄 테니 이사비 1,000만 원을 달라고 하는 막무가내 점유자도 있고, 문도 안 열어주고 연락처도 알 수 없어 아예 협상이 불가해 낙찰자의 애를 태우는 경우도 있었다. 점유자가 독거노인이거나 기초수급자인 경우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고, 심지어는 낙찰받은 집이 아무래도 빈집 같아 문을 따고 들어갔더니 고독사한 시신이 있었다는 무시무시한 후기를 읽기도 했다.      


이씨가 이사 나가기로 약속한 날이 하루하루 다가오자 우리는 마음을 졸이기 시작했다. 이미 만나 직접 이야기를 나눠본 사이이고 집 상태도 봤기에 그가 약속을 지킬 거라 믿었지만 최후의 순간까지 안심할 수는 없었다. 혹시라도 이제 와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추가적인 비용 몇백만 원을 들여 그를 강제로 내보내는 강제집행을 해야 했고, 실제로 나가게 되는 순간까지는 은행이자를 더 내야 했기에 시간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큰 손해가 될 터였다. 마음이 다급해진 민준은 넌지시 나에게 물었다.      


“이사 갈 집은 계약하셨냐고 문자라도 보내볼까? 아직 날짜 좀 남았는데 너무 쪼으는 것처럼 느끼려나...?”     

“음.. 이번 주말 즈음 한번 물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집 보러 올 사람 있으면 집도 잘 보여주기로 약속했으니까 지금쯤 한번 인지시켜놓는 것도 좋을 것 같고.”    

  

이 씨가 나가더라도 계속 빈집 상태로 있게 된다면 이자만 계속 나갈 테니 하루라도 빨리 전세세입자를 구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 동네 재개발에 대해 알려주셨던 인상 좋은 부동산 사장님을 통해 바로 집을 내놓을 예정이었다. 며칠 뒤 민준이 점유자에게 조심스레 연락을 취하자 뜻밖의 답장이 돌아왔다.    

 

“안녕하세요. 배려해 주신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저는 다음 달 초에 이사 나갈 예정입니다.”     


약속한 날보다 2주 정도나 빨리 집을 비워주겠다는 답신이었다. 한시름 놓은 민준은 바로 온라인에 세입자 구한다는 글을 올렸다. 부동산을 통해 세입자 구하는 데 예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기에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분양 당시의 예쁜 집 사진을 찾아서 올렸더니 찔러보기 식의 문의가 몇 건 왔다. 혹시 반려동물이 허용되냐 물으며 본인이 고양이 네 마리를 키운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정중히 거절의 의사를 보냈다.      


그 뒤 우리가 짧은 여행으로 잠시 서울을 떠나 있던 시점에 점유자 이 씨는 정말로 집을 비웠다. 미리 연락해 둔 부동산 사장님을 통해 깨끗하게 짐이 치워진 빈 집을 확인했고, 집을 구하는 사람에게 바로 집을 보여줄 수 있었다. 이미 여러 집을 보고 온 그 사람은 깨끗하고 환한 우리 집을 마음에 들어 했고, 바로 전세계약을 맺기로 했다. 마침내 가계약금을 받고 다시 만나 본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우리의 두 번째 집에 처음으로 전세 세입자를 받게 된 것이다. 재개발 이슈 때문에 바로 집을 팔 수가 없어 안타까운 마음은 여전히 있었지만,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였고, 어쨌든 전세를 주며 2년을 버틸 수 있게 되어 우리는 한결 마음을 놓을 수 있게 되었다. 로 만나게 된 세입자는 20대 후반의 젊은 커플이었다. 계약서를 쓰는 날 만난 두 사람은 10년 전의 우리도 저렇게 풋풋했나 싶을 만큼 앳되고 젊어 보였다. 집주인이 이렇게 젊으신 분들 인줄 몰랐다며 ‘10년 뒤엔 저희도 집주인이 될 수 있겠죠?’하며 마주 보며 웃는 모습이 야무진 젊은이들이었다.      


경매를 하며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하게 되었다. 부동산에 들어가 이런저런 상담과 계약을 진행해 보고, 세입자를 내보내고 새로운 세입자를 받아보고 멀쩡한 내 집을 두고 월세살이도 다 해보게 되었다. 인터넷상의 무시무시한 명도경험담에 한 페이지를 추가하지 않고, 첫 명도 경험을 아름다운 이별로, 좋은 경험으로 남게 해 준 이 씨에게 고마운 마음을 담아 이사비에 조금이라도 보태시라고 얼마의 돈을 보내드렸다. 아마 살면서 다시 만날 일 없는 사람이겠지만 좋은 마음을 표현하면 다시 우리에게도 좋게 돌아오리란 마음으로 그리했다. 우리는 아직 투자자라고 할 만한 성과를 내지는 못한 초짜 중의 초짜이지만, 그게 부동산이든 뭐든 결국은 다 인간이 하는 일이고, 인간계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배우고 있었다. 세상에 쉬운 일은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도 마찬가지였다. 민준이 회사를 잠시 떠나 돈을 벌어보겠다는 결심은 아직 시작과 도전 단계에 있었지만, 끝까지 가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이 세상에 쉽게 벌 수 있는 돈이란 없고, 이 일이 회사일과 다른 점이 있다면 회사가 시키는 일을 수동적으로 하기보단 내 시간을 주체적으로 사용해서 스스로의 결정 하에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회사라는 거대한 조직의 부속품으로 살던 그는 이제 모든 결정을 스스로 내리고, 대신 모든 책임도 혼자 져야 했다. 그렇다고 쉽지 않은 결단과 고위험을 감수하는 것이 반드시 고수익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이 부동산의 영역에도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운이 따르는 법이었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운을 타이밍 좋게 잘 잡는 사람은 그 운이 오기 전부터 착실하게 준비해 온 사람이 아닐까. 저기 나에게 다가오는 것이 운인지 아닌지 알아보는 능력 또한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건 아닐 테니까.      


한편 우리 부부가 부동산 공부를 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고 생각하게 된 다른 계기도 있었다. 민준의 부모님은 지방에서 오랫동안 숙박업을 하고 계셨는데, 이제 연세가 있으셔서 직접 모텔을 계속 운영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하셨다. 20년 정도 모텔업을 해오시며 몇 번의 작은 인테리어 공사를 거치긴 했지만, 이제는 특정 연령대만 찾을 법한 오래된 모텔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며 쇠퇴의 길을 고 있었다. 주변에 나이트클럽이 있었고, 한창 장사가 잘 되던 시절을 벗어나 이제는 겨우 달방 손님들을 받아 명백을 이어오고 있었기에 이 건물은 대대적인 리모델링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부모님도 은퇴를 고려하실 나이가 되셨고, 건물 앞 대로변으로는 몇 년 후 지하철이 들어올 예정이었다. 가치를 높여 팔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고, 휴직 중인 민준이 뛰어들어 부모님을 설득하기로 했다.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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