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이 빠르게 지나간다. 호흡이 귀에서 울린다. 보폭을 의식적으로 넓힌다. 점차 목구멍에서 비릿한 쇠 맛이 난다. 다른 사람의 페이스를 따라가지 않는다. 나만의 속도를 갖고 뛴다. 어차피 따라갈 수도 없다.
중반이 넘어가면 점차 주위가 잘 보이지 않는다. 앞서 뛰는 사람의 등이 보인다. 걸으며 목 뒤로 흐르는 땀방울을 느낀다. 닦아낼 힘도 없다. 머리가 울리는 것도 같다. 지속적인 흔들림에 배가 땅겨오기 시작한다.
초반에 들리던 다른 이의 발자국 소리도, 서로를 응원하던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내 호흡이 거칠게 들린다. 홀로 뛰는 것이지만 온전히 그런 것만은 아니다. 서로 부딪히지 않기 위해 거리를 벌린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그렇게 함께 뛴다.
같이 뛰는 누군가를 위해 보폭을 맞춘다. 괜찮냐고 묻는다. 서로에게 맞춰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한다. 서로의 페이스를 조절해 주기도 하며 때론 서로의 페이스를 망치기도 한다. 나만의 보폭을 갖되 서로에게 맞춰 준다.
아름다운 풍경도 의식할 수 없다. 화창한 날씨도 이젠 무덥게만 느껴진다. 점차 웃음을 잃어간다.
‘왜 이렇게 길지? 언제 끝나는 거야?’
그렇게 내뱉을 때쯤 멀리서 큰 소리가 들려온다.
“이제 얼마 안 남았습니다! 힘내세요!”
희망찬 소리다. 하지만 저 소리를 아까부터 들려왔다. 겨우 0.5km를 뛰었을 지점부터 들려왔다. 시작 라인을 넘자마자 들려온 소리에 누군가 웃기도 했다.
“좀 만 더 힘내세요!”
도대체 어느 정도 남았단 것일까. 목에 걸쳐둔 타월을 머리에 동여맨다. 땀으로 축축해져 간다. 벌게진 얼굴은 우스워보일 정도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할 수 있다!! 완주합시다!”
“이제 1km도 안 남았어요!”
누군가 기쁘게 환호한다. 마지막이 가까워질수록 서로를 향한 응원이 커져간다. 아무런 대가 없이, 아무런 일면식 없는 사이에 밝게 응원한다.
“파이팅!”
“할 수 있다!”
멍한 뇌에 그 말이 화살처럼 꽂힌다. 그것만을 생각한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할 수 있다. 경쟁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같은 동료였다는 것을 깨달아 간다.
내 옆에 땀을 흘리며 뒤처진 사람을 바라본다. 나의 걸음을 느리게 붙잡았지만 동시에 더 멀리 갈 수 있는 힘을 주었다. 이 길을 홀로 뛰었다면 어디까지 갈 수 있었을까 아득해진다.
“얼마 안 남았어요. 조금만 더 힘을 내요!”
결승선으로 뛰어넘어 들어간다. 곳곳에서 환호가 들려온다.
흔히 삶을 마라톤에 비교한다. 많은 경험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삶의 축소판 같은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사람을 걷고 뛰게 만드는 것은 응원의 말임을 깨닫는다. 한계에 다다른 사람, 부상 입은 사람, 넘어진 사람, 페이스를 잃은 사람들에게 누구도 채찍질하지 않는다.
결승선 직전 격려와 응원의 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서로에게 손뼉 쳐 주고 응원한다. 그 누구도 부정적인 말을 하지 않는다.
‘더 빨리 달리세요.’
‘늦었어요.’
‘이렇게 하면 안 돼요.’
마라톤을 하며 나는 이미 지친 서로에게 어떠한 말을 해주어야 하는지 배웠다. 나약한 소리만 하는 사람을 잡아주려 했던 말이 그에겐 큰 상처가 되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에겐 많은 말이 필요치 않았을 것이다.
다 왔다는 격려와 잘 해내고 있다는 응원. 그것으로 충분했을 것이다.
얼마 안 남았어요. 조금만 더 힘을 내요!
얼마 안 남았어요. 조금만 더 힘을 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