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버지는 한 가지 특이한 습관이 있었다. 잠을 잘 때 유난히 발끝을 꼼지락거리는 것이었다. 나는 화장실을 갈 때마다 아버지의 발끝을 유심히 살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였다.
중학교 1학년이 된 7월의 어느 날 아버지는 폐결핵으로 돌아가셨다. 오래 앓던 병이었다. 눈물이 별로 나지 않았던 것은 아버지와 떨어진 시간이 길었기 때문이었다. 상복을 입고 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보며 무료한 시간을 보냈다.
어떤 때는 아버지가 나에게 한 말이 생각났다.
“새싹아. 순대 사 와라. 콜라도 사 와라.”
그 말이 어찌나 귀찮았던지 나는 싫은 내색을 숨기지 않고 시장으로 갔었다. 고맙다는 말에도 대꾸 없이 바로 작은 방으로 들어갔었다.
아버지와 나는 같은 집에 있어도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거의 매 순간 잠에 취해 있었고 나는 유독 말수가 없는 아이였으니 당연했다.
“선풍기 틀어놓고 문 닫고 자지 마라.”
화장실을 오고 가며 괜스레 말을 붙이기도 하셨는데 ‘뭐 하고 있어?’라던가 나를 걱정하는 말을 했었다. 지금이야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어린 시절 부모님들은 밀폐된 공간에서 선풍기를 틀면 죽는다는 비과학적인 말을 믿었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방 안의 풍경이 떠올랐다. 싱글 침대가 있고 머리맡엔 나무로 된 효자손, 갑 티슈, 1.5L 콜라병 그리고 리모컨이 놓여 있다. 빼빼 마른 몸에 피곤한 기색이 완연한 얼굴. 밀려 있는 수많은 약봉지가 보이고 야구 중계 소리 작게 들려왔다.
나는 그 모든 풍경이 지겹고 싫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는 그 방 침대에 누워 ‘이제 침대에 누울 수 있겠다.’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다시는 보지 못할 한 사람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 나는 안방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 방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는데 멍하니 바닥에 붙어 누워 있거나 엎드려 책을 읽었다.
그 방에 붙어 있던 죽음이나 오랜 질병이 갖는 무기력은 아버지를 떠나 내게 붙어온 것 같았다. 동경하면 안 될 것을 동경하게 되었다. 내 눈앞에서 직접 본 가장 밀접하고 친밀한 방법을. 나는 매일 같이 생각하게 되었다.
“리셋되고 싶다.”
어리석은 생각이지만, 게임처럼 모든 게 손쉽게 진행됐으면 했다. 목숨을 다 잃으면 새로운 게임이 시작되는 것처럼 새로 시작되거나 영원히 끝나거나.
하늘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땅에는 모두가 괴로움에 신음하는 것 같았다. 내 주변 어디에도 행복한 사람을 찾기가 어려웠다. 나의 가족과 나. 서로를 의지하지 못하고 그저 버텨야 하는 서바이벌 게임이었다.
그 긴 시간이 나에게 있어 가족에 대한 원망을 만들었고,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만들었다. 정말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아주 힘들고 어려운 마음이 들 때 나는 중학생의 내가 되어 버렸다.
‘차갑고 쓸쓸한 밤이다. 불도 켜지 않고 오래도록 울어도 아무도 오지 않는 방과 같다. 내가 불을 켜지 않는 한 계속해서 꺼져 있는 시간이다. 아무도 없는 어두운 밤과 같은 시간들이었다.’
그렇게 나는 오래도록 ‘불쌍한 나’에게 얽매여 있었다.
“아버지도 되게 힘드셨겠다. 병에 걸리면 엄청 놀라잖아. 그 이후로 우울하셨던 게 아닐까?”
누군가 한 이 말이 나를 멍하게 만들었다. 아버지의 사정, 아버지의 심정이란 것은 생소했다. 이제까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투병을 하며 아버지는 어땠을까. 아버지도 많이 힘드셨을까. 무력했을까. 우울했을까. 고통스러웠을까. 두려웠을까. 비참했을까.
‘아버지도 행복했을까?’
그제야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아버지도 사정이 있었던 것이다. 무책임한 가장이라 생각했고 삶을 포기해 버렸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은 나의 입장일 뿐이었다.
내가 아버지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니 이해되었다. 비난할 수 없었다. 삶의 어두운 터널은 나 혼자 간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이해가 간다.”
라고 했던 그 사람의 말을 통해 나도 이해하게 되었다. 나의 오랜 원망의 대상을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그것이 오해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도 이해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