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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ida Lee 이레이다 Dec 06. 2022

지친 마음이 잠시 머물다 가는 나의 어항

세상을 멀찍이 보고 싶을 땐 어항을 보라

우리 집엔 3개의 어항이 있다. 

어항은 각각 다른 수초와 생물들이 담겨있고, 보는 사람에게 주는 느낌도 각각 다르다. 바쁜 삶에 고양이 5마리와 어항 3개를 유지하는 나는 부지런한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혹은 답 없이 책임져야 하는 일을 만드는 사람으로 비춰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삶을 어떻게 해석하여 볼지는 내 소관이 아니다. 오늘 글을 쓰는 이유는 내가 가진 어항 중 내게 심적인 여유를 주는 이 어항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함이다.




텅 빈 어항에 수초가 살 수 있도록 필요한 시간 7주

어항은 이끼와의 전쟁이고, 생태계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아침에 일어나 조명을 켜고, 증발한 물만큼 새로 부어주는 것 그리고 생물들이 먹을 식량을 넣어주거나 만들 환경을 조성해주는 일이 어항을 위한 루틴이다. 이 어항엔 지난주까지 사방에 붙 이끼와 실 이끼가 가득했다. 초록색으로 보이는 부분이 유리에 낀 이끼류이다.

생물은 하나도 넣지 않은 상태로 소일에 수초들을 잔뜩 심고 물을 채웠었다. 조명을 3개나 설치한 후, 24시간 빛을 주어 수초가 뿌리를 내리도록 했다. 네오라는 수초 영양제 회사가 있는데 네오 블랙을 넣어주며 수초의 성장에 힘을 쏟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그러고 나니 아래처럼 수초들이 자리를 잡았다.

바닥을 가득 채워 잔디를 연상시키는 수초와 붉은색 큰 잎사귀로 화려한 색감을 더할 수초까지.

정글처럼 덩굴로 자라는 수초와 아직 제거되지 않은 붙 이끼까지 텅 비었던 어항에 생기가 생긴 지 7주의 시간이 걸렸다. 

이끼가 가득할 때 사진을 찍어 두었으면 좋은데, 스크래퍼로 다 긁어 버렸다. 하하


이끼와 수초를 부탁해요. 이끼 제거반

생이새우, 오토싱, 뾰족 달팽이

디스커스 어항에는 생이 새우가 수백 마리 살고 있다. 뜰채로 생이새우들을 잡아 이 어항에 강제 이주시켰다. 겨우 3일 만에 바닥에 뒹굴던 이끼가 사라졌다. 그리고 어항 모서리에 붙이끼들이 남아있는 상태다. 어항에서 낙엽처럼 날아다니는 생이새우들은 열심히 일한다. 유목에 앉아 쉬다가도 유목을 뜯고, 소일과 수초에 붙은 뭔가를 먹는다. 그리고 메모장에 그어 넣은 선 같은 똥을 싼다. 새우가 싼 똥과 물고기가 싼 똥은 굵기와 색이 아예 다르다. 0.25pt의 굵기 같은 생이 새우의 똥. 아마 수초가 크는데 도움 될 영양이 담겨 있겠지?

오토싱을 소개한다. 이 녀석은 이렇게 어항 벽에 붙어 빨판 배를 보여주며 다닌다. 어떤 이에겐 혐오스러울 수 있으나, 물생활하는 입장에선 오토싱은 사랑이다. 귀엽고 작고 소중한 오토싱! 여러 마리일 땐 어항 벽면에 모여 같이 다니기도 하는데 귀여운 미니 박쥐 같은 느낌이다.

바쁜 일이 끝나면, 한 마리밖에 없는 오토싱의 가족을 데려올 예정이다. 부천에 상아쿠아라는 물생활 성지가 있는데, 조만간 들러야지. 


((뾰족 달팽이는 바닥에 숨어 보이질 않아서 패스))


인피니트 구피

너는 몇 대째의 구피인가?

애증의 구피들! 배우자의 거북이 항에 임신한 암컷 구피를 디스커스 항에 옮겨두었다가 이 수초항에 분리해두었다가 다시 디스커스 항에 옮겼는데...! 구피 치어들이 어느 순간 보이기 시작했다. 아... 구피 식구가 또 늘었구나! 싸지른다는 표현... 싫어하지만, 구피가 치어를 낳아 개체수를 늘릴 땐 굳게 다문 입술 사이로 이 말이 나온다. 윽... 또 낳았어!!

하지만 귀엽고 소중한 이 생명체를 어찌 미워하겠는가. 브라인쉬림프를 소금물로 부화시켜서 구피 치어의 밥을 만들어 주었다. 치어 앞에 하얀 점이 브라인 쉬림프다.


어서 알록달록한 깃을 보여주렴! 수컷이랑 암컷 구분하게...



여기까지 물생활 글을 재밌게 보았고 평소엔 관심 없던 물고기들의 사진을 유심히 보았다면, 당신도 일종의 디지털 물멍을 한 것이다. 바쁘고, 치열한 일과 속에 당신과 전혀 상관없는 다른 존재를 돌보는 일에 공감하고 관심을 가져줬다. 어떤가? 


당신이 이 글을 보고 물생활이 어떤 건지 감이 올런지 모르겠다.

내 경우엔, 머리가 아플 때 어항을 살피며 여과기 청소도 해주고, 특식인 브라인쉬림프도 만든다. 마구잡이로 자란 수초를 트리밍 해주거나 죽어있는 생이 새우나 탈피한 새우 껍질을 보면 집어 거북이 항에 던져주기도 한다. 재밌기도 하고, 새롭고, 신기한 느낌!


12월은 한 해를 정리하고 새로운 일이 적은 달인데도 하던 일이 마무리되는 달이라 이상하리만큼 바쁘다. 이럴 때일수록 어항 보는 시간을 의도적으로 늘려본다. 


((뭔가 지쳐있거나 쉼이 필요할 때, 나처럼 당신 만의 물생활시간을 가져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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